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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음모론에 관한 고찰 (中)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6.10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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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막 너머의 비밀, 그리고 소외된 대중

영국의 심리학자 페트릭 레만 박사는 2007년 영국의 과학기술잡지 뉴사이언티스트에 실은 기고문에서 음모론에 대한 믿음은 현대 문화에 만연해 있으며, 수천 편의 영화, 토크쇼, 라디오 등을 통해서 그 확산세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새로운 이론들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손쉽게 공유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이 그러한 확산세를 부추기는 주요 동력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저명한 음모론자의 강연은 당시에만 이미 수만 명의 청중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음모론에 관한 증거를 모은 책들도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렸으며,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9·11테러를 모의했다고 주장하는 인터넷 다큐멘터리 ‘루즈체인지(Loose Change)’는 당시 1000만 번째 다운로드를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레만 박사는 음모론의 확산에 대해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더 많이 분리돼 가고 있음을 경험하고, 권력기관으로부터 소외돼 점점 무력해진다고 느끼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음모론은 대중이 정체를 확인할 길 없는 ‘선별된 소수의 권력 집단’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게끔 만든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음모론은 대중이 정체를 확인할 길 없는 ‘선별된 소수의 권력 집단’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게끔 만든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이 말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중요한 것은 음모론의 사실 여부가 아니다. 몇몇 중대한 사건의 내막은 대중에 거의 공개되지 않으며, 설령 비밀이 새어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또 다른 세력에 의해 조작된 음모인지 아닌지 일반 시민으로서는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음모’라고 낙인찍힌 이야기들을 섣불리 뜬소문으로 치부하며 관련 사건에 무관심해지는 시민들의 태도다. 가령 정치적 음모론이 돌기 시작하면, 자신이 확인할 길 없는 거대하고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접한 시민들은 점차 정치를 불신하게 되고, 정치에 관심을 잃게 된다.

이 과정은 대중이 정체를 확인할 길 없는 ‘선별된 소수의 권력 집단’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본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힘은 시민들의 결집력에 있지만, 스스로를 무능하고 소외된 존재로 여기게 된 시민들은 점차 세상일에 관심을 끊고, 언론이 뿌리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며 살아가게 된다.

유명인사들의 말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한다. 한국정치사회연구소가 2020년 발행한 ‘한국과 국제사회’ 제4권에 실린 ‘음모론의 특성과 한계’(곽인신 저)에 따르면, 영국의 존경받는 수상이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세계는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배후세력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고 언급했으며,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도 “어딘가에 철저히 조직적이고 대중에게 노출돼 있지 않지만, 언제나 눈을 번뜩이며 감시하는 세력이 있다. 이 세력은 완전하고 어디에나 손길을 뻗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나쁘게 평할 때는 큰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배후세력’, ‘어딘가에서 은밀히 세상을 감시하며 세상 어디에나 손길을 뻗치는 세력’. 듣기만 해도 뭔가 비밀스럽고 섬뜩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가.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베버는 권력의 이러한 속성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었다. 그는 “지속적이며 잘 정비된 통치의 비결은 결정적으로 비밀 유지에 있으며, 비밀 유지를 요구하는 정도가 높을수록 권력과 통치 기관의 등급 역시 높아진다. 비밀과 금기는 통제받지 않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주므로 모든 지배자에게 사랑받는 도구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대중의 머릿속에 비밀의 장막 너머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대중은 스스로 미지의 권력자를 상정하게 되고, 세상일이란 그 권력자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진행된다는 생각에 빠져 점점 무기력해지고 길들이기 쉬운 온순한 양이 되고 만다.

비단 대중뿐이 아니다. 기업과 기업, 정당과 정당, 심지어 회사 내 상사와 부하직원 간에도 ‘당신이 모르는 뭔가를 나는 알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 된다. ‘비밀스러움’이야말로 상대를 소외시키면서 나를 강력하게 만드는 권력의 핵심인 셈이다.

■ 극단적인 사건과 포퓰리즘

그런데 오랜 시간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써 무기력해진 대중이 돌연 무섭게 들고일어날 때가 있다. 사회 불행과 비참한 상태가 지속되다가 어떤 극단적인 사건이 불씨가 될 경우, 지금껏 겪은 고통이 모종의 적의 악의적인 계획 때문이라고 믿게 된 대중은 더 이상 적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고 거침없이 드러내 보인다. 그 적은 개인이 될 수도, 정당과 기업, 국가,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앞서 선스타인 교수가 언급했듯, 이는 끔찍한 사건일수록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분노를 유발하고,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그런 감정 상태를 정당화할 근거를 적극적으로 찾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건을 누군가의 고의적인 행동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하는 이런 상황에서, 특정한 ‘적’을 상정한 음모론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건 흔치 않다.

생각해보라. 현재 스스로 무척이나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의 원인이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의 별생각 없는 행동이나 실수, 무관심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게 받아들이기 쉬울지, 아니면 못된 악당의 악의적인 계획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받아들이기 쉬울지.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정말로 그런 악당이 존재하는지, 또 존재하더라도 대중이 겪은 고통의 원흉인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대중이 오랜 시간 불행과 무력감을 겪어왔다는 사실이며, 그래서 이제는 적을 무찌르기 위해 자신들을 이끌어줄 강력한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이러한 특성을 꿰뚫고 있는 포퓰리스트라면 이를 강력한 권력 획득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 음모론과 신앙의 교집합, 바로 ‘믿음’

그런데 음모론을 들으면서 어딘가 묘한 익숙함을 느끼지 않는가?

‘세상을 계획대로 철두철미하게 움직이는 막후의 존재가 있다’는 대목에 집중해보자. 그리고 그 막후의 존재에 ‘신(神)’이란 용어를 대신 넣어보자. 일반인으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도 인지할 수도 없지만,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고, 세상에 대해 계획을 세우며, 세상일을 좌지우지하는 존재 말이다. 신보다 여기에 더 잘 어울리는 단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음모론은 ‘사실’의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다. 음모론의 진위보다 그것이 촉발하는 일련의 현상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 아닌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음모론은 ‘사실’의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다. 음모론의 진위보다 그것이 촉발하는 일련의 현상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 아닌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그렇다. 이제야 음모론의 윤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음모론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믿음’의 문제다. 음모론의 진위보다 그것이 촉발하는 일련의 현상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 아닌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과학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였던 칼 포퍼는 그의 저서 ‘추측과 논박 : 과학적 지식의 성장’에서 “사회 음모론은 유신론의 형태보다 훨씬 원시적인 것으로,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나 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비판한 바 있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는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이 트로이 평원에서 벌인 전쟁과 그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일리아스는 평원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이 올림포스 신들이 꾸민 다양한 음모에서 비롯됐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는데, 포퍼에 따르면 세상일이 소수의 개인 또는 집단에 의해 움직인다는 음모론은 바로 이러한 믿음의 변이된 형태에 불과하다.

신의 시대가 끝나면서 그 자리를 가상의 개인과 집단이 채웠을 뿐이라는 포퍼의 주장은, 세간에서 음모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되는 여러 단체에 종교의 그것과 흡사한 의례나 의식 등이 있다는 사실에 의해 상당한 타당성을 부여받는다. 포퍼는 이 같은 음모론이 실제로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만 그 안에 진실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 다른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는 진정한 음모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음모들이 궁극적으로 성공하는 일은 극히 드물며, 음모론은 과학적 명제가 갖춰야 할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과학과 실험에 의한 반증 가능성이 없는 비과학적인 방식이므로, 사회과학이라면 이러한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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