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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생충'으로 들춰진 주거빈곤...다시는 '반지하 비극' 없으려면?

  • Editor. 강성도 기자
  • 입력 2022.08.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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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2020년 오스카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처럼 홍수가 한국의 사회적 격차를 드러냈다.”(로이터통신)

“(수해 참사가 난) 이 집은 ‘기생충’에 등장하는 ‘반지하’(banjiha)와 거의 똑같이 생겼고, 주인공 가족이 폭우로 인해 집에 들어찬 물을 필사적으로 퍼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결말은 더 최악이다.”(영국 공영방송 BBC)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서울을 강타한 지난 8일 삼대가 살던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 침수로 고립돼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3명이 숨진 비극에 대한 외신의 조명이다. 한국만의 독특한 ‘반지하의 삶’으로 양극화 문제를 다룬 ‘기생충’에서 침수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2년 만에 실제 현실의 수해 참사로 밀려들어 ‘불편한 유사성’(로이터)을 불러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 수상으로 한류의 지평을 넓히자 정부는 반지하의 주거빈곤에 대한 개선책 마련에 나섰지만 주거의 질이 위태로운 실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구촌의 기후변화로 이같은 재난에 갈수록 취약해지는 지하·반지하의 주거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정책 당위론이 고개를 들지만 주거빈곤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소할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총 32만7000가구가 지하(반지하 포함)에 거주하고 있다. 2010년(51만8000가구)과 2015년(36만4000가구)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전국 2092만가구의 1.6%를 차지한다. 서울( 20만가구), 경기(8만8000가구), 인천(2400가구)이 1만가구 이상으로 수도권에 96%가 쏠려 있는 것이다. 지역별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지하·반지하 가구 비율은 도심이 발달된 서울(5.0%), 인천(2.1%)에 이어 경기(1.7%)가 그 뒤를 잇는다.

지난해 경기연구원의 ‘반지하의 거주환경 개선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진행된 서울 반지하 거주 가구 실태조사 결과, 반지하 주택의 주거환경은 채광 71.5%, 환기 58.6%, 방수 46.2%가 불량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지하 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4.8년으로 비교적 긴 기간 거주하고 있다. 또한 반지하 가구 중 기초생활수급가구는 29.4%에 달하며,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는 23.0%으로 나타났다.

신림동 일가족 참사에 이어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 여성도 반지하 자택에 고립돼 숨지는 비극이 이어지자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에 취약계층의 주거권 보장 대책을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0일 성명을 통해 "정부의 취약계층에 대한 무심함이 만든 참사"라며 "노후한 반지하 주거공간에 대한 전면적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장기적으로 반지하를 비주거용도로 전환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밝혔다. 이번 비극은 사회복지 전달 체계, 도시 재난 대응 체계, 취약계층 주거 안정성 문제가 결합된 사안이라고 지적한 경실련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반지하에 거주하는 세대에 대해 지방정부가 중앙의 지원하에 주거 이전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며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물리적 환경 개선 및 주거수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지하 거주 문제가 가장 큰 서울시부터 10일 ‘지하·반지하 거주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내놓았는데, 앞으로 서울에서는 지하·반지하 공간은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지하․반지하 거주가구를 위한 안전대책 주요 내용. [그래픽=연합뉴스]
서울시의 지하․반지하 거주가구를 위한 안전대책 주요 내용. [그래픽=연합뉴스]

서울시는 지하·반지하에서 사람이 사는 ’주거 목적 용도'를 전면 불허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할 방침이다. 법 개정까지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번주 중 지하층을 주거용으로 건축 허가하지 않는 내용의 '건축허가 원칙'을 각 자치구에 전달할 계획이다.

2010년 태풍 곤파스가 강타한 이후 서울시는 저지대에 반지하 주택 신축을 금지했다. 2012년 건축법 제11조에 '상습침수구역 내 지하층은 심의를 거쳐 건축 불허가 가능'하도록 법도 개정됐지만 그 이후에도 반지하 주택이 4만호가량 건설된 것으로 파악된 만큼 앞으로는 상습 침수 또는 침수우려구역을 따지지 않고 지하층에서는 거주할 수 없도록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장기적으로 서울 시내에서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애 나간다는 계획에 따라 기존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추진, 기존에 허가된 지하·반지하 건축물에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주거용 지하·반지하 건축물을 없애 나가기로 했다.

