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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춘의 별이 지다, 故신성일이 이 시대 청춘에 남긴 '맨발의 울림'

[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영원한 청춘의 별’이 졌다.

전후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1960-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방황하는 청춘을 위로한 톱스타. 대표작 ‘맨발의 청춘’을 통해 지적이면서도 반항적이고 불량기 어린 사랑과 정열로 ‘청춘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 암울한 시대의 낭만을 지켜냈던 청춘의 아이콘이 영원히 잠들었다.

3000명의 지원자가 몰려든 신필름 전속 신인배우 공모에서 서울대 진학을 꿈꾸다 가세가 기울어 빚쟁이들을 피해 무작정 상경한 강신영을 발탁한 한국영화의 거목인 ‘야생마’ 신상옥(1926~2006) 감독이 자신의 성을 따서 지어준 예명이 신성일(申星一).

그 뜻처럼 ‘뉴스타 넘버 원’으로 충무로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채 반세기 영화인생을 마감하고 눈을 감자 그의 빈소에는 영화계와 올드팬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폐암으로 투병 끝에 '영화계 큰 별' 진 배우 故신성일.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온 ‘국민배우’ 신성일은 4일 오전 2시 30분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전날 저녁 한때 사망 오보 사태도 빚어졌지만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아내이자 동료 배우인 엄앵란(82)과 장남 석현, 장녀 경아, 차녀 수화 등 유족이 차분히 조문객을 맞고 있다.

장례는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흘간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한국영화인단체총연합회 지상학 회장과 후배 배우 안성기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장례위원으로 영화계 각 분야 인사가 위촉된 가운데 고문은 신영균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회장과 배우 김지미, 문희 등이, 부위원장직은 배우 이덕화, 장미희, 송강호, 강수연, 최민식 등이 맡았다.

6일 오전 10시 영결식을 거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장지인 경북 영천 선영에 영면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등 각계에서 쏟이진 수많은 조화 속에 미소짓는 고인의 영정을 처음으로 맞은 원로배우 최불암은 “반짝이는 별이 사라졌다. 우리 또래의 연기자로서 조금 더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며 “고인이 남긴 업적이 오랫동안 빛나기를 빈다”고 애도했다.

원로배우 이순재도 “60년대 영화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한 거목이 한명 갔다. 이는 팬들이 다 기억할 것”이라며 “신성일씨 관련 작업은 많은 자료가 남아있어 후학에게도 좋은 교본이 될 것이고, 관계기관에서도 이를 홍보해 고인을 추모하고 아쉬워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영균 명예회장은 "배우라는 직업은 행복한 직업이다. 80년을 살다 갔지만, 영화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행복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천당 가서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며 추도했다.

1962년 ‘아낌없이 주련다’에 아역으로 고인과 출연했던 안성기는 “‘스타’라는 이름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며 "지난봄부터 내년에 영화 한 편을 같이하기로 약속했고, 시나리오도 거의 완성됐다고 들었다. 오랜만에 같이 영화를 해서 기뻤는데 허망하게 가시니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남편이자 '원조 국민배우' 故신성일은 가정적인 남자가 아닌 ‘사회적인 남자’라고 밝힌 부인 엄앵란. [사진=연합뉴스]

이따금 고인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슬픔을 가누던 엄앵란은 취재진에 54번째 결혼기념일을 열하루 남기고 떠난 고인의 유언을 공개했다. 지난 1일 고인을 마지막으로 봤다는 엄앵란은 “(며칠전 고인을 찾은) 딸이 ‘마지막으로 할 말 없냐’고 하니, ‘재산없다’라고 답했다”며 “딸이 ‘어머니에게는 할 말 없냐’고 물으니 ‘참 수고했고 고맙고 미안하다고 전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원조 졸혼’ 격으로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아왔으면서도 방송을 통해 “신성일씨와 나, 우리는 동지야. 남자도 여자도 아니야. 영화하는 동지”라고 했던 엄앵란. 영정 앞에서도 남편을 가정적인 남자가 아닌 ‘사회적인 남자’라고 하면서 “사람이 존경할 만해서 55년을 살았지, 흐물흐물하고 능수버들 같은 남자였으면 못 살았어요”라고 회고했다. 엄앵란은 “신성일은 사회적이고 일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생각한다”며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 까무러치는 때까지 영화 생각뿐이어서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버텨서 오늘날까지 많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원조 국민배우’를 향한 애도 물결이 이어지면서 스크린을 넘나든 고인의 불같은 열정과 사랑이 재조명되고 있다.

