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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 "이모, 엄마가 요즘 밥을 하지 않아"(上)

  • Editor. 김민주 기자
  • 입력 2022.04.04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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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민주 기자] ‘세돌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물밑에서 그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의미와 맥락을 짚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풍속도요, 미래 변화상의 단초일 수 있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동향 분석이기도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세상, 그 흐름을 놓치지 마세요. <편집자 주>

“우와 집에서 육회를 해 먹을 수가 있어?”

“놀라운 걸.”

지난 설날, 본가 부엌에서 소고기 육회를 정성스럽게 만들고 있는 엄마를 보고 조카 남매는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이모 어릴 때 외할머니는 집에서 피자도 만들어 주고, 칼국수도 직접 반죽 밀어서 만들어 주셨어. 호떡이랑 팥빙수도.”

“정말?”

조카들은 놀라면서도 믿기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이 아이들에게 육회란 식당이나 뷔페에서나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쯤으로 여긴 모양이다.

사실 사먹는 음식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더불어 간편식은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우리 부모 세대와 달리 언니, 그러니까 내 조카들의 엄마 세대는 시대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동시대 부모들에 비해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던 언니는 조카들의 소풍날 그 흔한 김밥 하나도 사 보내지 않고 직접 손수 만들어 보내야 맘 편했던 보통의 엄마였다. 그런데 그러던 언니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모, 엄마가 요즘은 밥을 해주지 않아. 대신 아침마다 물어 ‘오늘은 비비고 먹을래 오뚜기 먹을래’ 하면서. 이모 근데 맛있어. 그래서 괜찮아.”

오랜만에 만난 이모에게 요즘 근황과 느낌을 일목요연하게 전하며 환하게 웃는 조카 모습을 보니 가정간편식이 많은 발전을 이루긴 했구나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주말마다 늦잠 자는 아내에게 “밥 해 달라” 조르고 눈치 보는 일 없어 편해졌다는 형부는 지난주엔 쿠팡에서 몇 십만 원 어치 가정 간편식을 구매했다며 호기로운 모습이다.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의 삶을 이어온 언니는 가족에게 건강한 밥상을 차려주는 것에 대한 막연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사를 오면서 요리하는 공간을 재정비하는 시기와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가정 수업이 겹치면서 본격적으로 가정간편식에 손을 댄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단다.

처음엔 아이들에게 약간의 미안함도 있었지만, 직접 해주는 것과 큰 차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의 부담감도 내려놓게 되고 무엇보다 너무 편해 기울기 시작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땐 직접 요리하는 수고를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고 굳이 강조했다.

갖가지 재료를 다듬고 손질해 국물을 우려내 만들어 내는 정성과 손맛이 담긴 음식이 아닌 그 모든 과정들을 마친 완성된 제품을 쉽게 먹을 수 있는 시대는 분명 발전되고 편리한 세상임엔 분명하다. 다만 한 가지, 음식에는 진한 향수가 서려있다. 간혹 어릴 적 소풍날 먹었던 어머니가 해주신 수리매(오징어의 밀양, 창녕 사투리)김밥이 그토록 먹고 싶다던 학창시절 은사님 말씀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있다.

울 엄마가 만든 김치, 울 엄마가 만든 김밥, 울 엄마가 만든 밑반찬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니 그 맛에 대한 추억도 변함이 없다.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와 돼지갈비찜,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고구마 부침개…. 우리는 그것들을 ‘소울푸드’라고 부른다.

이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엄마의 손맛을 어떻게 기억할까, “비비고 김치찌개와 오뚜기 갈비탕이 진짜 맛있어, 이모” 하면서 간편식 브랜드 메뉴 특징들을 줄줄 꿰고 있는 조카들을 보니 새삼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식문화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궁금해 물었다.

“너는 커서 밥 어떻게 해 줄 거야?”

“이모 난 결혼 안하고 혼자 살거야~” 라고 한다.

과거 가정간편식은 사회생활로 바쁜 직장여성이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요즘은 그 식문화가 대세로 자리 잡아 신성장 동력으로까지 부상하고 있다.

식품기업과 유통사들은 전략적으로 이 사업에 발 담그고 라인업을 강화하고 나섰다. 그 종류도 한식에서 수산물까지 점점 확대되고 향후 더 확장될 기세다.

관련 가전제품도 잇달아 출시되고 있으니, 지금처럼 채소를 다듬고 생선과 고기를 손질해 여러 가지 양념을 다져 요리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들이 훗날엔 맷돌에 콩을 가는 것처럼 대단한 일 정도로 느껴질 날이 머잖아 오지는 않을까.

한편 기자는 문득 궁금해졌다.

1인 거주자가 밥 한 공기 먹고자 몇 인분의 쌀을 씻고 밥솥에 안쳐 밥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게 해준 그들(기업)이. 그리고 간을 맞추기 위해 몇 번이고 입안에 국물 숟가락을 넣어보고 그마저도 실패해 먹는 이의 알 수 없는 표정에 눈치보는 요리초보자의 노고를 알아준 그들이. 3분 만에 덮밥 요리를 뚝딱 먹을 수 있게 한 간편식을 만든 원조들이 누군지 말이다. 지금부터는 그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한다.

■ HMR, 시작은 IMF, 그리고 정점은 코로나19

국내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식사대용식) 시장이 활기 띠며 성장을 한 것은 두 번의 변곡점이 기폭제가 됐다. 우선 지난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맞벌이 가정과 독신자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부터다.

당시 LG백화점(현재 롯데백화점 상호)은 같은 해 6월 가정식사대용식(HMR)을 찾는 고객층을 공략하기 위해 즉석조리 식품코너를 국내 최대 규모로 확대 운영했다. 소포장 냉장판매 유통체계를 갖추고 절임류, 전, 나물, 도시락 등 이른 아침부터 당일 판매할 요리를 만들어 IMF시대에 걸맞은 2천원 전후의 저렴한 가격에 내놨다.

롯데백화점 잠실점도 이 시기 가정식사대용식 판매를 본격화하기 시작, IMF 이후 맞벌이 가족이 늘면서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당시 회사 측은 분석했다.

매장에서 파는 음식은 손맛이 담기지 않았다는 편견으로 구매율이 높지 않았던 간편식이 늘어난 수요에 따라 탕이나 찌개 등 한정된 수에서 다양한 즉석조리식품으로 선택 폭을 넓혀갔다.

이런 가운데 국내 경기 침제로 외식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오뚜기, 제일제당, 풀무원 등 식품회사들은 잇달아 HMR 제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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