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뉴스 이상래 기자] 6425억원-.
위의 천문학적인 액수는 2012년 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 연장을 위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최근까지 쏟아 부은 금액이다. 그런데 한수원이 지난 15일 예정에 없던 긴급이사회를 통해 6000억원 세금이 들어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신속 처리해버렸다. ‘도둑 이사회’라는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가 불거지는 이유다.
한수원은 이날 긴급 이사회를 열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로 추진 중인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 원전 사업 종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수원 발표는 사전에 예고되지 않았다. 발표 4시간 전 ‘경영현안설명회’ 내용이라는 두루뭉술한 언급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안건은 밝히지 않고 장소만 언론에 공지했을 뿐이다. 국가 에너지 수급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마치 첩보영화 속 ‘비밀작전’을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처리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수원 노조는 즉각 보도자료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했던 한수원 이사회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기습적으로 도둑 이사회를 열었다”고 목청을 돋웠다.
한수원 이사회의 ‘기습처리’로 조기 폐쇄를 앞둔 월성 1호기는 고리 1호기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만든 원자력발전소다. 국내 최초 중수로형 원전인 월성 1호기 설비용량은 67만9000㎾로 대구시에서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 35%에 해당하는 연간 약 51억㎾h 전력을 생산했다. 30년 동안 만든 전력만 총 1억3812만㎿h이다.
한수원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투명하면서도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설계수명 30년이 끝난 2012년 월성 1호기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2022년까지 10년간 연장 운전할 수 있도록 승인하면서 2015년 6월 23일 발전을 재개했다. 당시 한수원은 연장운전을 위해 노후설비 교체와 안전성 강화 등에 5600억 원을 투입했다. 또한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연장을 위해 지역 상생 협력금 명목으로 825억 원을 경주시에 납부했다.
일각에서는 6425억 원이 아닌 8000억 투자라는 주장도 나오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윤원석 한수원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최근 뉴스1과 인터뷰에서 “월성1호기에 8000억 원을 투자해 안전 보강 등을 마쳤음에도 조기폐쇄를 결정한 것은 불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613 지방선거 이후 이뤄진 이사회 개최 시점을 놓고도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월성 1호기 폐쇄를 결정한 한수원 긴급이사회 개최일은 지방선거 이틀 뒤이다. 한수원 노조 관계자는 “수많은 투자를 한 시설을 정치 논리에 따라 폐쇄한 경영진의 행동은 배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압승으로 끝나면서 월성 1호기 폐쇄 방침을 정한 정부여당에 편승했다는 얘기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10일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전력수급 상황을 고려해 월성1호기를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수원은 월성 1호기 폐쇄 안건을 지속적으로 검토했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아직 폐쇄에 따른 구체적인 보전금 액수조차 측정되지 않은 상태다.
보전금 논란에 대해 한수원은 16일 “보전 금액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추후 정부에 비용 보전을 요청할 때 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 정책은 국가대계 사업이다. 한수원은 그만큼 폐쇄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노조의 ‘도둑 이사회’ 비판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