故신성일이 생전에 꼽은 3대 대표작.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만추. [사진=연합뉴스]

신성일은 빼어난 외모와 지적이고 반항적이면서 성적 매력이 넘치는 이미지로 1950~60년대 배우들과 차별화하면서 청춘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청춘 아이콘이었다. 신성일의 인기는 미국의 제임스 딘, 프랑스의 알랭 들롱 등 당대 월드스타들과 비견될 정도였다.

신상옥 감독 영화 ‘로맨스 빠빠(1960)’로 데뷔한 이후 신필름을 나와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으로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청춘영화의 대명사가 됐다. 이 영화를 계기로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한 청춘영화가 쏟아졌다.

주연 출연만 507편, 상대 출연 여배우만 118명이었던 신성일. 생전에 대표작으로 세 편을 꼽았는데. ‘맨발의 청춘’에서 부잣집 딸을, ‘만추(1966)’에선 특별휴가를 나온 모범수 여성을, ‘별들의 고향(1974)’에선 호스티스 여성을 사랑한 로맨티스트였다. 배우를 넘어 제작, 기획에도 참여해 충무로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지켜왔다.

“1960년대 후반부터 정치권에서 숱한 유혹이 있었다. 이를 악물고 10년만 버텼다”고 회고했던 신성일의 열정은 개명한 정치인 강신성일의 인생으로도 이어졌다. 두 번의 낙선 끝에 대구 동구에서 16대 총선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돼 대중예술계의 정책 지향점을 넓히기도 했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인 배우 신성일이 지난달 14일 오후 부산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 열린 핸드프린팅 행사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17.10.14.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폐암 3기 판정을 받고도 “그깟 암세포 모두 다 떨쳐내겠다. 이겨낼 자신을 있다”며 “막장드라마 대신 따뜻하고 애정 넘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영화 ‘행복’이라는 작품을 기획 중”라고 밝혔던 천생 영화꾼 신성일. 암 투병 중에도 지난달 청바지 차림으로 레드카펫을 밟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년엔 영화 ‘소확행’을 내놓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로 팬들과 영영 작별을 고했다.

이런 신성일의 영화 열정을 기리기 위해 영화계는 훈장 추서를 추진 중이다. 이에 빈소를 찾은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은 “국민에게 큰 기쁨을 주신 분이 돌아가셔서 정부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영화계와 유족 측에서 훈장 추서를 말씀했다.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영화계와 협의해 예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활동뿐 아니라 2011년 '청춘은 맨발이다'라는 자서전도 내놓은 '영원한 스타' 故신성일의 생전 모습. [사진=연합뉴스]

신성일은 2011년 내놓은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에서 “'나는 신성일이다' 라는 자존심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다. 영광의 세월도 있었고, 차마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굴욕적인 순간도 있었다. 내 혈압이 사건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다면 아마도 100번은 더 죽지 않았을까 싶다”며 걸어온 길을 반추했다.

영원한 청춘의 아이콘으로서 말년에 이 시대 청춘들에게 고언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근 10년 이상 백수건달 생활을 할 때도 하루도 안 빼고 달리고 운동하며 심신을 단련했다”며 전한 메시지는 세대를 뛰어 넘는 큰 울림을 던지고 있다.

“난 젊은이들에게 ‘정면돌파하라’고 외치고 싶다. 자신을 믿고 기회가 올 때까지 준비하고 기다려라.”

최민기 기자  webmaster@updow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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