서울시는 인센티브로 건축주의 참여를 유도하고 다양한 활용을 모색한다.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가 나간 뒤에는 더 이상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비주거용 용도 전환을 유도하는데 인센티브 방안도 마련한다. 근린생활시설, 창고, 주차장 등 비주거용으로 전환할 경우, 리모델링을 지원하거나 정비사업 추진 시 용적률 혜택 등을 주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한다. 세입자가 나가고 빈 공간으로 유지되는 지하·반지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 '빈집 매입사업'을 통해 사들여 리모델링, 주민 공동창고나 커뮤니티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상습 침수 또는 침수우려구역을 대상으로 모아주택, 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통한 빠른 환경 개선을 추진한다. 이 지역 지하·반지하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기존 세입자들에는 주거상향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입주 지원 또는 주거바우처 등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2020년 8월 서울시 은평구에서 반지하 거주가구의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 지원사업이 진행된 바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반지하 주택은 안전·주거환경 등 모든 측면에서 주거취약 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유형으로,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며 "이번만큼은 임시방편에 그치는 단기적 대안이 아니라 시민 안전을 보호하고 주거 안정을 제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거주용 반지하 ‘퇴출’ 정책에는 대체 주거지 발굴, 원활한 주거상향 사업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물량 확대, 주거 바우처 예산 확보 등이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정교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민단체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주거권네트워크는 11일 논평에서 "지하·반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부담가능한 수준의 대체주택 공급과 주거비 보조 등이 전제가 되지 않는다면 서울시의 대책은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2020년 반지하에 대한 전수분석과 지자체 점검 등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주거환경이 열악하거나 침수 우려가 있는 반지하 등에 거주하는 주거취약가구를 대상으로 공공임대 이주 등 주거상향 지원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재해·재난으로부터 반지하 등 주거취약가구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근본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해 이번과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10일 긴급 당정협의회를 통해 지하·반지하 주택과 같이 주거 취약지역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1년에 1300가구씩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을 확충해 활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일가족 3명이 전날 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일가족 3명이 전날 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했다. [사진=연합뉴스]

외신들이 기생충 신드롬에 이어 한국어 발음을 알파벳으로 옮겨 ‘banjiha’로 표기하면서 이번 기록적 폭우 사태로 드러난 한국의 주거빈곤을 들춰냄에 따라 우리 중앙·지방정부의 대응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며 주목받는 상황이다.

주거빈곤은 국가의 최저주거기준(2인 기준면적 26㎡, 수세식 화장실·전용입식 부엌 등)을 충족하지 못한 주거환경과 이른바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 등의 비주택거주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유엔은 2018년 세계 11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한국의 주택공급 부족이 특히 젊은이와 빈곤층에 ‘실체적 장벽’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책 드라이브가 제대로 걸린다면 서울을 중심으로 지하·반지하 거주가 점점 사라지게 되지만 정밀한 정책 검토를 통해 예산 확보, 현 주거비용에 맞춘 실질적인 대안과 중장기 이주 지원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국토연구원은 지난해 '지하주거 현황분석 및 주거지원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반지하 가구에 대한 지원 정책으로 저소득 다자녀가구 공공임대주택 입주우선권 부여, 입지를 고려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을 제언했다. 주거 환경은 열악해도 도심 지역이라 교통이 편리하고 자녀가 있는 가구의 경우도 원룸형 비주택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주거비용으로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는 차선의 선택으로 지하로, 반지하로 찾아들어가는 게 현실이기에 나온 정책 대안으로 볼 수 있다.

저성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하·반지하의 세입자들이 현재 살고 있는 정도의 싼 비용으로 ‘반지하 탈출’이라는 주거 사다리에 올라타지 못한다면 옥탑방, 고시원 등 또 다른 '비정상 거처'로 내몰리는 풍선효과도 배제할 수 없기에 정책 대안 마련은 실효성 확보가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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