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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 '친구야, 아직도 MBTI야?'(上)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7.1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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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물밑에서 그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의미와 맥락을 짚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풍속도요, 미래 변화상의 단초일 수 있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동향 분석이기도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세상, 그 흐름을 놓치지 마세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요즘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 세대) 첫 인사는 이렇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첫 만남에 상대를 파악하고 아이스 브레이킹(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일)을 위해 별자리와 혈액형을 물었지만 이젠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가 모든 얘기의 시작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지인 등으로부터 MBTI 관련 이야기를 한 번도 안 듣고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MZ세대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나 유튜브를 통해 MBTI 밈(meme)을 확산시키며 하나의 놀이 문화로 만들었다. MBTI 유형별 공부법·연애법·인간 관계 대처법 등 차이를 다룬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댓글엔 같은 유형별 사람들이 모여 자신과 타인의 성격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이들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까지 만들어 소통할 정도로 MBTI 특성과 밈을 찾아보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MBTI 유형 [사진출처=픽사베이]
MBTI 유형 [사진출처=픽사베이]

■ 여기에도 MBTI가?

심지어 단순 인간 성격뿐만 아니라 모든 과정과 상황에 MBTI를 적용할 정도로 활용 범위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여다보자.

유통업계에선 MBTI를 활용한 마케팅을 잇따라 선보이는 중이다. MBTI 마케팅은 다른 방식보다 진입장벽이 낮아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쉽고, 소비자들이 테스트 결과를 SNS상에 공유함으로써 흥미로운 콘텐츠로 재생산 가능하다. 또 소비자 참여율이 높은 만큼 잠재적 고객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 가능하다는 장점도 존재한다.

지앤푸드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굽네치킨은 지난해 공식 SNS 채널을 통해 ‘굽네 MBTI 테스트’를 소개했다. 개인별 치킨, 피자 취향에 따라 MBTI 유형을 알려주고 메뉴를 추천해주는 콘텐츠다. 더불어 MBTI 검사와 연계해 MZ세대 소비자 대상으로 사내 연애 유형을 알아보는 이색 테스트인 ‘나의 사내 연애 레벨 테스트’를 진행했다. 일상 생활에서 일어날 법한 질문들로 소비자 흥미를 유발하고 질문에 모두 답하면 16가지 유형 중 자신에게 맞는 결과가 나타나며, 유형에 어울리는 굽네 추천 메뉴까지 알아볼 수 있다.

여행업계에선 여행 스타일에 MBTI를 맞추는 등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파라다이스 호텔과 리조트는 지난해 ‘MBTI 패키지’를 운영했다. 호텔 내·외부에서 다양한 액티비티를 체험하는 ‘E형(외향형)’과 호텔 안에서 휴식과 미식을 동시에 누리는 ‘I형(내향형)’ 상품을 나눴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도 마찬가지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ISTJ’ 유형에게 추천하는 1인 패키지인 ‘플랜 포 유’는 계획형이자 완성된 일정을 선호하는 ‘I형’에 맞춘 플랜을 제안한다. 반면 ‘두 잇 유어 웨이’ 패키지는 여행에 있어서도 활동적이고 새로운 경험을 중요시하는 ‘ESTJ’ 유형을 겨냥해 기획한 패키지다.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향에 맞춰 다양한 액티비티와 프로그램을 선택해 호캉스를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투자에 MBTI를 적용하는 흥미로운 서비스도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고객의 주식 투자 패턴을 토대로 투자 유형을 분석해주는 ‘투자 MBTI’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지난 3월 밝혔다. 해당 서비스는 최근 6개월 주식 매매 내역을 분석해 14개 투자 유형으로 분류했다. 투자자는 유형별 특징을 비롯해 같은 유형 투자 고수의 매수·보유 종목 등을 살펴보고 투자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상상인증권은 투자자와 기업 리포트 자체를 MBTI 검사에서 따와 16개 분류로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 기업 MBTI는 성장 동력을 I와 E, 성장 방향성을 S와 N, 시장 관심도를 T와 F, 실적 가시성을 J와 P로 분류한다. 일례로 상상인증권은 교촌치킨을 INTJ인 ‘OS업데이트형’, F&F를 ESTP인 ‘매드사이언티스트형’으로 분석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가 많은 기존 보고서 대신 초보 투자자들도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낸 셈이다.

