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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열의 리셋] 우리가 인간관계로 더 상처받고 더 아파하는 까닭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2.03.07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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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에서 살면서 사람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요즘 ‘섬’ 관련 방송을 찾아보다가 뒤늦게 그곳으로 건너 와 정착해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어김없이 이런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여러 번 듣다보면 자연스레 도시에서 인간관계로 상처받고 떠나는 이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섬뿐만이 아닙니다. 지방 곳곳으로 떠나는 이들 중에 관계의 아픔을 토로하는 이들도 여럿입니다. 이토록 깊은 상처를 준 이들은 누군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컷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컷

우리가 인간관계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주변에 ‘에너지 뱀파이어’(긍정적인 에너지를 빨아먹고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기 때문일까요. 물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 없이 자기만 앞세우는 독불장군, 안하무인들이 넘쳐나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문화에서 살고 있습니다. 관계에 연연하고 자신에게 이로운 관계 구축과 유지를 위해 아등바등 안간힘을 씁니다.

인지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아주대)는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생각의 지도’* 편에서 관계주의 한국 vs 집단주의 일본을 비교하면서 “관계주의는 우리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라고 하는 게 정말 독특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라고 하는 한국 사람들은 다양한 개인이 존재하기 보다는 다양한 우리가 존재한다고 본다”고 설명합니다.

이력서 앞쪽에 가족 관계 등을 서술하는 것도 누구의 자식 등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관계적 존재감이 사라지면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라는 관계 유지 및 관리에도 의무와 책임을 다합니다.

슬픈 일이 생기면 위로해주고, 기쁜 일이 생기면 축하해 주며, 한번 보자고 하면 득달같이 뛰쳐나가는 등 365일 ‘관계 AS’에 만전을 기합니다. 상대 맞춰주기와 분위기 깨지 않기 등 아무렇지도 않게 호응과 순응의 달인으로 살아갑니다. 관계의 유형은 각양각색인데 그 관계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불철주야 종횡무진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여기에다 우리는 점점 영악해져 ‘조금’ 주고 ‘많이’ 받는 관계를 원합니다. 마음이 통하는 좋은 관계보다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신에게 득이 되는 관계를 찾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관계라면 흐뭇합니다. 별 볼 일 없는 관계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데다 관계를 맺었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손절하고 다른 곳으로 갈아탑니다.

우리 세태가 정녕 이러하다면 상처받는 이들이 허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2. “내가 너한테 얼마나 신경 썼는데….” 흔히들 이런 소리를 자주 하고 듣습니다.

사회심리학자 허태균 교수(고려대)는 저서 ‘어쩌다 한국인’에서 한국인은 행동보다는 마음을 중시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데 이를 ‘심정 중심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는“한국의 리더들에게 폭탄주는 누가 나랑 같이 이런 미친 짓까지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최적의 수단이다. 빤히 괴로울 줄 알면서도, 누가 그 미친 짓을 나와 기꺼이 하고자 하는 진심을 가졌는지를 확인해보는 거다”며 폭탄주가 한국인의 진심 확인법이라고 설명합니다.

한데 이 ‘마음’이라는 것이 계량화 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 보니 종종 파열음이 터져 나옵니다. 각각의 셈법이 다른 까닭입니다. 내 진심은 크고 상대 것은 알 수 없어 작게 표시하기 일쑤입니다. 내 것은 유, 무형을 다 따지고 상대 것은 유형만 따지니 늘 손해라고 여깁니다.

관계주의와 심정중심주의 문화인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유리한 관계를 좇느라, 정작 당사자는 원치 않은 비용과 에너지를 쓰곤 기대에 못 미치면 섭섭해 합니다.

“내가 너를 그동안 어떻게 생각했는데…”라면서.

결국 상처 주고, 상처받기 쉬운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이 오히려 편했다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행여 당신은 ‘주는 관계’ 보다 ‘받는 관계’에만 목매고 있나요. 당신의 ‘마음’ 계산기는 정상 작동하고 있나요. 우리네 인간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개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미시간대 심리학과 석좌 교수인 리처드 니스벳의 저서. 공자 후손들과 아리스토텔레스 후손들을 해부하는 비교문화 연구서로 동서양 차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 글쓴이는? - “내가 이 나이에 왜 남 눈치 보며 사냐?!” 한 선배는 나이 60을 넘자 이렇게 말했다. 젊은 시절 관계를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이제 안한다는 소리다. 관계로 인해 덕본 것도, 덕볼 일도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실로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진 셈이다. 우리는 20,30대 젊은 시절에는 인맥관리에 혈안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비로소 안다. 사회적 관계는 그저 사회적 관계라는 것을. 평생 남는 관계에 집중하는 게 ‘남는 장사’다.

■ 후기 - “당신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나에게는 상처가 된다.” 주변 지인들과 ‘진상게임’(진심과 상처)을 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여기저기서 상처 받고도 관계를 위해 꾹 참다가 속병이 생기기 일쑤다. 상대를 크게 불쾌하지 않게 하면서 일침을 가할 수 있는 것이 진상게임의 한마디다. 평소 그런 상황이 생길 경우 편한 이들에게 게임처럼 자꾸 되뇌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 거리낌 없이 활용할 수 있어 자신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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