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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패러다임의 전환 두 번째, 자유무역주의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10.19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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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무역주의

비록 지금은 미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줄었으나, 한때 미국은 전 세계 제조업을 이끌던 으뜸 국가였다. 흔히 노예해방 전쟁으로 불리는 미국 내전도 사실은 북부에서 급성장하기 시작한 제조업자들이 남부 플랜테이션 지주들과 대립한 데서 비롯됐으며,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이끌던 북부가 승리한 이후로는 미국 내 제조업의 성장은 더욱 가파르게 진행됐다.

김대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기초학부 교수의 저서 ‘패권의 대이동’에 따르면, 미국 내전이 끝나고 5년 뒤인 187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4년 전인 1910년까지 세계 제조업에서 미국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3.3%에서 35.3%로 크게 확대됐다. 반면 제1차 산업혁명 발생지로서 한때 세계 제조업 최강국으로서 지위를 누렸던 영국의 제조업 비중은 같은 기간 31.8%에서 14.7%로 쪼그라들었다. 이 무렵 강하게 부상한 미국 제조업을 특징짓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포드주의’다.

포드주의는 1913년 헨리 포드가 그의 공장에 컨베이어벨트 생산라인을 구축함으로써 시작됐다. 포드주의는 당시 강하게 부상하던 미국 제조업을 특징짓는 단어 중 하나였다. [사진=포드 홈페이지 캡처]

포드주의는 1913년 헨리 포드가 그의 공장에 컨베이어벨트 생산라인을 구축함으로써 시작됐다. 컨베이어벨트 도입 이후 각 노동자가 담당해야 할 업무는 조립라인을 중심으로 여러 단계로 쪼개졌는데, 이를 계기로 그전까지 노동자 개개인의 손재주와 기술에 의지했던 제조업은 큰 숙련도가 필요 없는 단순반복 작업 위주의 대량생산체제로 전환됐다. 이처럼 작업의 표준화가 진행됨에 따라 제품 또한 일정 규격과 품질을 갖추며 표준화됐다.

컨베이어벨트는 노동자가 작업장을 옮겨 다니던 시간을 대폭 줄였고, 노동자는 각자 맡은 좁은 범위의 일만 반복적으로 수행하면 됐으므로 공장 전체의 효율성과 생산성은 크게 향상됐다. 일례로 당시 포드자동차의 대표 차종이었던 ‘모델T’의 조립 시간은 6분의 1로 단축됐으며, 생산량은 1910년 1만9000대에서 4년 만에 27만대로 급증했다.

물론 강도 높은 단순반복 작업에 지친 많은 노동자가 불만을 터뜨리며 회사를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포드가 제시한 대안은 ‘일당 5달러’와 ‘8시간 노동’이었다. 일당 5달러는 당시 자동차업계 평균 임금의 2배에 이르는 파격적인 금액이었고, 다만 노동자는 그만한 돈을 받는 대가로 회사가 요구하는 규율에 순종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루 8시간 규율을 지키며 많은 일당을 받던 노동자들은 동시에 포드자동차를 구매할 충분한 소비 여력을 갖출 수 있었는데, 이렇게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결합한 체제 전부를 가리켜 포드주의라고 한다.

포드가 시작한 대량생산체제는 자동차 제조업에만 머물지 않고 이후 철강, 전기, 전자, 화학 등 생산재와 소비재 공업 부문으로까지 확산했다. 그 결과 미국의 생산량은 세계 시장에서 단연 으뜸으로 올라섰는데, 때마침 유럽에서 터진 제1차 세계대전은 당시 전쟁터가 된 유럽과는 달리 바다라는 천혜의 해자를 낀 미국에 대량생산 및 공급에만 집중할 기회를 제공했고, 결국 미국 제조업이 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14년 36%에서 1920년 42%로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뤘다.