취업 시장에서도 MBTI는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취업 시장에서도 MBTI는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채용 시장에선 MBTI가 스펙이 된 기이한 현상까지 발생했다.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는 A(28) 씨는 지난해 이직 과정에서 생소한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면접 준비 과정에서 MBTI 관련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최근 매스컴 보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실제로 MBTI 관련 질문을 할 줄 몰랐다”면서 “ISTP 유형인데 면접관이 시간 내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냐고 물었다. J형(판단형)과 P형(인식형) 차이를 두고 던진 질문인 것 같은데, 정말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이는 몇몇 기업에서 MBTI가 채용 과정에 실제 영향을 미치거나 참고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기업은 이렇게 청년을 채용한다! 청년 채용 이슈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업 752곳 중 3.05%인 23곳이 채용 과정에서 MBTI를 활용한다고 답했다. 전체에서 극히 소수라고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라는 증거다.

해외에서도 MBTI 광풍과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뉴욕 타임스 등에 따르면 캐나다 스코샤 은행은 2020년 말부터 신규 채용 지원자 이력서를 보는 대신 ‘플럼’이라는 성격 유형 검사를 위주로 보기 시작했다. 더불어 법무법인이나 은행이 지원자 스펙에 집중하는 대신 성격 유형을 반영하도록 고안된 ‘수티드’라는 신종 테스트도 등장했다.

■ MBTI가 싫어요?!

이처럼 단순히 사람 성격을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곳에 MBTI를 적용하자 일각에선 ‘뇌절(똑같은 말이나 행동을 집착적으로 반복해 상대를 질리게 하는 것)이다’, ‘유난이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해 10월엔 수협중앙회에 대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SH수협은행이 직원 채용 과정에서 자기소개서에 MBTI 결과를 기재하라고 한 사실이 도마에 올랐다. 재미 삼아 보는 성격 유형 검사가 적용 부적절한 곳까지 침투됐다는 사실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MBTI ‘배척자’는 왜 MBTI와 ‘신봉자’에게 강한 비판을 쏟고 있는 것일까.

우선 사람 유형을 16가지로 나누는 것이 모순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물론 4가지로 나뉘는 혈액형, 황도 12궁 혹은 13궁으로 나뉘는 별자리보다 가짓수가 많아 더욱 더 세분화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객관적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사주는 어떤가. 현실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사주 가짓수를 따져보면 연주와 일주는 60갑자가 돌아가며 이용되고, 월주와 시주는 연주와 일주에 따라 12가지로 적용된다. 따라서 사주의 가짓수는 60 X 12 X 60 X 12로 총 51만8400개가 된다. 정확성으로 따지면 사주가 더 정확할텐데 사주가 어떻게 되냐고 묻는 이는 극히 드물다.

아울러 실제 사람 성격은 자를 대고 가르듯이 똑바르게 나누기가 곤란할 정도로 연속적이고 불규칙한 패턴을 보이는데 MBTI 검사에선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한계도 있다.

“나 시험에 떨어졌어.”

MBTI 중 ‘T형(사고형)’과 ‘F형(감정형)’을 나누는 질문 중 가장 대표적인 질문이다. 대부분 T형은 논리적인 경향이 높기 때문에 결과를 중시한다. 따라서 “어떤 시험인데, 왜 떨어졌는데.”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면 F형은 공감 능력이 강하기 때문에 과정을 중시한다고 알려졌다. 대부분 “괜찮아? 힘들겠다. 다음엔 더 잘 될거야.”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T형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공능제(공감 능력 제로)’로 인식하고, F형을 ‘감정적인 찡찡이’ 등으로 부르곤 한다. 하지만 T형과 F형이 항상 저렇게 대답하고 반응을 보일까. 완전 사고형이거나 완전 감정형인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심리학자 및 전문가 의견도 다수다.

