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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5.18 군부의 잔혹한 군화가 활개 칠 수 있었던 까닭은?

  • Editor. 이민혁 기자
  • 입력 2018.05.1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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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이민혁 기자] 5월 18일 대한민국은 숙연한 자세로 그날의 광주를 추모한다. 진중하게 가라앉은 엄숙한 분위기가 막바지 봄기운을 타고 가지런히 피어오른다. 5.18 관련 행사로 인해 대중들의 이목이 쏠리기도 한다. 

이번 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군이 5.18 때 자행한 학살의 실체와 은폐를 추적한다. 

왜 군은 광주에서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30년 만에 해제된 5.18 관련 문건들을 발굴해 알릴 예정이어서 충격파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오늘(19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5.18 군부의 잔혹한 군화가 활개 칠 수 있었던 까닭을 밝힌다. [사진출처='그것이 알고 싶다' 누리집]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말고도 하나 더 있다. 5.18 관련해서 18일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목포경찰서장이었던 고(故) 이준규 씨의 사연을 다루어 안방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신군부가 계엄군의 폭력진압을 호도하기 위해 고 이준규 서장 등 일부 경찰을 희생양 삼아 파면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이준규 서장은 ‘시위를 통제하지 못했고’, ‘자위권 행사를 소홀히 한 경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경찰 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케이스다 하면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들이 났기 때문에 가족들이 상처가 컸죠.” - 고 이준규 서장의 딸 이향진씨 인터뷰 中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광주민주화항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해자 가족이라는 오해를 받을까봐 죽은 듯 세상을 살았던 유가족들. 이향진씨가 변명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아버지 일을 가슴에 묻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청자들 가슴 또한 먹먹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1980년 당시 광주 경찰의 총책임자였던 전남도경의 고(故) 안병하 경찰국장, 그의 유가족들 역시 목포경찰서의 이준규 전 서장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1980년, 광주에서 전두환 신군부에 대한 항의시위가 거세지자, 신군부 계엄군은 경찰에게 총기를 사용해 시위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안병하 국장은 이에 불복하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목포경찰을 포함한 전남지역경찰에 총기를 군부대에 반납할 것을 명했다고 한다. 당시 목포 경찰서의 이준규 서장도 시민들에게 사상자가 생길 것을 우려해 배에 총기를 실은 채 목포를 떠나 가장 가까운 섬인 고하도로 향했다고 한다. 제작진은 목포와 고하도 현지 취재를 통해 당시 이준규 서장의 행적에 대한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준규 서장과 함께 일했던 이들은 오직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힘쓴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38년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군부 시대의 잔혹한 군화에 짓밟혀 으스러진 수많은 희생자들의 원통 어린 목소리는 이제야 하나둘 대중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더불어 국내 시사교양프로그램도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대답은 오늘(19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밝혀질 전망이어서 안방 시청자들은 벌써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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