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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에 박힌 가시와 난민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7.0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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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아, 잠깐만. 손톱이랑 살갗 사이에 가시가 박혔는데 너무 아파!"

아주 조그마한, 1cm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쩌다 박힌 가시에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이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인생의 고난'이란, 불확실한 노후 문제, 누굴 닮아선지 좀체 말을 안 듣는 자녀의 장래 문제, 좀 더 심각해진다면 연봉의 반쯤 되는 자녀 학자금을 충당해야 하는 문제, 연체되지 않도록 꼬박꼬박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문제, 혹은 배우자 몰래 게임처럼 시작한 주식 계좌가 두 자리 시퍼런 불로 가득한 문제, 뭐 그런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문제를 결코 작다고 폄하할 마음은 단 일 푼도 없다. 다만 세상에는 좀 더 절박하고 즉각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며, 본능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에 시달리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저 알리고 싶었다.

세상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로 넘쳐나지만, 너무나 자주,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가장 인기 없는 이야기로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공허한 메아리처럼 맴돌다 사라질 뿐이다. [사진=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세상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로 넘쳐나지만, 너무나 자주,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가장 인기 없는 이야기로 치부된 채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공허한 메아리처럼 맴돌다 사라질 뿐이다. [사진=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지중해 중부를 횡단하던 해상 난민이 타고 있던 고무보트가 찢어지며 보트가 침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중해, 그러니까 바다 한가운데서 말이다. 말이 바다 한가운데지, 사방을 둘러봐도 시퍼런 물뿐인 망망대해, 바로 거기서 벌어진 일이다. 

구조팀이 약 3시간의 수색 끝에 지중해 한복판에서 보트를 찾았을 때 보트는 이미 파손돼 침몰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대다수 사람이 바다에 빠진 지 오래였고, 가까스로 보트에 탑승해 있던 이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이 사고로 최소 22명이 실종됐고, 심폐 소생 노력에도 불구하고 1명의 임산부가 사망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라앉는 고무보트에서 71명의 사람이 구조됐다는 점이다.

"구조 당시 저희가 목격한 상황은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보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조 작업이 얼마나 까다로울지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열댓 명은 보트에 뒤엉킨 상태였고, 대부분은 바다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당시 국제 비영리단체 국경없는의사회의 수색구조선 지오배런츠호에 타고 있던 리카르도 가티 수색구조팀장의 말이다.

"생존자들은 모두 매우 지쳐 있었습니다. 바닷물을 들이켠 이들도 많았으며, 장시간 물에 빠져 있던 탓에 저체온증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연료로 인해 중증 화상을 입은 이들도 있었는데, 구조선 위에서 할 수 있는 치료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역시 지오배런츠호에 탑승하고 있던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스테파니 호프스테터 의료팀장의 말이다. 비극을 직접 목도한 이들의 증언은 계속 이어졌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침묵과 무관심으로 수천 명이 유럽 문턱을 넘기 전 망망대해에서 목숨을 잃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해상 수색구조 단체의 활동만으로는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럴 여력도 없을뿐더러 이는 각국 정부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 활동이 결코 충분치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국가 차원에서 나서야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만4184명이 지중해를 횡단하다가 실종됐고, 올해만 해도 이미 721명의 실종자가 보고됐다.

물론 그렇다고 국경없는의사회가 그저 넋 놓고 수천, 수만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걸 지켜보기만 한 건 아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15년부터 독자적, 또는 뜻 맞는 다른 단체들과 공조해 지중해 중부에서 해상 난민 수색·구조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8만5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구조해왔다. 그중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용 중인 전세 선박 지오배런츠호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 사이 총 11번 출항해 47번의 구조 활동을 전개했고, 그 결과 바다에서 3138명을 구조했으며 10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생존자 중 34%는 아동이었고, 그 중 89%는 보호자가 없거나 가족을 잃은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생존자 265명이 폭력, 고문, 학대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했으며, 이 중 63명은 성폭력과 성 관련 폭력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많은 폭력이 리비아에서, 또 리비아 해안경비대에 붙잡혀 강제로 송환되는 과정 중 자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진행형으로 지구 저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비극에 대해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손톱 밑에 박힌 자잘한 가시에 호들갑 떨기 이전에, 보다 실재적인 죽음에 맞닿은 이들의 공포를 한 번쯤 더 떠올리고 입을 다무는 게 최선일 뿐.

세상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로 넘쳐나지만, 너무나 자주,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가장 인기 없는 이야기로 치부된 채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공허한 메아리처럼 맴돌다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그 안타까운 사실에도 불구,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고 믿기에 기꺼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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