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노사 소송전으로 확대될까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6.02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지난 26일 대법원이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이후 그 파장이 만만찮다. 특히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 근로시간이나 업무 내용, 정년 등에 대한 조정 없이 근로자의 임금만 깎은 기업들은 근로기준법상 임금채권이 유효한 3년 이내 퇴직자 또는 근로자들로부터 소송당할 위험에 처했다.

임금피크제가 뭐길래 이렇게 여론의 주목을 받는 걸까? 그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임금피크제는 2015년 5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확정해 발표한 이후, 바로 다음 달 정부가 ‘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통해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민간 기업에도 이를 확산하기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본격화됐다.

같은 해 12월 고령자고용법에 따른 정년 60세 의무화와 함께 전 공공기관에 도입을 완료했고, 2016년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의 46.8%, 300인 미만 사업장의 17.3%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정년제를 운영하는 상용 300인 이상 사업체 중 52%, 300인 미만 사업체의 21.8%가 임금피크제를 운영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6일 대법원이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이후 그 파장이 만만찮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6일 대법원이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이후 그 파장이 만만찮다. [사진=연합뉴스]

임금피크제는 크게 정년보장형(정년유지형)과 정년연장형, 고용연장형으로 나뉘며, 이번에 대법원 판결의 쟁점이 된 것은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다.

정년보장형은 정해진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에 도달한 시점부터 정년까지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임금 인상보다는 고용 안정을 원하는 근로자에게 선호되며, 기업으로서도 고용 변동에 따른 부담과 인건비를 동시에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아직 논란이 많은 부분이긴 하나, 임금피크제 절감 재원으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증가시킬 여지가 커지므로 청년구직자의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것도 긍정적 효과로 꼽힌다.

이외에 정년연장형은 근로자의 정년연장을 전제로 임금을 조정하는 제도로, 연장된 정년이 오기 전부터 임금을 감액 조정하는 방식이며, 고용연장형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정년퇴직 이후에 계약직 등의 형식으로 고용을 약속하는 대신 임금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지난 26일 임금피크제 관련 대법원 판결의 골자는 ‘구 고령자고용법(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른 모집·채용, 임금 등에서 연령차별금지는 강행규정이므로, 단체협약·취업규칙·근로계약에서 이에 반하는 내용을 정한 조항은 무효’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노사 합의로 임금피크제가 시행됐더라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그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의 임금을 깎는 것은 연령차별에 해당하므로 무효라는 이야기다.

그럼 좀 더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자.

해당 사건의 쟁점이 된 성과연급제(이후 임금피크제로 명칭 대체)는 기존의 정년 61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근로자가 55세 이상이 되면 그 이전까지의 직급이나 역량등급과는 무관하게 기준연급을 조정한다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B 연구원은 2008년 당시 성과연급제 도입 명분으로 경영혁신과 경영효율 제고를 내세웠고, 노사 합의를 거쳐 2009년 1월 1일부터 해당 인사제도를 시행했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연급제가 도입됨에 따라 2011년 1월 1일부터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의 급여가 성과와 무관하게 삭감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당 직원들의 업무 목표나 내용, 근로시간이 변경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이를 이유로 임금에서 불이익을 받은 것뿐이었다. 더구나 B 연구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51세 이상 55세 미만 직원들의 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성과로 판단하더라도 55세 이상 직원들의 임금이 삭감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이에 대법원은 임금 삭감의 합리적 이유가 없으며, 근로자가 임금이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음에도 이러한 불이익에 대한 대상 조치가 강구되지 않았던 점을 이유로 판결에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서 대상 조치란 대상 근로자에게 임금 삭감을 보전해줄 만한 조치를 뜻하는 말로, 임금을 깎았다면 그만큼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업무 내용을 변경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기준도 최초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와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이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 자체의 무효화를 선포한 것은 아니다. 다만 기업에서 노사 합의를 통해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더라도,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기준에 충족하지 못한다면 무효화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정년연장형이나 고용연장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이번과 달리 좀 더 완화된 기준이 적용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판례를 분석해 기업과 노조,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현장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과거 건강보험공단 판결 등 임금피크제와 관련된 다른 판례들을 보면 연령차별이 아니라고 확정판결이 난 사례도 많다”면서 “하지만 이번 경우와 달리 해당 기업들은 60세 정년 의무화에 따른 대상 조치를 하라는 고령자고용법에 따라 대상자의 직무를 변경하거나 근로시간을 줄이는 등 여러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B 연구원은 이번에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을 모두 위배했다”면서 “우선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으로 경영 효율화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55세 이상 근로자가 더 높은 성과를 거뒀음에도 임금을 삭감한 사실로 볼 때 그저 명목상의 이유였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또 “불이익의 정도 측면에서도 당시 근로자 임금의 절반을 삭감했다”면서 “임금을 깎았으면 직무를 쉽게 해 준다든지 근로시간을 줄여준다든지 해야 하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례가 향후 기업과 근로자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판결 직후 경영계나 기업 인사담당자들 사이로 우려가 확산하는 모양새였지만, 이번 사건이 임금피크제 전체가 아닌 B 연구원만의 특이한 경우로, 합리적이지 않은 임금피크제에 한한 것임을 이해하고는 점차 우려가 잦아드는 추세”라고 밝혔다.

본격적인 시행 8년 차로 접어들었지만, 임금피크제 자체에 대한 비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기업이 근로자의 임금 삭감을 당연한 논리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 중고령자 인건비 절감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것을 기업 자율에 맡겨선 안 된다는 점 등이 주요 논란의 쟁점이다.

실제로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겠다고 공언한 직후 많은 대기업이 청년고용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많은 수가 인턴 프로그램과 교육, 창업 활성화 지원이었고, 신규 직접 채용 수는 적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단기 일자리, 근로 여건이 열악한 일자리만 늘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아직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임금피크제. 향후 나오는 다른 판례들을 지켜봐야겠지만, 기업과 근로자 모두 이번 판결이 미칠 영향력과 유불리를 가늠키 위해 한동안 골머리를 썩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임금피크제를 협상에 이용하거나 실제 소송을 고려 중인 노조로서는 솔깃할 만한, 다년간의 임금피크제 자문 및 소송 경험을 내세운 법무법인 홍보 글이 속속 등장하면서, 향후 노사 간 갈등이 소송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