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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 대체 몇 살이나 처먹었기에? 대한민국에서 '나이'란?(上)

  • Editor. 정태겸 객원기자
  • 입력 2022.06.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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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물밑에서 그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의미와 맥락을 짚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풍속도요, 미래 변화상의 단초일 수 있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동향 분석이기도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세상, 그 흐름을 놓치지 마세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정태겸 객원 기자] ■ 국회에도 부는 연령차별에 따른 ‘세대 갈등’

“나이 어떻고 선배 어떻고 이런 이야기 할 거면 당 대표도 나이순으로 뽑자.”

지난 8일 이준석 국민의힘 30대 당 대표가 60대 5선 중진인 정진석 의원을 향해 한 말이다. 이준석 당 대표와 5선 중진인 정진석 의원의 공방 수위가 아슬아슬했다. 두 사람은 설전을 주고받는 동안 “추태”, “싸가지”, “개소리” 등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최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방선거 전 있었던 20대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586 의원’들 사이의 충돌이다. 1963년생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5일 6·1 지방선거 선거대책위 비공개 회의장에서 책상을 내리치며 박지현 위원장에게 큰소리를 쳤고, 86세대 출신 당 지도부 의원들도 윤 위원장을 거들었다. 결국 박지현 위원장은 사과했고, 쇄신을 외치는 청년 정치인이 민주당에서 발붙일 자리는 좁아졌다.

[사진 = 연합뉴스]
중진 의원들 중엔 젊은 의원들의 튀는 행동을 불편해하는 이가 적지 않아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중진 의원들 중엔 이런 이준석 대표나 박지현 위원장의 튀는 행동을 불편해하는 이가 적지 않아 보인다. 중진 정치인들의 발언이나 태도에선 젊은 정치인들을 ‘나이 어린 것’, ‘철부지’로 여기는 분위기가 여전히 만연하다. 반면 신진 정치세력인 청년 정치인들에게선 ‘586’을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꼰대’로 보는 시각이 엿보인다.

30대 초반인 김용태 국민의힘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 9일 이준석 대표와 정진석 의원 간 당내 갈등에 관해 ‘나이’로 상대를 깔아뭉개려는 정치판의 오래된 관행이 문제임을 지적했다.

김용태 최고위원은 이날 밤 CBS 라디오 ‘한판 승부’에 출연해 “보통 정치판에서 생각이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 ‘몇 살이야’, ‘선배가 말하는데 배지 달고 와’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관행은) 더불어민주당에도 있고 국민의힘에도 있고 정치권 내부에 다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연령차별이라는 것이다.

연령차별. 문자 그대로 연령을 이유로 타인을 차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령차별에는 노인 혐오나 청소년 혐오같은 노골적 혐오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이로 특정 연령대를 규정짓고 어떤 행위를 강요하는 학술적 의미까지 모두 포괄한다.

정치라고 연령차별의 사각지대는 아니다. 현 정치판에서도 연령차별로 인한 세대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는 장면을 공공연히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최근 화두가 된 ‘노키즈존’은 우리사회 연령차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연령차별. 문자 그대로 연령을 이유로 타인을 차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연합뉴스]
연령차별. 문자 그대로 연령을 이유로 타인을 차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연합뉴스]

■ 우리는 왜 나이에 집착하게 됐나?

“야, 너 몇 살이야?!”

잘 모르는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는 다툼이 발생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듣게 되는 말이다. 나이로 서열을 매겨 상대방을 찍어 누르려는 태도가 통용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나이=서열’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익숙해진 만큼 소위 ‘계급’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결국 ‘너 몇 살이야?’라고 따져 묻는 건 ‘내가 너보다 위계가 높다’는 인식을 보여줘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나이로 서열을 따지는 이같은 문화는 언제 어떻게 생겨난 걸까?

한국의 나이문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달된 일본의 기수 문화와 군대식 문화가 주민등록번호 체계와 맞물려 나타난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문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형태로, 전 세계적으로 나이가 1~2세 차이 난다고 해서 한국처럼 언니, 오빠, 형, 누나로 달리 부르고, 존대와 반말로 언어 형태까지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본래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약간의 나이 차이는 큰 상관없이 편하게 벗으로 사귀었다. 어른공경문화가 강했던 조선시대에도 위아래로 여덟 살까지 벗으로 사귄다는 ‘상팔하팔’로 정리됐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유명한 이덕형과 이항복이나, 평생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정도전과 정몽주도 다섯 살 터울이었다.

