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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따라잡기] '문화공정' 노골화한 중국의 한복 퍼포먼스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2.02.0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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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 입은 여성이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한명으로 등장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여성은 지난 4일 열린 개회식에서 중국내 56개 소수민족 대표 중 한명으로 등장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전달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들 소수민족 대표는 제각각 민족 고유의 의상을 입고 행사에 참여했다.

TV 화면 등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본 다수 한국인들은 중국이 한복을 중국 문화의 일부인 것처럼 전세계에 인식시키려 했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른바 중국의 ‘문화공정(文化工程: 문화 프로젝트)’이 이젠 국제행사를 통해 공공연히 펼쳐지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이 대중(對中) 여론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베이징올림픽 개회식에 한복이 등장하면서 논란을 낳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베이징올림픽 개회식에 한복이 등장하면서 논란을 낳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우리 정부를 대표해 개회식 현장에 간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반응은 한국민들의 타오르는 분노에 연거푸 기름을 끼얹었다. 황 장관은 현지에서 관련 사건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중국 측에서는 조선족이 소수민족 중 하나라고 한 건데, 양국 관계에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별 무리가 없는 듯 들렸다.

문제는 그 다음에 불거졌다. 황 장관은 이어 “한편으로는 우리 문화가 이렇게 많이 퍼져나가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중국이 올림픽 행사를 통해 우리 복식문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일을 대신 해주었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는 어투였다.

국내 여론은 다음날 황 장관의 발언을 통해 한 번 더 악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황 장관이 한복 논란과 관련해 정부 대표로서 중국 측에 공식 항의할 계획이 없다는 취지를 밝힌 것이 화를 키웠다. 개회식 다음날인 5일 황 장관은 중국에 항의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고 답했다. 사실상 그럴 의향이 없음을 공언한 셈이다. 그는 또 소수민족이란 국가 단위로 성장하지 못한 그룹을 의미한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큰 나라”라고 말했다.

정식 항의가 이뤄지지 않은데 대한 국내 비판이 거세지자 황 장관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 대표 자격으로 방중한 상황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는 이어 중국 측이 “한복은 중국 것”이라 주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식 항의할 수는 없었다는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국가 간 논란이라는 점에서 주무 부처라 해야 할 외교부도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외교부 당국자는 6일 “문화 관련 논쟁의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중국에 고유문화에 대한 존중과 문화적 다양성에 기초한 이해증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앞으로도 건설적으로 소통을 이어갈 것임을 함께 강조했다. 이 같은 원론적 입장 표명은 중국에 공식 항의할 의사가 없음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이번의 한복 논란은 중국이 전세계인들이 생중계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도발적으로 야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민 다수가 분노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치권 인사들도 비판에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는 “문화를 탐하지 말라”고 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중국식 표현인) 한푸가 아니라 한복”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문화공정을 비판하면서 중국을 ‘대국’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엉뚱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국민의힘 측은 이 표현이 여권의 사대주의 인식을 드러내 주었다는 취지의 비판을 가하고 있다.

사실 한복 논란 자체는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전부터 한국 고유의 의상인 한복(韓服)을 ‘한푸(漢服)’라 부르며 자국 의상인 것처럼 호도해왔다.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라 칭하며 자국 고유 음식인 것처럼 선전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중국의 관영매체는 중국의 절임채소 음식인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인증을 받자 “김치 종주국의 치욕”이라며 한국민들을 자극한 바 있다.

‘파오차이’나 ‘한푸’ 등의 명칭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국의 의도를 짐작하게 하고 있다. 김치나 한복이 한국 고유의 것임을 인정한다면 그에 대한 취음(取音)을 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치와 한복에 대한 중국 측의 억지 주장이 이어지자 한국에서는 ‘문화공정’ ‘문화제국주의’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앞서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 주장하는 등의 ‘동북공정’을 펼친 점을 상기시키며 한 비판적 표현이었다.

‘문화공정’ 시비로 인한 한국민들의 대중 여론 악화는 중국의 오만과 우리 정부의 저자세 대중 외교와도 연결돼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오만한 태도는 경북 성주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배치하면서 크게 부각됐다. 공격용이 아닌 방어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배치에 반대하는 등 사실상 내정간섭을 한 것이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 이는 사드 배치의 효용성 논란과는 별개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이 보인 의전상의 무례도 한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이 특사를 하석(下席)에 앉게 한 뒤 대화를 나누었다. 그 모습은 외신 사진을 타고 전세계에 전해졌다. 이 사진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한동안 ‘알현’ 논란이 일었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악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그 실상은 지난달 중앙일보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공동으로 ‘외교과제’ 관련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의뢰한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조사 결과 중국에 대한 국가별 호감도는 일본·북한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20개 대상 국가 중 호감도가 가장 높은 곳은 미국(100점 만점에 65.9점)이었고, 중국은 끝에서 세 번째인 18위(35.8점)를 차지했다. 19, 20위는 각각 북한(33.8점), 일본(33.6점)의 몫이었다.

발행인 최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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