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돌이] 촌스러움 속 세련됨, 뉴트로 열풍 (上)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2.04.18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돌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물밑에서 그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의미와 맥락을 짚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풍속도요, 미래 변화상의 단초일 수 있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동향 분석이기도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세상, 그 흐름을 놓치지 마세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패션은 돌고 돈다.’ 10여년 전, 혹은 그 이전에 입었던 옷이 다시 유행할 때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패션 법칙 중 하나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촌스럽게 느껴졌던 세기말 패션이 가장 힙(Hip)하고 세련된 패션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요즘 길거리만 나가봐도 실감할 수 있다. 부모 세대나 입었을 법했던 통바지와 오버핏 재킷, 배꼽티를 입은 젊은이들이 개성을 맘껏 뽐내는 중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생활에 파고든 복고 유행은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레트로(복고) 등장을 두고 과거 스타일이 회귀한 일시적 유행이거나 디지털 시대 피로감에서 시작된 피난처쯤으로 해석했다. 고대 로마 시인 마르쿠스 마르티알리스도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말했을 정도로 현재보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복고는 ‘호모메모리쿠스(추억하는 인간)’에게 늘 추억을 되새기는 통로가 되곤 한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 뉴트로란?

그런데 이제는 이 현상이 한 단계 진화해 해석되고 있다. 바로 뉴트로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

뉴트로는 단순 복고와 다르다. 레트로가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과거에 유행했던 것을 다시 꺼내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같은 과거의 것인데 이것을 즐기는 계층에겐 신상품과 마찬가지로 새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뉴트로는 단순 과거의 물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 감각을 더해 재탄생시킨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뉴트로는 불완전하다. 정갈하고 완전무결하면 뉴트로가 아니다. 나사가 빠진 듯 2% 부족하지만, 오히려 허술함에서 편안과 위로를 느낀다. 명품 브랜드 베라왕은 못생긴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운 ‘어글리 슈즈’로 대박을 냈고, 매끄러운 고음질의 ‘하이파이(Hi-fi)’ 대신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저음질인 ‘로파이(Lo-fi)’가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오래된 물건엔 이야기가 스며들어있다. 뉴트로에선 기능보다 스토리에 집중한다. ‘추억 팔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추억 팔이는 추억을 마치 상품처럼 다루는 사람 또는 일이라는 뜻이다. ‘-팔이’라는 단어 선정부터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데 그 정도로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 전성기나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옛날 물건만 갖다 놓는다고 뉴트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드웨어는 옛 것이나 소프트웨어는 새 것이다. 먼지 쌓인 할머니 집 이불채나 서울 풍물시장 골동품 자체는 레트로다. 이것을 뉴트로 풍으로 꾸민 공간에 갖다 놓아야 비로소 뉴트로가 된다. 무조건적인 재현이 아니라 현 시점의 미학적 해석을 가미하는 것이 포인트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행이 그렇듯 뉴트로를 누가, 언제, 왜 유행시켰는지는 딱 떨어지게 설명하기 어렵다.

지난 2월 24일 재출시된 SPC삼립 포켓몬 빵 [사진=SPC삼립 제공]
지난 2월 24일 재출시된 SPC삼립 포켓몬 빵 [사진=SPC삼립 제공]

■ 방방곡곡 뉴트로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사이 2022년 초 뉴트로 광풍이 불어 닥쳤다.

식품업계에선 추억의 간식 재출시 바람이 불고 있다.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 사이에서 뉴트로 열풍이 불자 이들을 겨냥해 펼친 추억·레트로 마케팅이 곳곳에서 승전고를 울린 까닭이다. 오래전 인기를 끌다가 단종돼 지금은 찾기 어려운 간식이 잇따라 나오며 눈길을 끄는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포켓몬 빵이다. 지난 2월 24일 출시한 뒤 일주일 만에 150만개 판매를 돌파하는 등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포켓몬 빵은 1990년대 후반 국내서 방영돼 지금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빵이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캐릭터 스티커인 ‘띠부띠부 씰’을 모으던 향수도 제대로 먹혀들었다. 예전엔 띠부띠부 씰을 책갈피나 컬렉터 북에 붙이며 친구들과 누가 더 많이 모으나 내기를 하기도 했다. 과거 151개였던 띠부띠부 씰이 159개로 늘어 스티커 모으기가 더욱 더 까다로워졌고, 당시 500원이었던 제품가도 1500원으로 올랐으나 포켓몬 빵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기자도 포켓몬 빵을 사려고 시도했지만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주말 편의점 새벽 입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했는데 빵은 동났다. 편의점 파트타임 근무자는 “배송 차량이 들어오고 20~30분만 지나도 완판된다. 어떤 날은 새벽 제품 입고 시간에 맞춰 대기하다 들어오는 손님도 있었다. 일부 손님은 입고가 더디다고 불평을 하기도 한다”며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

MZ세대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추억의 맛을 그리워하고 띠부띠부 씰을 하나씩 모으던 추억을 되새김하는 한편, 그 당시와 비교해 많이 변한 자신과 환경에 새로운 감동을 받으며 구매 열풍에 가세하고 있다.