정작 문제는 전쟁 이후에 터졌다. 미국이 확보한 대량생산체제와 그렇게 생산된 제품을 구매할 수요처의 부족 사이에서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의 더딘 회복세는 미국의 막대한 생산품을 구매할 시장의 부족으로 이어졌고, 이는 미국이 패전국과 승전국 모두에 배상금과 부채를 탕감하는 일을 거부함으로써 더욱 심화했다. 당시 많은 미국인이 유럽을 낡고 부패한 구세계로 여겼으며, 이들 국가를 위해 자국이 희생을 치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설상가상으로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 경제를 떠받치던 영국 파운드를 기축통화로 삼은 금본위제는 세계대전 참전국이었던 영국 경제가 급격히 위축됨에 따라 더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마땅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세계 각국은 금융위기까지 추가로 겪어야 했다.

이미 세계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전쟁을 거치며 더욱 강력해진 미국이 고립주의(불간섭주의)를 자처한 것은 미국에도 고스란히 타격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바로 1929년 시작돼 10여년간 이어진 ‘대공황’의 시작이었다.

이미 세계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전쟁을 거치며 더욱 강력해진 미국이 고립주의(불간섭주의)를 자처하면서 대공황 시작됐다. 사진은 1930년 10월 9일 대공황 당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시청 앞에 모여 있는 수천 명의 실업자들. [사진=AP/연합뉴스]
이미 세계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전쟁을 거치며 더욱 강력해진 미국이 고립주의(불간섭주의)를 자처하면서 대공황 시작됐다. 사진은 1930년 10월 9일 대공황 당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시청 앞에 모여 있는 수천 명의 실업자들. [사진=AP/연합뉴스]

1929년 10월 21일 월요일, 변동성이 커지면서 심상찮은 분위기가 흐르던 미국 주식시장은 그로부터 며칠 뒤인 24일 폭락을 시작해 다음 주 화요일인 29일까지 폭락을 이어갔다. ‘검은 목요일’이라 불리며 지금까지 회자되는 증시 대폭락이 바로 이것인데, 3년 뒤인 1933년까지 미국 주식시장은 회복하지 못했고, 수많은 은행이 파산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그 후로도 하락을 이어가며 결국 1932년 7월 8일 20세기 최저점인 41.22를 달성했고, 이는 1929년 9월 3일 기록한 최고점(381.17) 대비 89% 하락한 수치였다. 다우지수가 1929년 9월 최고점을 다시 넘어선 것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1954년 11월에서였다.

금융시장에서의 폭락은 실물 경제의 위태로움을 반영한 것인 동시에 실물 경제의 위기를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932년 미국 공업 생산은 1929년 공황 발생 이전과 비교해 44% 감소했으며, 투자 심리가 급격히 냉각되고 기업 활동이 축소됨에 따라 전체 노동자의 30%가 일자리를 잃었다.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부 주도의 수요 창출 정책인 ‘뉴딜’ 정책을 감행했으나 잠깐 효과를 봤을 뿐, 1937~1938년 재차 공황이 일어났다. 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3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미국을 대공황의 늪에서 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처음에는 참전하지 않았던 미국은 1941년 12월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당시와 마찬가지로 바다로 인해 직접적인 전란에서 비껴갈 수 있었고, 연방 정부가 1000억달러 규모의 군사 계약까지 맺으면서 미국 기업들은 가동할 공장과 설비가 부족할 정도로 또 한 번의 활황을 맞았다.

구체적인 수치를 예로 들어보자.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에서는 탱크 8만6000대, 전함과 상선 1만2000척, 소규모 함정 6만5000정, 비행기 30만대, 지프 60만대, 군용트럭 200만대, 각종 포 19만3000문, 소총 1700만정, 탄환 410억발이 생산됐다. 미국 경제는 또다시 부흥을 맞이했고, 실업률은 급격히 감소했다. 생산뿐 아니라 소비도 증가했다. 전쟁 기간인 1940~1944년 동안 미국 실질 소비자 지출은 10%가량 늘었으며, 사업체 50만개가 신설됐고, 슈퍼마켓 1만1000개가 새로이 들어섰다.

