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남한 정권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놨다. 그는 “힘에 대한 비정상적인 과욕과신에 빠져 광기를 부리며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실행에 앞장서는 남조선 보수정권"으로 규정하면서 윤 정부가 대북 선제타격 등 위험한 시도에 나설 경우 '전멸'할 것이라는 고강도 위협으로 첫 경고 메시지를 발신했다.

올해 들어 가장 긴 ‘19일의 잠행’을 끝내고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69주년 당일에 ‘응징’ ‘전멸’ 등의 거친 단어들을 동원해 대남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윤 정부 출범 이후 선전매체를 중심으로 이어지던 대남 비난전에 김 위원장이 직접 전면에 나서면서 남북관계의 긴장 수위는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8일 김 위원장이 전날 평양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앞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 정권과 군부깡패들이 군사적으로 우리와 맞서볼 궁리를 하고 그 어떤 특정한 군사적 수단과 방법에 의거해 선제적으로 우리 군사력의 일부분을 무력화시키거나 마슬수(부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천만에!"라며 "그러한 위험한 시도는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것이며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강하게 위협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윤석열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고강도 수위로 비난한 것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더욱이 윤 대통령을 직함도 없이 직접 비난 대상에 올렸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통상 ‘집권자’‘남조선 당국자’ 등의 표현으로 남측 대통령을 비난해 왔던 관례를 깬 것으로 볼 때 강한 적대감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윤석열과 그 군사깡패들이 부리는 추태와 객기를 가만히 앉아서 봐줄 수만은 없다"며 "우리의 자위권 행사를 걸고들고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지금 같은 작태를 이어간다면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원색적 비난에 엄중 경고까지 더했다.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틀 만인 지난 5월 12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3발을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이달까지 매달 두 차례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방사포 등 다양한 형태의 시험발사로 무력도발을 이어오더니 이번엔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말폭탄’까지 터뜨린 것이다.

지난 5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시기 등에 맞춰 북한의 7차 핵실험 임박론이 여러 차례 제기된 가운데 북한은 핵 무력 행사와 관련해서는 일단 비난전으로 대응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 우리 무장력은 그 어떤 위기에도 대응할 철저한 준비가 돼 있으며 우리 국가의 핵전쟁 억제력 또한 절대적인 자기의 힘을 자기의 사명에 충실히, 정확히, 신속히 동원할 만전태세에 있다"고 주장했다. 당장 다음달 한미연합훈련이 예고된 상황에서 미국과의 어떤 군사적 충돌에도 대처할 철저한 준비가 돼 있다는 확언으로 대미 경고 수위를 ‘신경전’ 수준으로 조절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연합훈련을 걸고 들어가면서도 "남조선 것들의 허세성 발언들과 형형색색의 추태는 핵 보유국의 턱 밑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적인 불안감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간 미국을 향해 ‘강 대 강’으로 비난전을 펴온 것과 달리 이번 김 위원장의 연설은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읽힌다.

전문가들도 이번 연설의 이례적인 비방 수위와 그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연설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직책도 생략한 채 직접 경고를 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불신과 반감 정도와 향후 대남 대적 투쟁의 향방을 가늠케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미가 대북 강경 접근 외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상당 기간 한반도 정세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부총장도 "우리 새 정부 출범에도 침묵을 지키다가 공식 매체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연설을 통해 강력히 비난함으로써 대남 경고 메시지의 무게감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라고 짚었다. 아울러 그는 "강제 북송, 서해 공무원 피살 등에 대한 직접 언급은 없으나 가장 위험한 도마 위에 올라선 대통령, 가장 큰 위험 앞에 노출된 정권이라는 손가락질 등을 언급하면서 최근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대한 간접적, 우회적 언급을 시도하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통상 한미연합훈련을 앞두고는 북한의 대결적 여론전이 높아지는 시기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 한미 양국에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 대북협상 분위기 조성 등을 위해 연기·축소해왔던 연합훈련이 올해는 대규모로 ‘정상화’되기 때문에 북한의 비난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윤 정부를 직격한 ‘김정은 말폭탄‘에 그치지 않고 다음달 22일부터 9월 1일까지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을 전후로 북한의 핵·미사일 무력 도발을 한층 강화해 재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북한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로 한반도에 위기감이 휘몰아쳤던 2017년.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사이에 ”늙다리 미치광이“ ”꼬마 로켓맨“ 등의 말폭탄이 태평양을 오가면서 북미간 극한 갈등이 한반도를 강타했던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의 대남 강경 발언 수위를 5년 전 당시 ’위험‘ 수준으로까지 비화될 신호탄으로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최고존엄’이 직접 육성으로 첫 대남 경고를 고강도 비방으로 쏟아낸 만큼 첨예한 남북 대립 모드가 이어질 공산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