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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열의 리셋] 파이어족을 꿈꾸는 민지(MZ)에게 던지는 질문 두 가지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2.05.02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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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먼저 과거 슬픈 이야기 한 토막.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열정을 따르면 성공할 것이다.’

1998년 IMF 태풍이 휘몰아친 대한민국에서는 ‘조직의 시간’이 엄습했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고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이 익숙한 광경이 됐다. 조직의 냉혹한 논리에 끙끙 앓던 구성원들은 이내 탈출을 꿈꿨다. 당시 그들에게 이 말은 희망과 도전의 메시지였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익숙한 것과의 결별’ 등등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끌었고 직장 울타리를 뛰어넘고자하는 이들에게 정신무장과 함께 단단한 논리를 제공했다.

많은 이가 글 쓰고 강의하는 것을 비롯해 여행 작가 또는 사업가의 삶을 사는 등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보겠다면서 자의반 타의반 뛰쳐나왔다.

지난해 9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던 41세 김다현 씨. [사진 =tvN 제공]
지난해 9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던 41세 김다현 씨. [사진 =tvN 제공]

그 뒤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과문한 탓인지 성공의 찬가를 부른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다수는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하고 호구지책을 위해 생활전선으로 U턴했다.

왜 그랬을까. 그들 속내를 들어보면 다소 수긍이 간다.

20여년 동안 세상은 빠르게 디지털화 됐고 모든 조건과 환경이 뒤바뀌었다. 여행 작가를 꿈꾸던 자는 열심히 세상을 두드렸으나 디지털 전환의 도도한 흐름과 변화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여행지 사진 촬영은 우리네 일상이 됐고 블로그 등 SNS에 국내외 여행 글과 사진을 올리는 것은 대중의 취미가 된 지 오래다. 게다가 빠르게 변모하는 여행지 풍경은 오랫동안 쌓아뒀던 사진 데이터베이스(DB)마저 쓸모없게 만들었고 인터넷 등에서는 고급 카메라의 고화질 사진보다 스마트폰 이미지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일반인 또한 여행 작가 대열에 대거 합류하며 레드오션화 됐고 차별화는 모호해져 힘을 점점 잃어 갔다.

전문적인 글을 써보겠다는 자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여서 독보적인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너도나도 나서는 통에 분야별 경쟁이 여간 심하지 않았다. 출판 시장은 위축되고 인기 콘텐츠의 흐름도 시시각각 바뀌고 채널 또한 다각화됐다.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했으나 전업 작가로 계속 올인하기엔 여의치 않았다.

사업하고자 하는 자 또한 크게 나을 게 없었다.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현실 그대로다.

그렇다면 요즘 민지(MZ)가 욕망하는 파이어족은 자신의 뜻대로 될까? 파이어는 경제적 자립과 빠른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를 뜻한다. 그들은 임금노동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면서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자 한다.

그런 민지(MZ) 몇몇에게 조기 은퇴하면 뭐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글을 쓰고, 맘껏 여행 다니고 투자하는 등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의 열정이 향하는 곳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외국 사정도 비슷한 모양이다. 조지타운 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칼 뉴포트는 2002년 캐나다 심리학자 로버트 밸러 랜드(Robert J Villerand) 연구진이 캐나다 대학생 539명을 집중 조사한 결과를 소개하면서 열정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당시 조사 결과는 학생들 중 84%가 열정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열정의 상위 다섯 가지는 댄스, 하키(캐나다 인기스포츠), 스키, 독서, 그리고 수영 순으로 스포츠나 예술 등 취미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는 저서 ‘열정의 배신’에서 이런 열정을 따랐다간 실패를 볼 수 있다고 비판한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이들 또한 진지하게 고민해보면 좋지 않을까.

 

■02. 이번에는 요즘 씁쓸한 이야기 한 토막.

“딱히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어서.”

동네 헬스클럽에 가면 매일 아침 출근 도장을 찍고 오전 내내 운동하다 점심 무렵 퇴근하는 60대 후반 선배가 있다. “왜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느냐?”고 묻자 그 대답이 처량하다.

“돈의 많고 적음과 일의 있고 없음은 다른 차원이다.”

그가 무슨 일이든 하려고 이리저리 도모하는 것을 보고 “벌어놓은 것도 많은데 굳이 왜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묻자 우문현답으로 돌아왔다.

아마 은퇴 뒤 긴 세월을 아무 일 없이 산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닌 듯하다. 사실 은퇴 세대들에게 일자리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년세대들은 일, 그것도 전문적인 일을 하는 동년배를 보면 부러움과 질시의 시선을 보내곤 한다.

인공지능(AI) 시대가 현실로 다가올수록 단순 반복 업무는 사라질 게 자명하므로 일을 갖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실로 일이 권력인 시대다. 미래 변화 속도는 현재 속도를 더 능가할 것이고 한 눈 팔았다간 머잖아 민지(MZ)에겐 ‘발등의 불’로 다가올 수 있다.

여기서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시각을 덧붙일까 한다.

그는 인간은 결국 동물이고 우리 안에는 동물의 습성이 살아있으며 일상에서 동물처럼 사냥하는 과정과 결과에 큰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사업가는 ‘한몫 잡으려(make a killing)’ 하고, 과학자는 암 치료법을 ‘추적하며(tracking down)’, 화가는 그림을 캔버스에 ‘잡아 두려고(trap)’ 하고, 정치가는 경제발전을 ‘목표(aim)’로 한다. 우리가 사냥에서 유래한 말을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얘기다. 인간은 사냥의 과정인 계획, 투쟁, 위험감수, 성공 등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그런 자극과 모험, 성공과 성취를 원한다는 설명이다.

‘털 없는 원숭이의 행복론’에서 이렇게 주장했는데 실로 그럴싸하지 않은가.

일 자체의 과정과 결과가 소중하다는 얘기인데 여기서 일은 단순히 돈벌이 수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지(MZ)는 돈만 많으면 마땅한 일 없이도 계속 행복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발행인

 

■ 글쓴이는? - 직장인 5년차에 접어든 아들은 향후 경제적 자립을 이루게 되면 놀면서 직장 다닐 거라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한다. 현재 비트코인 투자도 하고 있다. 널뛰기에 일희일비하기도 한다. 그의 아버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흐름을 읽기 위해 그 정도로 발 담그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아들이 떼돈을 벌어 파이어족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전념해 그 분야 전문가가 돼 거기서 삶의 행복과 의미를 찾길 바란다.

■ 후기 - 우리는 없는 것을, 또는 이룰 수 없는 것을 열망하기 마련이다. IMF 직후 꿈을 찾아 열정을 쫓은 것도 엄혹한 기업 논리에 개인의 꿈과 열정이 사장될 수밖에 없던 시대 상황 때문은 아닌지. 파이어족을 꿈꾸는 민지(MZ)는 뭘 해도 경제적으로 크게 나아질 수 없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경제적 자립에 대한 열망을 더 품게 된 것은 아닌지. 이렇게 내몬 이 사회 기득권과 제도권은 통렬한 반성, 그리고 해법을 내놓아야 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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