언뜻 보면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좋은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모든 부분에서 더 뛰어나야 하고, 돈도 많아야 하며, 못할 경우 열등해진다는 괴상한 법칙마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는 게 당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살다보면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나이를 OO이나 먹었으면서 이것도 못하냐”는 말은 이 같은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한다. 나이가 들어도 재산과 사회적 지위, 신분, 또 능력이 부족하다면 나잇값을 못 하는 사람으로 귀결돼버리는 것이다.

차별은 위아래를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최근 임금피크제에 판결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생각은 이 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차별은 위아래를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차별은 위아래를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대법원, “임금피크제는 ‘연령차별’”

대법원 제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정년을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상 연령차별로 효력이 없다는 원심 판결을 지난달 26일 확정했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시점에 임금을 점진적으로 삭감하는 대신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국내에는 2000년도 초반 즈음 금융기관에서 알음알음 도입했다고 하고, 공식적으로는 신용보증기금이 2003년에 도입한 것을 시초로 본다.

대법원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며 “그 조치가 무효인지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제도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판결에 대한 많은 이들이 동의하지 않는 듯하다.

40대 직장인 이도규씨는 “대부분 정년퇴임을 앞둔 영감님들이 우리 부서에 들어오면 업무가 경감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난다”면서 “요양 보호사가 된 느낌이다. 그냥 자르고 신입 뽑는 게 우리 입장에서는 훨씬 편하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30·40직장인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나온 이 같은 말에, 대부분 멤버들이 공감했다. 나이든 이를 오랜 기간 사회생활을 해 온 ‘선배’로서 존중하지만 조직이 원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쓸모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심지어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선배들에겐 현대판 고려장이 시급하다는 분위기였다.

실로 대한민국 직장의 씁쓸한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사진 = 트위터 캡처]
나이든 이를 오랜 기간 사회생활을 해 온 ‘선배’로서 존중하지만 조직이 원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쓸모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진=트위터 캡처]

■ 나이든 이들에게 쏟아지는 차별, “그 나이에?”

“애들도 아니고, 그 나이에 옷을 왜 그렇게 입고 다녀?”

매일같이 청바지에 후드티만 입고 다니는 기자가 친구에게 실제 했던 말이다.

말할 당시에는 무심코 던진 이야기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말의 기저에는 ‘연령에 맞는 옷차림’이란 고루한 생각이 깔려 있었다.

이 차별적 시선은 친구에게만 향하진 않는다. 마음속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나이에 맞지 않는 것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이 같은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은 대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을 향했다. 어린 사람이 하면 ‘자신만의 스타일’이 되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하면 ‘나잇값 못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또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소모임’이란 어플을 보면 “00세 이상 가입 불가”라는 멘트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정 나이 이상의 사람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모임의 중심이 되는 연령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20·30 중심 모임 중 상당수는 40·50은 받지 않겠다고 공지해 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등산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30대 이석민씨는 “나이가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오면 불편함을 느끼는 회원이 많아 모임 가입에 연령제한을 두고 있다”며 “젊은 사람들의 감성이나 가치관과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20·30 중심의 모임을 운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연령 제한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노(No) 중년 존’도 등장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40대 이상 커플은 예약 불가’를 내건 한 캠핑장이 등장한 것이다. 한 시민은 SNS에 “나이 때문에 빈정 상했다”며 “캠핑장을 알아보는데 한 곳에서 40대 이상 커플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 분들이 오는 분위기라 안 맞다는 이유”라는 글을 올렸다.

해당 캠핑장은 공지사항을 통해 “캠핑장은 다중이용시설이고 방음이 취약하다”며 “고성방가, 과음으로 인한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커플 혹은 여성 전용 캠핑장으로 전체 콘셉트를 잡았다”고 안내했다. 이어 “카라반은 20·30대 고객, 특히 젊은 여성 취향에 맞췄기 때문에 40대 이상 고객과 전혀 콘셉트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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