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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밥도 안준다고? 스웨덴 게이트의 오해와 진실 (上)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2.08.1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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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물밑에서 그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의미와 맥락을 짚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풍속도요, 미래 변화상의 단초일 수 있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동향 분석이기도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세상, 그 흐름을 놓치지 마세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스웨덴 게이트.’

이름만 들었을 땐 정치·경제적 대형 스캔들이 터진 것으로 충분히 오해할만하다.

지난 5월 북미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을 통해 남의 집에서 문화·종교 차이 때문에 겪었던 이상한 일들을 묻는 글이 올라왔고, 여기에 많은 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겪은 다채로운 경험의 ‘썰’을 풀기 시작했다. 여기서 “스웨덴인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엄마가 식사 시간이 됐다고 부르자 친구가 자기 밥 먹고 올 때까지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다”는 주장의 글이 첫 번째 글로 올라왔다. 그 글 아래로 “나도 당했다”는 비슷한 글들이 각국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일파만파 퍼진 것이 스웨덴 게이트의 골자다.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손님 접대의 관습과 완전히 상반되는 비(非) 접대 문화가 있다는 사실이 네티즌들에게 알려지며 도미에 올랐고,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선 ‘#스웨덴 게이트(#Swedengate)’라는 해시태그까지 붙으며 밈(meme)으로 확대, 재생산 됐다.

스웨덴 국기 [사진출처=픽사베이]
스웨덴 국기 [사진출처=픽사베이]

■ 왜 밥을 안 줄까?

인터넷상의 여러 증언을 교차 검증하면, 부풀려진 일부분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문화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주한 스웨덴 대사관 측은 논란이 확산되자 공식 SNS를 통해 부랴부랴 간접 해명을 했으나, 한 스웨덴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18%는 친구 집에서 밥을 얻어먹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오히려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그렇다면 스웨덴 게이트는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스위스 일간지 베르너 차이퉁은 스웨덴 게이트를 다루면서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스웨덴인 조상 격인 바이킹에겐 다른 사람에게 초대받아 식사하는 것을 빚지는 행위로 여기고 나중에 이를 갚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을 내놨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고대의 일이고, 이후 종교개혁과 산업혁명을 거치며 스웨덴 접대 문화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다른 역사 기록에 따르면 바이킹 시대만 하더라도 다른 문명권과 비슷한 접대의 관습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장 북유럽 신화의 최고 신인 오딘만 보더라도 손님을 차별 없이 대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현대 스웨덴에서 바라보는 가장 유력한 설은 바로 북유럽 특유의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에 존재하는 생활 규범에 ‘얀테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생활 기저에 깔리는 강력한 규칙으로 ‘겸손의 법칙’ 정도로 비유 가능하다.

첫째,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셋째,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넷째,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자만하지 말라.

다섯째,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여섯째,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일곱째, 내가 무엇을 하든지 다 잘할 것이라고 장담하지 않는다.

여덟째, 다른 사람을 비웃지 않는다.

아홉째, 다른 사람이 나에게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째,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이를 줄여 말하자면 자신을 남들보다 더 뛰어나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법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평등 사회, 혹은 복지 선진국이 되게끔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동시에, 사회 안정성 그 자체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간주된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에 존재하는 생활 규범에 ‘얀테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생활 기저에 깔리는 강력한 규칙으로 ‘겸손의 법칙’ 정도로 비유 가능하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이 공동체 의식은 극단적인 프라이버시 중시 문화와 연결된다. 자기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걸 강요받다 보니 남들에게도, 또는 사회에도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면서 타인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흥미롭게도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얀테의 법칙 영향을 강하게 받는 국가들과 지역에서 유독 손님 대접이 박한 경향이 있다. 북유럽 사람들은 하루 플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예정에 없던 상황을 피하고자 한다. 하루의 일정 또한 그들의 사생활이기 때문이다.

이 프라이버시라는 것은 개인과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과 가정 사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타인과 사회적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타인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하는 것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존중의 방법은 각자의 시간이나 공간 등 모든 것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들의 규칙에 따르면 초대받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먹을 걸 알아서 해결하거나, 식사 시간 전에 떠나야 한다.

전 세계적인 격한 반응에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국가 사람들은 예정되지 않은 방문이었다면 계획해뒀던 식료품이나 요리의 재료들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고 해명했다. 또 손님이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손님의 가족이 차려둔 식사에 지장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즉 손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북유럽 지도 [사진출처=픽사베이]
북유럽 지도 [사진출처=픽사베이]

■ 같은 유럽도 스웨덴 손절, 인종 차별 문제까지?

하지만 해명은 다소 부족한 듯했다. 오히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돈을 내기도 하며, 같은 맥락에서 도시락을 싸가야 한다는 증언도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극소수 사례이긴 하지만 집에 놀러 온 사람에게 화장실이 아니라 휴대용 변기를 쓰게 하거나, 비닐봉지를 주며 용변을 보고 가져가라고 하는 식의 충격적인 소식도 전해진다. 스웨덴인들도 “그렇다”고 하는 댓글을 달며 내부 고발(?)을 이어가고 있어 상당한 놀라움을 전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같은 유럽 사람들도 스웨덴 게이트는 이해하기 어려운 관습이라며 SNS상에서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물론 독일과 벨기에, 스위스 등도 식사 시간대에 상대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실례라고 여기는 것은 유사하다. 그러나 일단 방문한 손님에겐 식사 여부를 묻고 함께 먹는 경우가 대다수다. 상황이 여의찮다면 식사 전에 미리 손님을 보내는 한이 있어도 최소한은 해줘야 한다는 인식은 박혀있다.

손님 접대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남유럽은 스웨덴 게이트는 일어나선 안 되는 문제라고 비판하는 반응까지 나온다. 남유럽 문화권에선 손님 대접을 극진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님이 만족할 정도로 대접하지 않는다면 자기 명예를 먹칠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유럽 국가인 튀르키에나 그리스 등에선 손님이 오면 미리 준비하는 문화가 있고, 손님이 먹는 음식이 초대하는 가정 그 자체를 보여준다고 생각해 요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함께 식사하고 난 뒤 손님이 주인의 요리에 대해 칭찬하면 다음에 다시 초대하거나 더 좋은 요리를 대접하려 한다.

스웨덴 게이트가 핫한 관심을 끌고, 해명성 반론이 나오는 과정에서 스웨덴의 인종차별이 재조명되고 있기도 하다. “스웨덴 게이트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모두 백인인 스웨덴인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까닭이다. 즉 인종에 따라 식사 제공 여부가 달라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은 지난해 8월 ‘어른들은 무엇을 하나요?’라는 보고서를 통해 스웨덴 전국 32개 학교의 만 11세 학생 1117명을 대상으로 인종 차별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이주 배경을 가진 학생 4명 중 1명은 차별 및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으며, 대부분이 인종에 의한 차별이라고 답했다.

스웨덴 사람들이 정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인종 차별적인 일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웨덴 게이트는 본래 의미에서 스웨덴 내 인종 차별을 가리키는 의미까지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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