연구개발에도 평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됐다. 연방 정부의 연구개발 지출은 1940년 8300만달러에서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5년 13억달러까지 확대됐다. 전시에 개발된 진공관과 텔레비전 생산기술은 전후 곧바로 상업화됐으며, 컴퓨터, 합성고무, 레이더, 헬리콥터, 제트엔진, 로켓, 원유 크래킹 공정 등은 향후 미국 제조업 발전에 강력한 원동력이 됐다. 전쟁 직후 전 세계 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공산품 42%, 강철 57%, 원유 62%, 자동차 부문 80%였다.

또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았다. 전쟁을 거치며 확대된 미국의 넘치는 생산력은 자국 내 수요만으로는 감당키 어려웠으며, 이를 받아줄 해외 시장이 부재한다면 또다시 대공황이 찾아올 게 분명했다. 정치·안보 측면도 고려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승전국인 소련과 냉전(Cold War)이란 진영 대립에 돌입함에 따라, 미국은 소련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걸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유럽과 아시아의 전후 재건을 도울 필요가 있었다.

이에 미국은 불간섭주의로 회귀하는 대신 ‘마셜 플랜(유럽부흥계획)’을 통해 서유럽 국가들에 120억달러에 달하는 긴급 구호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이들 국가의 재건을 돕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심지어 전범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이 서유럽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판단, 이들 국가의 재건을 위해서도 막대한 지원을 쏟아부었다. 동시에 금융과 교역에서 미국 중심의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브레턴우즈 체제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1944년 7월 전 세계 44개국 대표들이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턴우즈에 모여 미국 달러 중심의 금태환제와 고정환율제를 골자로 새롭게 제도화한 국제통화체제를 말한다. 당시 세계 각국은 ‘금 1온스=35달러’로 금과 달러의 교환비율을 고정하고, 미국 달러를 주거래 통화로 하는 데 합의했다.

이러한 국제통화체제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세계은행)도 설립됐다. 또 관세와 수출입 규제 등 무역장벽을 제거하고 국제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도 발족했다. GATT에서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기 전까지 반세기 동안 전 세계 120여개국이 가입해 우루과이라운드 등 많은 다자간 무역협상을 이끌어냈다.

이처럼 전후 미국이 주도해 구축한 자유무역체제는 제조업에 전문화한 국가들 간 수직적인 분업 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생산력과 기술력에서 가장 앞섰던 미국이 최상위를 차지하고, 유럽과 일본이 중간, 저렴한 노동력이나 자원에 기반한 개발도상국이 최하위에 머무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는 앞서 제1차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 주도했던 분업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영국 주도 하의 분업에선 제조업 강국 간의 과도한 식민지 경쟁과 지배, 종속, 착취가 만연했던 탓에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란 비극이 초래됐다. 반면 미국이 구축한 분업체제에선 각국이 위계질서 안에서 나름의 생산력과 기술 수준에 따라 서로 다른 상품과 서비스에 특화하며 협력 관계를 이어갔으며, 이를 통해 각국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진영에 속한 거의 모든 국가가 수혜를 입었다. 초강대국인 미국의 지배 아래 세계에 평화가 유지됐다는 뜻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란 말이 나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정보통신(IT) 서비스, 금융서비스 등에 특화하며 소수 첨단 분야를 제외한 제조업 대부분은 다른 국가에 외주하고 있지만, 앞서 살펴봤듯 미국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제1의 제조업 국가였다. 현재 ‘녹슨 지역’이란 의미로 ‘러스트 벨트’란 오명을 떠안은 미 북동부 및 중서부 지역도 한때 이들 지역이 쇠락하기 전에는 공장설비가 끊임없이 가동되는 호황을 구가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실제로 이들 지역에선 1970년대까지도 자동차, 철강, 기계, 석탄, 방직산업 등 제조업이 활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함일까, 최근 미국이 다시 제조업 부흥을 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이 자국 내 제조업 부흥을 꾀하며 각종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반도체·과학법'에 서명하는 모습. [사진=EPA/연합뉴스]
최근 미국이 자국 내 제조업 부흥을 꾀하며 각종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반도체·과학법'에 서명하는 모습. [사진=EPA/연합뉴스]

매해 10월 첫 번째 금요일은 미국 ‘국가 제조업의 날’이다. 이날은 미국 경제에 제조업이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미래 가능성을 점검하는 날로, 2012년 이후 해마다 기념해왔다. 올해 제조업의 날은 지난 7일이었고, 이날 미국 정부는 ‘국가 첨단제조 전략’을 발표했다.