1998년 첫 출시 당시에도 월 최대 500만개 이상 판매되며 큰 인기를 누렸던 포켓몬 빵은 재출시 이후 한 달여가 흐른 지난달 21일 기준 610만개를 팔아치우며 옛 영광을 뛰어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추억의 간식이 인기를 끌 듯 외식업계에 부는 뉴트로 열풍도 심상치 않다. 세련되고 깔끔한 프랜차이즈나 레스토랑 풍의 식당·카페보다 최근 청년층들 사이에선 옛날 풍의 이름을 사용하고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의 업장이 호평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간판과 식기, 메뉴판, 내·외부 인테리어 등을 복고풍으로 장식하는 것은 물론,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업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방법으로 뉴트로를 보여주고 있다. 추억의 델몬트 유리병에 음료를 넣어 향수를 일으키는가 하면, 김치 불고기 파스타, 누룽지 튀김과 같이 메뉴 자체를 ‘올드 앤 뉴’ 조합으로 특이하게 만들어 새로움을 심어준다.

심지어 서울 종로구 익선동이나 을지로는 거리 전체가 대부분 레트로 상권으로 이루어져 20~40 세대의 이목을 끄는 중이다. SNS 내에서 익선동이나 을지로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복고풍의 가게에서 친구와 연인들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울 중구 회현역 지하상가 LP 상점 [사진=김준철 기자]
서울 중구 회현역 지하상가 LP 상점 [사진=김준철 기자]

LP 시장도 뜨거워지고 있다. 음악 및 기타 오디오물 출판 업체인 마장뮤직앤픽처스가 LP 공장인 바이닐 팩토리를 가동하면서 13년 동안 국내서 명맥이 끊겼던 바이닐 LP 생산이 2017년을 기점으로 다시 이뤄지고 있다.

MP3 등 디지털 음원에 밀려 지난 2004년 서라벌레코드가 생산 라인을 중단한 이후 LP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반으로 명맥을 이어오다 최근 뉴트로 바람이 불며 생산량이 늘어났다. 마장뮤직앤픽처스는 2017년 2만장이던 생산량이 지난해 10배 수준인 약 20만장까지 올라왔다고 밝혔다.

40대 이상 세대에겐 음악을 듣기까지의 과정과 경험을 뜻하는 '음악적 경험'을 주며 그 시절 자신들이 음악을 들었던 과거로 돌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LP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의 인기는 다른 문화적 경험을 느끼는데서 온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라는 신선한 충격이 작용하고, 수집 욕구를 적절하게 묶어내며 의외의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몇 년 새 달라진 LP 시장 분위기를 체감하기 위해 서울 중구 회현역 지하상가에 위치한 한 LP 상점에 직접 들어가 LP를 구경해봤다. 부모 세대가 좋아할 만한 김현식과 권인하, 홍서범 등 흑백 표지로 덮인 낡은 LP부터 가뭄에 콩 나듯 몇 장 없던 악동뮤지션, 청하 등 요즘 활동하는 가수들 LP까지, 수천 장 LP가 공간 구석구석을 가득 메웠다. 가게가 북적이진 않았으나 LP를 구경하는 도중에도 매장마다 손님 1~2명이 꾸준히 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점 직원은 “요즘 20·30 세대로 보이는 손님들이 늘어나는 게 느껴진다. 10명 중 절반 정도가 그렇다. 아무것도 모르고 온 젊은 손님 같아 보였는데, 2~3주 간격으로 찾아올 정도로 단골이 된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같은 가게를 찾은 익명의 A(31)씨도 “음원은 내가 음악을 소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데, 음반은 내가 이 곡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또 정제되지 않은 소리가 독특해서 새롭다”며 LP의 매력을 설명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식품과 외식업계, LP를 살펴봤지만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뉴트로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일상 곳곳에 파고들고 있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