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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국가의 주인, '큰 정부'의 고삐를 죄다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3.1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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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시력, 청력, 근력, 정신력…. 사람이 지닌 힘의 종류는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럼 여러분의 '이야기력'은 어떤가요? 이야기력은 '내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뜻합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쌓아왔고, 어떤 이야기를 꿈꾸며,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여지훈의 이야기力]은 “좋은 이야기가 좋은 세계를 만든다”는 믿음 아래, 차근하고도 꾸준히 좋은 이야기를 쌓고 나누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편집자 주>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은 하나의 패러다임 속에서 살아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래 많은 것이 바뀌었고, 또 많은 것이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았다. 그 기간을 돌아보면 이번 정부를 특징지을 대표 단어 중 하나로 ‘큰 정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큰 정부. 문자 그대로 정부의 역할과 규모, 예산이 커진 정부를 말한다. 민간경제에 최대한 간섭을 지양하는 작은 정부와 달리, 적극적인 간섭과 제재를 가하는 정부다. 그렇다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묘사된 '빅브라더'처럼 대중을 일일이 감시하고 그 사고와 일상마저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권력 집단으로 보는 건 지나친 해석이다. 다만 그 역할과 규모, 예산이 이전 정부보다 월등히 커졌다는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단연 큰 정부였다.

'큰 정부'란 정부의 역할과 규모, 예산이 커진 정부를 말한다. [사진=언스플래시 제공]
'큰 정부'란 정부의 역할과 규모, 예산이 커진 정부를 말한다. [사진=언스플래시 제공]

정부 예산부터 살펴보자. 2017년 400조5000억원이었던 정부 본예산은 2022년 607조7000억원으로 5년 사이 51.7%나 껑충 뛰었다. 역대 어떤 정부보다도 가파른 증가 속도다. 추가경정예산까지 감안하면 액수는 더욱 커진다.

정부 조직의 규모도 커졌으며, 정책과 규제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위 또한 넓어졌다.

정부조직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우리나라 공무원 정원은 총 113만1796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중 행정부 소속 국가 공무원이 73만5909명으로 65%를, 지방 공무원이 37만643명으로 32.7%를 차지했다. 공무원 정원은 지난 정부 대비 9만9465명 증가했으며, 증가율은 9.63%로 1992년 이래 최고치였다. 구성별로 보면 교원(36만1218명)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지방일반(29만8432명), 국가일반(17만7077명), 경찰직(13만7455명), 지방교육(7만1370명), 소방직(6만1000명) 순이었다.

정원이 늘었다면 이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도 증가하는 것이 당연지사. 그럼 공무원 인건비는 얼마나 늘었을까. 중앙정부와 지자체 재정은 별도로 책정·집행되므로 각각 ‘열린재정 재정정보공개시스템’과 ‘지방재정365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의 데이터를 참조했다.

우선 국가 공무원 인건비는 2017년 33조4000억원에서 2022년 41조4000억원으로 8조원 증가했다. 증가율로 따지면 24%로, 연평균 4.4%씩 증가한 셈이다. 정부통계에서 제공하는 공무원 보수(봉급·수당) 증가율이 2018년 2.6%, 2019년 1.8%, 2020년 2.8%, 2021년 0.9%에 불과했음을 감안한다면, 공무원 인건비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임금 인상보다는 공무원 수 증가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지방 공무원 인건비까지 따지면 액수는 훨씬 늘어난다. 전국 243개 지자체 지방 공무원 인건비는 2017년 22조1498억원에서 2020년 26조566억원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정부의 출연·출자·재정지원으로 설립 및 운영되는 공공기관까지 고려해보자. 공공기관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한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을 포괄하며, 2021년 공공기관 수는 총 350개로, 332개였던 2017년에 비해 18개 증가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공공기관 정규직 임직원 현원은 2017년 32만4312명에서 2021년 41만6191명으로 4년간 9만1879명 증가했다. 공공기관 직원 평균보수는 2017년 6750만원에서 2020년 6932만원으로 182만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1 대한민국 공공기관' 자료에 근거, 사실상 정규직 신분이라 할 수 있는 무기계약직 현원까지 살펴보면 2017년 2만7351명에서 2020년 5만8908명으로 2배 넘게 뛰었다.

이처럼 문 정부 들어와 공무원·공공기관 현원과 인건비 지출 모두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이런 시계열 데이터에 근거한 종적 비교만으로는 자칫 편향된 해석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이에 보다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다른 국가와의 횡적 비교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만 해외 데이터 수집에 한계가 있어, 이번에는 국가직·지방직 공무원에 한정하지 않고 공공부문 일자리 전부를 포괄했다. 공공부문이란 중앙정부, 지방정부, 사회보장기금, 금융공기업, 비금융공기업을 아우르는 말로 공공 비영리단체도 이에 포함된다. 또 ‘일자리’란 취업자와는 다른 개념으로, 1명의 취업자가 복수의 일자리를 가질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2020년 공공부문 일자리 현황 [사진=통계청 제공]
2020년 공공부문 일자리 현황 [사진=통계청 제공]

올해 1월 통계청과 기획재정부가 각각 발표한 '2020년 공공부문 일자리통계'와 '2020년 공공부문 일자리 행정통계 주요내용 및 평가'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공공부문 일자리는 276만6000개로, 총 취업자의 10.2%를 차지했다. 이는 9%인 2017년도에 비해 소폭 증가한 수치지만, OECD 평균(2013년 기준)인 21.3%에 비해서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공공부문 중 공기업을 제외한 일반정부 일자리 비중은 2020년 8.8%로, 이 역시 OECD 평균(2019년 기준)인 17.9%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대중에 만연한 국내 공공일자리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통념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결과 값이다. 비교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 공무원 수는 오히려 지나치게 적어 증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OECD 통계 시점과 국내 통계 시점 사이의 기간 편차는 부득이했다. 통계청에 문의한 결과, 해당 OECD 자료가 그나마 최신의 것이란 답변만 받았다.

