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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게임의 매력, 어디서 오는 걸까 ①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9.16 17: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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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시력, 청력, 근력, 정신력…. 사람이 지닌 힘의 종류는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럼 여러분의 '이야기력'은 어떤가요? 이야기력은 '내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뜻합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쌓아왔고, 어떤 이야기를 꿈꾸며,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여지훈의 이야기力]은 “좋은 이야기가 좋은 세계를 만든다”는 믿음 아래, 차근하고도 꾸준히 좋은 이야기를 쌓고 나누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편집자 주>

“약 15년 전에 자유롭게 그 멋진 세상을 탐험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사람들과 모닥불 주위에 앉아 소소한 이야기에도 즐거워했었지. 다들 잘 지내고 있는지, 어릴 적 함께 낭만을 꿈꿨던 오랜 벗들아. 우리가 그 멋진 세상에 대한 추억을 공유한 세대라는 게 이토록 감사한 일일 줄이야. 난 그때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의 시간을 살아와 이제 서른셋이 되었고, 현실에 맞서 좀 더 영악해졌으며, 그때처럼 마냥 낭만을 좇을 수만은 없게 되었네. 그래도 그 씨앗은 늘 가슴에 품겨 있어, 이렇게 무심코 그때의 음악을 들을 때면 잊었던 마음들이 언제고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네. 이런 좋은 음악을 올려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몇 년 전 한 유튜브 피아노 연주곡 영상에 단 댓글이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는 동안 기자가 쓴 댓글은 해당 영상과 관련된 댓글 중 공감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 중 하나가 됐고, 그 밑으로는 대댓글(댓글에 다시 달리는 댓글)도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한동안 잊은 채 세월을 보내던 중 오랜만에 알람이 울렸다. 새로운 대댓글 하나가 달렸다는 알람이었다.

게임의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일까? [사진출처=언스플래시]
게임의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일까? [사진출처=언스플래시]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서, 눈물이 날 정도의 좋은 댓글입니다.”

그 한 줄의 문장을 통해, 얼굴도 이름도 모를 누군가로부터 전해진 고마움의 온기가 잔잔하게 가슴에 번졌다. 어떤 이에게는 눈물이 날 정도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곳. 요즘 같은 시대에 탐험과 연주, 모닥불과 낭만, 이런 단어가 일상처럼 쓰이곤 했던 세계란 과연 어떤 세계였을까.

그곳은 컴퓨터 안의 세계였고, 화면과 키보드, 스피커를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세계였다. 눈치챘는가? 맞다. 바로 게임 세계다.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고, 판타지적 질감의 풍광 속을 신나게 누비며, 저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세계.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만 명의 사람이 단순히 게임 배경음으로 흘러나왔던 연주곡 하나를 듣기 위해 방문할 만큼 여전히 애틋함을 주는 세계다.

게임의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일까? 현실의 자연환경이나 건물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실감 나는 그래픽?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화려한 연출효과? 캐릭터의 얼굴과 체형 등을 제 맘대로 꾸밀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기능? 필요한 아이템을 쉽게 장착하거나 빼고, 캐릭터 상태와 지도 등을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

그 모든 것이 게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지만, 그에 앞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서사, 즉 ‘이야기’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끔 만드는 수많은 요소 중 이야기만큼 그 중요성이 큰 것도 없다. 물론 교육용이나 재활 목적으로 제작된 게임, 또는 단순 퍼즐 맞추기나 슈팅 게임 등 애초에 서사가 크게 필요치 않은 게임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성취감과 재미를 줄 순 있어도, 서두에 언급한 ‘눈물이 날 만큼의 감동’을 주긴 어렵다. 그러니 지금은 논외로 하자.

현대 들어와 게임 속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사로, 게임 제작자가 특정 세계관에 기반해 단계별로 진행되도록 마련해놓은 게임 속 이야기다. 게임 줄거리, 또는 시나리오라고도 불리는 바로 그것이다. 공주를 납치한 용을 물리치러 가는 용사의 이야기, 세상을 지배하려는 마왕을 저지하고자 떠나는 영웅들의 이야기 등이 이에 속한다.

최근 들어서는 그런 뻔한 영웅담이나 권선징악적 교훈을 담은 이야기보다는 여러 사회 현상과 철학을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녹여낸 이야기도 자주 시나리오로 사용되곤 한다. 심지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 진행이 전혀 달라지는 게임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하나의 플롯만을 가진 웬만한 영화를 뛰어넘는 높은 작품성을 갖춘 게임들도 보인다.

명작이라 불릴 만한 게임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바로 폴란드의 씨디 프로젝트에서 2015년 출시한 ‘더 위쳐3: 와일드 헌트’와 프랑스의 퀀틱 드림에서 2018년 출시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다.

‘더 위쳐3’는 중세 판타지 시대를 무대로 한 3인칭 시점의 오픈월드 게임이다. 게임 시나리오와 등장 캐릭터들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매력적일 뿐 아니라,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탐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높은 자유도가 주어진다. 게임을 관통하는 큰 줄기로서 메인 시나리오는 주어져 있되, 플레이어는 해당 시나리오를 곧이곧대로 좇을 필요 없이 방대한 서브 시나리오를 수행하거나, 그마저도 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멋진 풍광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또 메인 시나리오조차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여러 갈래의 이야기로 나뉘며, 이전의 이야기가 그다음 이야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결말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3인칭 시점의 어드벤처 게임으로, 인간을 닮은 로봇인 안드로이드가 상용화된 가까운 미래의 미국 디트로이트시를 배경으로 한다. 플레이어는 3명의 주인공을 차례로 조작하며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3명의 주인공이 모두 안드로이드다. 실제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라는 현실적 질문은 제쳐놓더라도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의 관점에서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관계, 안드로이드의 권리, 인간의 위치 등을 생각하게끔 하는 여러 선택지가 주어지면서 철학적 요소도 상당 부분 담아냈다. 또 플레이어가 고른 선택지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성향, 이후의 이야기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며, 주인공마다 개성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종국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며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것을 보노라면 한 편의 대작 드라마가 아쉽지 않다.

두 게임 모두에서 플레이어는 시나리오를 따라가며 스스로 중세 판타지 혹은 미래 세계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특정 인물로서 맡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수록 그러한 느낌은 더욱 강렬해지고, 이는 다시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강화한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어는 주인공에 더 깊이 감정 이입함으로써 점차 자기 자신을 플레이어가 아닌 게임 속 주인공과 동일시하게 된다.

이처럼 게임 제작자가 마련해놓은 시나리오 외에도 게임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의 층위가 존재한다.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와 소통하며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소통에 기반한 이러한 이야기는 온라인 게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으로, 게임 속에서 이뤄지지만 그렇다고 게임이 제시하는 세계관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다소 메타적(초월적)인 면모가 있다.

플레이어들은 시나리오와는 전혀 상관없는 현실의 이야기도 얼마든지 게임 속에서 주고받을 수 있으며, 그런 소통 속에서 서로 간 우정과 신뢰를 쌓고, 분노와 복수심, 도전의식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경험은 그 자체로 매우 강력해서 설사 게임 시나리오가 재미가 없더라도 플레이어들 간의 이야기가 너무나 매력적인 나머지 플레이어가 게임을 지속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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