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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음모론에 관한 고찰 (上)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6.10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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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시력, 청력, 근력, 정신력…. 사람이 지닌 힘의 종류는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럼 여러분의 '이야기력'은 어떤가요? 이야기력은 '내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뜻합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쌓아왔고, 어떤 이야기를 꿈꾸며,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여지훈의 이야기力]은 “좋은 이야기가 좋은 세계를 만든다”는 믿음 아래, 차근하고도 꾸준히 좋은 이야기를 쌓고 나누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편집자 주>

‘음모론.’

여러분은 이 말을 듣는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이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낸 상대가 돌연 말도 섞기 싫은 성가신 존재로 돌변했는가?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강박적인 신경증을 앓고 있으리란 생각에 측은함부터 느껴지는가?

어느 쪽이든, 상대가 말하려는 내용을 들어보기도 전에 특정 기분부터 느꼈다면, 본인의 사고가 왜 그런 식으로 작동했는지 한 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음모론이란 ‘소수의 사람 또는 집단이 은밀한 공모로 세상을 움직인다’고 보는 이론이다. 쉽게 말해 세상을 제 뜻대로 쥐락펴락하는 배후세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음모론이란 ‘소수의 사람 또는 집단이 은밀한 공모로 세상을 움직인다’고 보는 이론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음모론이란 ‘소수의 사람 또는 집단이 은밀한 공모로 세상을 움직인다’고 보는 이론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일찍이 세계적인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음모론은 이제 지적인 욕설이 됐다. 누군가 세상일을 좀 더 자세히 알려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들이대는 논리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해, 누군가 기존 통념에 의구심을 품고 사건의 내막에 대해 다른 해석을 제시할 때, 많은 사람이 이를 들어보지도 않은 채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치부하는 현실을 지적한 말이다.

촘스키에 따르면, 한 권력 집단의 사회 지배력이 커질수록 그 집단은 정치인과 언론인을 앞세워 점차 권력을 강화해 간다. 각종 언론과 매체, 교육 등을 통해 대중을 점점 더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주입하는 대로 정보와 의견을 수용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길들인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이야기로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밖에 없는 인간 특성상 이야기를 통제하는 자, 즉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전파할 수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기 더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종 언론과 미디어 등을 통해 특정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단지 여러 번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대중은 별 의심 없이 그러한 이야기를 믿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교육도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 이젠 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어떠한 ‘사실들’은 단지 오랫동안 그것이 사실이라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아닌 것 같은가? 그럼 묻자. 여러분은 왜 지구가 둥글다고 믿는가? 단 한 번이라도 직접 지구 밖으로 나가 관찰한 적이 있는가? 설령 평평한 모양은 아니더라도 타원형이거나 조금 찌그러진 모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는가?

그게 아니라면 고대부터 숱한 과학자에 의해 그렇게 입증돼왔다고 배우고, 또 누군가 우주로 나가 찍었다는 둥그런 형태의 지구 사진을 계속 접했다는 이유로 무심코 수긍하게 된 것은 아닌가?

■ 음모론이 솔깃한 이유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교수이자 오바마 행정부에서 규제정보국 국장으로도 활동했던 캐스 선스타인은 그의 저서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에서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확신하는 사실을 직접적이고 개인적으로 체득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지적하면서 “우리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지식으로는 결코 지구가 둥글다거나, 화성이 존재한다거나, 윌리엄 셰익스피어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베이브 루스가 실존했다거나, 물질이 일부 전자로 구성된다는 사실 등을 확인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아는 것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말과 믿음, 행동에 근거를 둔다”고 밝혔다.

“아니, 그럼 세상에 사실이라고 확신할 만한 게 얼마나 되겠어?”

맞다. 직접 경험한 것만 사실로서 인정한다면 모르는 것에 대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혼란으로 가득 찬 세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은 설령 그것이 거짓일지언정 어떤 사건을 단순명료하게 설명해 줄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선스타인 교수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그에 따르면 사람들 대부분은 9·11테러, 케네디 대통령 암살, 에이즈 바이러스, 2008년 금융위기, 2013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의 폭발과 같이 극단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지식만으로는 대체 왜 비행기가 충돌했는지, 왜 지도자가 암살당했는지, 왜 테러 공격이 성공했는지, 왜 경제가 갑자기 위기 국면으로 곤두박질치는지를 도저히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면 무성한 추측이 난무하게 되고, 그중 일부는 모종의 음모론과 맞닿아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추측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리는데, 이는 그러한 음모론적 해석이 이들에게 분노와 원망의 적절한 배출구를 제공하거나, 이들의 기존 신념과 합치되거나, 또는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공백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또는 끔찍한 사건의 원인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 부재하는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음모론을 수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끔찍한 사건일수록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감정을 유발하고, 본인의 감정 상태를 정당화할 근거를 찾아 나서도록 하며, 사건의 원인을 누군가의 고의적인 행동 탓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유혹에 이끌리기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문제 제기 의식은 사라지고, 맹목적인 믿음으로 특정 이야기를 사실로 믿게 된다는 것이다. 선스타인 교수는 음모론이 그런 식으로 확산하며, 이것을 음모론이 쇠퇴하지 않고 성행하는 주된 이유로 꼽았다.