괜히 MBTI를 조직 인사에 반영하는 도구로 쓰이기엔 미흡하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다. 사람을 MBTI라는 도구에 끼워 넣는데 막상 나누자니 어디를 경계선으로 둬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고, 경계선을 만들어도 경계선에 붙어있는 사람은 어떻게 또 따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유형이 같은 사람이라도 각자가 갖고 있는 특성의 정도는 모두 다르고, 4가지 알파벳 중 가장 두드러지는 성향의 알파벳이 무엇인지도 모두 다르다. 심지어 MBTI 검사는 자기가 스스로 문항에 체크하고 결과를 볼 수 있는 자기 보고형 검사라 결과가 항상 같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을 간과하고 MBTI를 맹신해 16가지로 유형을 나누다 보면 사람의 감정, 행동 등을 유형에 끼워 맞춰 억지로 해석하는 오류를 낳기도 한다.

연장선상으로 비교를 통해 자신과 조금 더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유형의 사람에게만 다가가는 등 과열이 부담스럽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반대로 낙인효과로 타인을 하나의 MBTI 유형으로 고정한 뒤 지속적으로 편견을 갖는 부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I형이니 사회성이 부족할 것이다’, ‘J형이니 매우 계획적일 것이다’ 등의 편견이 대표적이다. 과연 MBTI 하나로 자신의 성격을 고정하고 더 나아가 타인의 성격을 판단하는 게 옳은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MBTI 검사의 4가지 선호 경향 [사진=한국MBTI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MBTI 검사의 4가지 선호 경향 [사진=한국MBTI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또 MBTI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합리화하려는 모습도 비판의 대상이 되기 충분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성격적인 결함에 대해 방어기제로 사용하는가 하면, 자신이 어떤 유형이라 그렇다며 합리화하는 식으로 핑계 대기 좋다는 것이다. MBTI론 도덕성, 이타성 등 성격적 기질 및 특성을 나타내는 지표는 알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유형이나 특정 유형을 과도하게 이상화하기도 한다.

지난 5월 방송인 이진혁 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MBTI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놔 화제가 됐다. 해당 영상에서 이 씨는 ‘MBTI로 합리화하는 친구’라는 제목의 사연을 소개했다. 모든 MBTI 기준에 맞춰 대답하는 친구에게 서운함을 표하자 ‘T형이라 그렇다’는 답변만 들어 답답하다는 사연에 이 씨는 “이건 MBTI가 문제다”면서 “MBTI를 방패막 삼아 막말하는 건 사라져야 한다. 이건 MBTI의 문제가 아니라 그 친구의 문제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러한 MBTI 맹신 현상 속에서 ‘바넘 효과’를 엿볼 수 있다. 바넘 효과는 사람들이 일반적·보편적으로 지닌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흔히 보는 사주나 타로 또한 바넘 효과를 사용해 사람들 귀를 솔깃하게 만들고 결과를 믿게 만든다고 알려졌다. 바넘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전형적인 설명은 얼핏 들으면 대상을 간파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매하고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말이다. 이로써 타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오해, 주관적 인식, 과도한 일반화 등의 문제를 띨 수 있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MBTI에 대한 비판적인 반응이 나오자 검사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020년 유튜브 채널 ‘스브스 뉴스’와 ‘연합뉴스 TV’ 등에선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끈 무료 간이 MBTI 검사가 가짜라고 전했다. 한국 MBTI 연구소 역시 간이 인터넷 MBTI 검사는 실제 검사와는 다르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재형 한국 MBTI 연구소 연구부장에 따르면 “무료 간이 검사는 MBTI 검사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 공식 MBTI 검사는 온라인 무료 검사와 문항도 다르고, 측정 방식도 다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온라인에서 행해지는 각종 MBTI 검사를 전문가 해석 없이 임의로 받아들이게 되면 오해와 선입견이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꿔 말하면 MBTI 검사는 결국 신뢰할만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괜히 비판자들이 MBTI가 모순적이고 허점투성이라고 입을 모으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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