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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이야기하는 인간,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기로에 서다(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2.16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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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는 법. 이야기의 난립은 만만치 않은 부작용도 초래했다.

■ 넘치는 이야기의 부작용 1 : 정보 피로증후군, SNS 피로증후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보 피로증후군’이다. 그동안 이토록 막대한 양의 이야기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인간은 개인의 처리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정보량에 짓눌려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피로에 시달리게 됐다.

비슷한 예로 ‘SNS 피로증후군’이 있다. 일찍이 영국의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는 현대에 들어와 과도한 SNS 사용으로 정보 공유나 인맥 관리 등에서 심각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이 급증하는 현상을 지적했다. 실제로 이런 증상을 겪는 이들 중 일부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으며, 끝내 SNS를 탈퇴하는 등 ‘이야기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특히, 새롭지만 중요하지는 않은 이야기가 도착했음을 시도 때도 없이 알리는 SNS로부터 염증을 느낀 이들이 그러했다.

■ 넘치는 이야기의 부작용 2 : 인포데믹(Infodemic), 거짓 이야기의 난립

누구나 이야기를 제작하고 쉽게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진위를 판단하기 어려운 많은 이야기가 인터넷의 바다를 부유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때의 거짓 이야기란 소설과 같은 비사실적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진실이 아님에도 진실처럼 포장된 날조된 이야기를 뜻한다. 오정보나 악성루머 따위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인포데믹(Infodemic)’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정보를 뜻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전염병을 뜻하는 에피데믹(Epidemic)의 합성어인 것이다.

'인포데믹(Infodemic)'은 오정보나 악성루머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는 현상을 말한다 [사진=Unsplash 제공]
'인포데믹(Infodemic)'은 오정보나 악성루머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는 현상을 말한다 [사진=Unsplash 제공]

고대에는 이야기에 ‘권위’가 있었다. 어떤 이야기에는 함부로 반박할 수 없고 감히 반박해서도 안 된다는 권위가 부여됐다. 특히 종교적 교리가 그랬고, 공동체나 가정을 이끄는 원로와 가장의 이야기가 그랬다. 한 인간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해온 경험과, 세대와 세대를 이어 계승된 교리를 과연 누가 함부로 반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웹(Web)의 인터페이스는 누구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사용자 친화적으로 변했고, 스마트폰 등 휴대용 기기의 발전과 보급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가속화됐다. 수많은 신조어와 개념이 형성되고 교류됐으며, 이는 젊은 세대 간에도 고작 몇 년 차이로 ‘꼰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소통의 벽을 만들었다. 그만큼 서로 축적해온 이야기가 몇 년 사이에 눈에 띄게 변했다는 의미다.

어디 그뿐이랴. 이제는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인터넷상에서 누구나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전문가의 이야기조차 합리적으로 반박되고 비판받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일방적인 수용을 강요하던 수직적 권위가 무너지자, 이야기의 난립, 혼란의 시대가 도래했다. 임의적인 통계 데이터와 시각화된 이미지를 덧씌워 가공한 이야기는 오랜 시간 한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온 전문가의 이야기보다 종종 더 신빙성 있게 들릴 정도였다.

물론 고대에도 거짓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공동 기획해 발간한 "저널리즘, 가짜뉴스 & 허위정보"(원제 : Journalism, “Fake news” & Disinformation)에서 저자들은 고대 로마 시대의 일례를 든다. 이에 따르면 로마의 옥타비아누스는 오늘날의 SNS인 트윗과 같이, 짧고 신랄한 슬로건을 동전에 새겨 정적 안토니우스에 대한 비방 캠페인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초대 황제에 등극했으며, 이러한 거짓 이야기 덕분에 공화정 시스템을 전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거짓 이야기가 미치는 범위와 파급력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 SNS의 발달로 이야기 조작은 훨씬 용이해졌고, 국가나 정치집단, 다국적 기업에서는 이를 전략적이고 조직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더 안 좋은 것은 오락, 광고, 날조 등과 사실 간의 경계가 갈수록 불분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일단 거짓 이야기가 발원해 SNS 등을 통해 퍼지고 나면, 향후 그것이 허위임이 밝혀지더라도 상황이 완전히 되돌려지지는 않는다. 선정적인 정보일수록 대중에 각인되고 공유되기 훨씬 쉽기 때문이다.

■ 무질서 속에 질서를 세우려는 노력

범람하는 이야기로 무질서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서 모두가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 남부의 명문대학 중 하나인 듀크대학의 언론인연구실에 따르면, 2017년 12월 기준 전 세계 51개국에서 137개 '팩트체킹'(Fact-checking)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팩트체킹은 보도되는 뉴스가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지 평가하고, 뉴스에 인용된 정보나 숫자에 대해 사실 검증의 중요성과 방법을 교육하는 프로젝트였다.

국내에서도 2022년 현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의 'SNU팩트체크', 현직 기자와 전문가, 시민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팩트체크넷' 등 ‘팩트체킹’ 노력이 한창이다. 이들은 검증 주체의 독립성을 지키는 동시에 양질의 비영리적 공공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 떠도는 모든 이야기의 진위를 가릴 수는 없더라도, 공적이며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사실에 기반한 질 높은 콘텐츠를 대중이 접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것이 이들 여러 주체가 뜻을 모은 이유다. 객관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검증을 위해 6등급('사실이 아님', '대체로 사실 아님', '절반의 사실', '대체로 사실', '사실', '판단 유보(또는 판단 불가)')으로 등급을 세분화시킨 것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나아가 플랫폼을 통해 생산·확대되고 있는 허위 정보나 오정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서한을 유튜브 CEO에게 보내거나, 인터넷 이용자 스스로 허위 정보를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는 등 이들은 기사검증 작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어떤 이야기를 믿고 수용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을 현대인들에게 적어도 거짓 이야기란 암초를 피할 수 있는 첫 번째 부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좋은 이야기가 좋은 세계를 만든다.”

앞으로 우리는 원론적으로 보이는 이 문구가 갈수록 소중하게 여겨지는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누구나 화자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좋은 이야기꾼을 선별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이야기꾼 스스로 좋은 이야기꾼이 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 어려운 길을 기필코 가겠다는 의지와 사명감을 품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좋은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은 늘 있기 마련이며, 그런 모든 이야기꾼에게 마지막으로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경제산업 팀장

 

■ 글쓴이는? - 세상을 배우고, 세상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은 30대 중반의 남성. 일찍이 이야기의 힘을 깨달았지만,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이야기의 바다에서 유의미한 이야기를 골라내는 어려움도 동시에 느꼈다. 좋은 이야기꾼이 되어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면 더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낄 것이다.

■ 후기 - 이야기는 분명 중요하지만, 오늘날 너무 많은 이야기가 사람을 피로하게 하고, 거기에 거짓 이야기까지 더해져 세상이 참 혼란스러워졌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힘을 깨달은 많은 이들이 진실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에 든든한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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