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뉴스 조승연 기자] ‘말이 필요 없다’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한국 독일 매치 라이브 블로그에서 F조 최종 순위표에 달린 제목이다.
'1%의 기적'을 위해 후회 없이 투혼을 불사른 한국에 충격적인 0-2로 대참패를 당해 조 2위에서 꼴찌로 추락해 탈락한 독일. 조 4위에서 한 계단 올라서며 한국축구사에 길이 남을 유종의 미를 거둔 한국. 모두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천당과 지옥을 바꾼 최종순위에 ‘카잔의 밤’은 환희와 비탄으로 갈렸다. 한국 독일 하이라이트는 투혼의 반전이었다. 조 3위였던 스웨덴은 2연승의 조 수위 멕시코를 3-0으로 완파하고 순위바꿈하며 16강에 동반 진출했다.
‘카잔의 미라클’
한국축구는 16강이란 목표만을 이루지 못했을 뿐 1%의 가능성만 남아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전의를 다졌고 집념과 투혼을 후회없이 피치에 쏟아부은 끝에 김영권 손흥민의 더블 극장골로 월드컵사에 기억될 대반란을 일으켰다. FIFA랭킹 57위의 한국이 세계 1위이자 월드컵을 3회 제패한 레이닝 챔피언 독일을 맞아 인저리 타임에만 극장골을 연속 폭발해 전차군단에 굴욕을 안겼다.
한국은 27일 밤(한국시간) 카잔 아레나에서 벌어진 러시아 월드컵 F조 3차전에서 독일에 볼점유율에서 30-70%로 밀렸지만 후반 추가시간 6분 동안에만 수비수 김영권과 에이스 손흥민이 기적의 연속골을 터뜨려 2-0으로 완승을 거뒀다.
한국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야신상에 빛나는 마누엘 노이어가 골문에 버틴 독일을 맞아 슛 횟수에서 11-26으로 밀렸지만 유효슛에서 5-6으로 대등하게 맞서는 집중력을 발휘, 전광판이 멎은 뒤 3분 만에 코너킥 상황에서 손흥민이 문전으로 연결한 볼을 문전쇄도한 김영권이 오른발슛으로 독일 네트를 흔들었다.
다시 3분 뒤엔 수문장 노이어가 한국 진영까지 가담한 틈을 역이용해 역습 찬스를 만들어내 손흥민이 질풍 질주 끝에 텅 빈 독일 골문 안으로 쐐기골을 흘려넣었다.
한국 독일 하이라이트는 태극전사들이 118km로 게르만전사들보다 3km를 더 뛰는 전방위 압박과 집중력이 살아나면서 거함을 격침시킬 수 있었던 점이다. 1,2차전에서 거듭된 실수로 멘탈이 흔들린 장현수가 주장 기성용의 부상 공백을 메우며 홀딩 미드필더로 전진배치됐지만 후반 막판 역습 패스의 정확도가 번번이 떨어져 무득점 무승부로 끝날 듯했다.
하지만 독일의 슛과 크로스를 머리면 머리, 태클이면 태클로 4차례나 막아낸 중앙수비수 김영권이 전광판 시계가 멎은 뒤 세트피스 상황에서 결승골을 뽑아냈다. 바로 오프사이드로 선언됐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김영권의 골로 뒤늦게 인정됐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거친 ‘지독파’ 손흥민은 공격 꼭짓점에서 기습슛으로 독일 골문으로 두드린 끝에 마지막 역습 찬스에서 노이어를 제치고 주세종이 넘겨준 롱 패스를 하프라인부터 질주하며 독일의 혼을 빼는 솔로골로 명중시켰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신태용 감독의 선택으로 한국 축구가 발견한 최대 수확인 수문장 조현우는 4차례 슈퍼세이브로 월드컵 데뷔무대에서 첫 클린시트를 작성했다. 한국 독일 하이라이트를 연속적으로 장식한 주인공 조현우는 MOM(경기 MVP)을 차지했다.
한국에 충격패를 당한 독일은 24년 전 덴마크에 0-2로 패한 이후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서 이어오던 무패행진이 깨졌고 조별리그 도입 이후 첫 탈락 수모를 안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부터 지휘봉을 잡은 이후 월드컵 4강~4강~우승으로 성가를 높였던 요하임 뢰브 감독은 멕시코전 0-1패보다 더 굴욕적인 0-2패를 당하면서 퇴진 압박을 받게 됐다.
멕시코전에서 극장골을 넣고도 1-2분 패에 눈물을 쏟아냈던 한국 에이스 손흥민은 독일을 상대로 다시 극장골을 터뜨린 뒤 플래시 인터뷰에서 “믿을 수 없이 자랑스럽다. 너무 멋있게 해줘서 고맙다”며 “4년 전과 비교해보면 후회 없이 했다. 목표는 이루지는 못했지만 조금이나마 국민께 희망 드릴 수 있어 동료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한국 독일 결전을 앞두고 맨유 입단 추진루머가 나돌아 주목을 받았는데 월드컵 2연속골로 주가를 인정받은 셈이다. 기성용 대신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은 한국축구의 간판 골잡이로서 책임감이 무거웠는데 기적같은 승리로 덜어낸 듯 후련한 표정을 지었고 그 공을 동료들에게 돌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16년 전 한일 월드컵에서 독일과 준결승에서 뛰며 0-1로 분패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한국의 독일전 깜짝 승리를 중계하면서 후배들에게 헌사를 보냈다. “이런 경기를 중계하다니 해설자로서 소원을 풀었다. 이런 멋진 경기를 하면 칭찬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비록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조현우 MOM 선정과 손흥민 연속골, 수비수 김영권 결승골 등으로 태극전사들이 한국 독일 결전에서 보여준 집념의 대반란은 한국 축구팬들은 물론 지구촌에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국축구로서는 철저한 자성과 함께 대선전으로 새출발을 알린 카잔의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