해당 전략은 미국이 글로벌 리더로서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민관이 협력해 향후 4년간 △미국 내 제조업 활성화 △강력한 공급망 구축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 △고급 인력 양성에 집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 목표는 세부적인 전략에 따라 추진되며, 미국 정부는 최근 통과한 ‘반도체·과학법(The 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이 각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동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교안보연구소의 이효영 경제통상개발연구부 부교수에 따르면, 반도체·과학법은 그동안 외주화가 심했던 미국의 반도체 제조 부문과 반도체 연구개발 활동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의 핵심 미래기술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 2800억달러(402조원)를 투입하며, 이중 반도체 분야에만 527억달러(75조원)를 투입한다. 구체적으로는 반도체 제조시설 건립을 위한 직접보조금과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 지원, 반도체 시설과 장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등을 추진하며,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는 반도체 제조기업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에서 생산시설을 확장하거나 신축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총 7730억달러(1110조원) 규모의 투자 예산 중 4330억달러(621조원)를 정부 직접보조금 및 세액공제 형태로 친환경 에너지산업 육성, 친환경 자동차 산업 지원, 기후변화 대응에 투입한다. 특히 북미(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최종조립되는 전기차에 한해서만 정부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줌으로써 기존 글로벌 공급망을 역내 공급망으로 재편하고, 전기차 분야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또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공급되는 핵심광물이나 소재가 일부라도 사용된 전기차는 각각 2025년, 2024년부터 보조금 및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첨단 분야에서의 역량 제고와 공급망 강화를 위한 미국 정부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1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이는 생명공학과 바이오제조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2030년 이전에 전 세계 제조업 생산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기대되는 생명공학 분야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 이면에는 미국 내 건강, 농업, 에너지 등 다양한 바이오 경제 분야의 성장과 고용을 촉진하는 동시에 원료와 바이오제조 분야에서 해외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자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고, 중국 바이오기술과 시장 성장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자리하고 있다. 결국 첨단 분야에서의 패권을 확보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앞서 통과한 두 법안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백악관은 이틀 뒤인 14일, 행정명령을 추진하기 위한 후속 조치로 20억달러(2조8000억원) 이상의 예산 투입 계획을 발표했다.

이처럼 미국이 첨단 분야에서 제조업을 부흥시키려는 일련의 정책들을 쏟아내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중국의 기술 굴기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때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은 이제 첨단 분야에서까지 미국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전체 제조업을 놓고 보면 1990~2007년 동안 미국 제조업 고용은 21% 줄었고, 15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러던 중 2008년 금융위기로 경기가 더욱 위축되면서 미국이 전 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국 2010년 중국에 추월당했다. 첨단 분야에서는 아직 미국이 앞선 것이 사실이나, 그동안 보여준 중국의 기세가 워낙 등등해 미국으로서도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이에 법인세 인하, 이전 비용 보조, 설비 투자 비용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통해 해외에 생산기지를 두고 아웃소싱하던 미국 기업의 본국 이전을 장려하는 리쇼어링 정책이 10여년 전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추진됐다. 이러한 기조는 이후 트럼프 정부에서 가속됐고, 현재 바이든 정부에 들어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핵심 분야에서 탄탄한 공급망과 높은 경쟁력을 갖춤으로써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서나가는 것이 어느덧 미국의 최우선 과제가 된 셈이다.

자국 내 제조업 부흥을 꾀하며 각종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미국의 움직임은 그동안 자유무역체제를 기반으로 세계 각국과 분업화를 꾀해온 미국이 점차 보호무역주의, 고립주의로 돌아서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과거 제조업 초강국으로서 누린 위상을 다시금 세우려는 미국의 이러한 노력이 계속될 경우 앞으로 세계가 맞이하게 될 시대는 이전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며, 그런 측면에서 세계는 현재 또 하나의 패러다임 전환을 거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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