보다 자세한 실상 파악을 위해 지방 9급 공무원으로 2년간 재직한 L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L씨는 업다운뉴스와의 통화에서 “업무가 지나치게 많아 일손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정말 많았다. 2년간 정시 퇴근한 기억이 거의 없다”면서 “지역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다른 부처에서도 정원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꾸준히 나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L씨는 “인수인계도 하루 만에 끝내야 했다. 업무를 제대로 배우질 못하다 보니 못 다한 일을 마치기 위해선 야근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면서, “오랜 시간 공부해 들어온 뒤에도 이렇게나 할 일이 많은데, ‘공무원은 빈둥대며 노는 직업’이란 말을 들으면 정말로 억울하다”고 설움을 토로했다.

메가공무원 합격전략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21년 9급 공무원 합격자 중 수험기간이 1년 이상 2년 미만인 이들의 비율은 34.2%며, 수험기간이 2년 이상인 이들도 32%에 달했다. 합격자 중 72%는 하루 학습량이 8시간 이상이었는데, 5급 또는 7급 공무원을 목표로 준비하는 중에 9급으로 전환하는 수험생이 적지 않은 만큼, 최종합격까지의 실제 소요 시간은 더욱 늘어날 것이란 판단이다. 수험기간 1년 6개월, 하루 학습량을 8시간이라고 가정할 때, 총 학습시간만 4300시간이 넘는다.

2021년 9급 공무원 합격자 총 수험기간 [사진=메가공무원 합격전략연구소 제공]
2021년 9급 공무원 합격자 총 수험기간 [사진=메가공무원 합격전략연구소 제공]

이전 정부에 비해 훨씬 많은 예산안을 계획하고 집행했다는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큰 정부’로 점점 비대해지는 정부를 목도해왔다. 수많은 전문가의 반대에도 시종일관 규제만 하다가 정권 말미에야 재개한다는 원전사업, 세무사조차 두 손 들어버릴 정도로 수시로 바뀐 27번의 부동산 대책, 환경 조성보다는 퍼주기식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 가속화된 인구절벽, 성과 없이 끝난 북한과의 평화 추진 정책 등 여러 영역에서 소통 부재의 정책으로 일방적 영향력만을 행사해온 정부는, 팬데믹이라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아 방역이란 명목으로 그 몸집을 더욱 부풀렸다. 그러나 3월 18일 현재 한국은 코로나19 하루 신규확진자 수 전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정부가 몸집을 키울수록 그 힘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소위 ‘눈먼 돈’이 샐 위험 역시 커진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꾸준히 높아져 왔다. 특히 압도적인 머릿수로 여당이 국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행정부와 입법부 간 제대로 된 견제가 이뤄질 리 없다는 우려는 그런 비판에 타당성을 부여했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3월 9일 윤석열 당선인의 승리로 끝난 제20대 대통령선거는 국민의 마음이 표현된 하나의 사건이란 생각이다. 특정 후보의 능력과 자질을 따지기에 앞서, 장차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지도 모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드러난 것은 아니었을까.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는 정부라는 말에 채찍을 휘두르는 것도, 고삐를 죄는 것도 결국 국민임을 새삼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나무가 숲이 아니듯, 숲을 향한 타당한 비판이 자칫 일선에서 분투하는 개개의 나무에 향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은 필요하다. 또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근무 시간을 늘리는 공무원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공무원과 공무직 근로자가 오랜 경쟁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그 자리에 도달했다. 이들은 숱한 민원을 담당하고 문서를 작성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경우가 허다하다. 자칫 성급하게 든 비난의 손가락이 이들에게 어긋나게 향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비난은 비난을 부르지만, 존중은 존중을 부르는 법이다.

경제산업팀장

 

■ 글쓴이는 - ‘큰 정부’라는 용어가 주는 뉘앙스가 아직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30대 직장인. 큰 정부는 많은 비효율과 소통의 부재, 유연하지 못한 정책 시행을 초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국가 차원의 엄격한 가부장제 속에서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수를 겸허히 인정하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수용할 필요가 있음에도, 자기 체면치레를 위해 고집을 부리는 꽉 막힌 가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 취재 후기 - 본래 비판을 목적으로 시작한 기사였다. 그러나 사실과 데이터에 근거하다 보니 스스로 편향된 통념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종적 비교만으로는 정부가 커지고 있는 게 맞다. 그러나 다른 국가와의 횡적 비교로 볼 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사실에 근거해 유연하게 자기 의견을 바꿀 수 있는지 여부가 기자와 정치 논객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본다. 기사 말미의 결론을 다른 누가 합당하게 비판한다면 기꺼이 수용할 생각이다. 유연하지 못한 태도는 대립과 마찰을 심화시킨다. 그러나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은 지나치게 많은 갈등을 겪지 않았는가. 지속되는 갈등에 사회 구성원 각자가 더 이상의 피로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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