■ “대중은 음모론을 좋아해”

이 글은 세간에 떠도는 특정 음모론의 진위를 따지기 위한 글이 아니다. 기자의 본분은 사실에 근거해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는 음모론의 내용을 두고 여기서 갑론을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글을 쓴 이유는 누군가 주입한 지식과 정보를 한걸음 떨어져 보자고 말하는 목소리에 성급히 ‘허황된 음모론’이란 프레임을 씌워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를 어리석은 사람 취급하는 현실을 꼬집기 위함이다. 그러나 동시에, 음모론이 갖는 특징을 알아보고 그 맹점에 관해서 한 번쯤 숙고해 볼 기회를 갖기 위해서기도 하다.

세계인 다수는 인터넷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정보를 접한다. 비단 선진국에서뿐 아니라 인프라가 낙후된 국가에서조차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생활필수품처럼 들고 다니며, 그 손바닥만 한 기기를 통해 세상의 많은 소식을 보고 듣는다.

그런데 잠깐. 의식주를 비롯해 일상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이 가격으로 매겨지는 자본주의 시대에, 왜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들려오는 값싼 정보를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로 바라보려 하지 않을까? 아니, 최소한 그러한 자세로 바라보자고 말하는 목소리마저 왜 쉽게 묵살하려 드는 걸까? 과연 음모론은 정말 허황될 뿐이며, 그것을 떠드는 이들은 바보천치뿐일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가? ‘모종의 권력 집단에 의해 사건이 기획되고 조작됐다’는 이야기에 대해, 권력의 정점에 서 본 적 없는, 아니 근처에 발조차 담가보지 못한 일반인으로서 왜 그런 이야기를 무작정 틀렸다고 치부하는가? 한 번쯤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고 기자가 음모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음모론의 가장 큰 맹점 중 하나는 그것이 사후확신편향적이라는 데 있다. 사후확신편향이란 일이 끝나고 나서야 확신하는 경향, 즉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난 이미 알고 있었어”란 식으로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는 사건을 예측하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그 사건이 충분히 예측 범위 안에 있었다고 보는 경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실제로 사건이 벌어지거나 그 내막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무성한 가정과 추측으로 점철돼있는 것이 음모론이란 말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략을 본격화하기 전만 하더라도, 의외로 많은 이들이 미국 또는 그에 준하는 모종의 세력이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할 것이라고 믿었다. [사진=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략을 본격화하기 전만 하더라도, 의외로 많은 이들이 미국 또는 그에 준하는 모종의 세력이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할 것이라고 믿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예로 들어보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시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략을 본격화하기 전만 하더라도, 의외로 많은 이들이 미국 또는 그에 준하는 모종의 세력이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 믿음의 근간을 이룬 요지는 이렇다. 이미 양국 수뇌부 간에는 적당한 갈등 양상만 유지하다가 서로 합의하자는 모종의 약속이 있었을 것이며, 그렇게 갈등하는 모양새만 취하더라도 러시아는 주요 수출품인 에너지·원자재 가격이 상승해서 좋고,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 역시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에 더해 전 세계에 자국의 영향력을 재인식시키는 계기가 되니 상부상조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러시아군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공식발표를 했음에도 이런 믿음은 견고히 유지됐다.

거짓말 같은가? 당시 관련 뉴스에서 공감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들을 추려봤다.

“이거다 쇼하는 거다. 미·러 간에 이심전심 쇼질이야. 기름값, 가스값 오르면 두 나라만 돈벼락 맞는다.”(cyk3****)

“근데 잘 들여다보면~ 이번 세계를 긴장에 빠뜨려 제일 이득 보는 건 바이든, 푸틴이다. 이들이 진짜 적일까? 라는 생각 해본 적 있나?”(cart****)

“아니 바이든 겁나 장작 넣네. ㅋㅋ 어떻게든 전쟁으로 돈 벌 궁리하냐.”(wl09****)

“바이든이 아주 전쟁 핑계로 지 지지율 개판인 것 올리려고 안달이 났네. 달러 가치 방어하려고 쇼 난리구나.”(bost****)

위의 댓글들이 주요 언론사 기사의 최상위 댓글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은 눈앞에서 대놓고 음모론을 떠드는 이를 어리석다고 기피하지만, ‘대중은 음모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만큼 더 잘 보여주는 예가 또 있을까?

흥미로운 점은 정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 이제는 “이럴 줄 알았어. 전쟁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것이었어. 결국 전쟁 무기도 팔아먹겠군”과 같은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또한 이러한 글들이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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