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여지훈의 이야기力] 1400만 주주가 피워올린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라 (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8.01 0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융당국이 이번에 대책으로 내놓은 개선안 중 하나로 공매도 시 투자자 간 적용되는 담보비율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한다는 내용도 있다.

지금껏 개인투자자가 공매도하기 위해서는 통상 차입주식의 140% 이상을 담보로 제공해야 했다. 반면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는 105%~120%의 담보를 제공하기만 하면 됐다. 이는 각 주체 간 신용도와 위험 감수능력이 달라 발생한 차이로, 은행 대출 시 개인과 대기업에 적용되는 우대 금리가 서로 다른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제는 개인투자자의 담보비율을 기존 140%에서 120%로 낮추면서 그 차이를 완화하겠다는 것이 이번 개선안의 내용이다.

 지난달 29일 기준 코스피 공매도 거래 상위 50개 종목 [사진=한국거래소 통계 캡처]
 지난달 29일 기준 코스피 공매도 거래 상위 50개 종목 [사진=한국거래소 통계 캡처]

지금껏 많은 개인투자자가 국내 자본시장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해온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공매도 시 요구되는 담보비율의 차이였다. 실제로 이번에 금융당국이 제시한 담보비율 완화 방침은 개인투자자에게는 분명 긍정적인 개선안이다. 개인투자자로서는 주가 하락 시 증권사가 요구하는 높은 담보비율을 채우지 못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해당 주식을 임의처분하는 반대매매 위험에서 한결 숨통을 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주가 하락 시 개인투자자의 담보 부담이 덜해졌다는 소극적 측면에서의 개선안, 그 이상의 의미를 갖추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개선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기존에는 개인투자자가 1000만원 규모의 공매도를 하기 위해서는 1400만원의 주식을 담보로 제공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1200만원의 주식만 담보로 제공해도 되므로 이전보다 공격적으로 공매도할 수 있게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수십억, 수백억원대의 자금을 굴리는 투자자가 아니고서야 고작 수백만원 차이로 개인투자자가 자신의 투자 성향을 바꾼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한국거래소 데이터에 따르면, 공매도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60~80%로서 단연 으뜸이며, 개인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기관 투자자의 몫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돈이 많아야 억 단위 수준에 불과할 대다수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비중이 증가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즉 이번 담보비율 개선안이 개인투자자들이 주장해온 것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이날 금융당국은 앞서 언급한 개선안들을 발표하며, 불법 공매도 적발과 처벌 강화 조치는 가급적 즉시 시행하고, 금융투자업 규정이나 거래소 시행세칙 개정 등이 필요한 과제는 연내 시행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불법 공매도와 공매도 관련 시세조종 등 자본시장 교란 행위를 해소하고, 낮아질 대로 낮아진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국민 신뢰를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그동안 암암리에 자행돼온 불법 공매도와 지나치게 비대칭적인 공매도 제도에 관한 논란, 또 최근 발생한 국내 증권사들의 공매도 오기 사건으로 추락할 대로 추락한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이번 개선안으로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건 과한 망상이 아닐까. 사실상 원론적이고 듣기 좋은 말의 나열이었을 뿐, 1400만 투자자가 그토록 고대했던 파격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개선안은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1400만 개인투자자, 아니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이들까지 합한다면 결국 이들 개인투자자의 목소리는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1400만 개인투자자, 아니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이들까지 합한다면 결국 이들 개인투자자의 목소리는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1400만 개인투자자, 아니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이들까지 합한다면 결국 이들 개인투자자의 목소리는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정녕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바란다면, 단지 번지르르한 말만 앞세우기보다는 그에 걸맞은 행동부터 몸소 실천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다.

그러지 못했기에 실망의 연속이었던 지난 수년간의 세월을 이번 정권 역시 또다시 반복한다면, 선진 자본시장으로 거듭나겠다는 꿈은 또 한 번 먼 미래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 단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방안을 대단한 대책인 양 내놓은 것으로 넘어가기에는 1400만 주주 속에 포함된 수많은 학식 있는 전문가와 오늘날의 정보 개방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희망적인 사실은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자본시장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꾸준히 배움을 쌓아간다는 것, 또 차츰 응집돼 한목소리를 내는 데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수년에 걸쳐 모아온 돈을 투자했음에도 불공정한 제도와 금융당국의 방치로 인해 크게 손실을 보고 있다면 제도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관심과 노력이 사그라지지 않고 계속 지펴질 수만 있다면, 국내 자본시장에서 자행되는 각종 불법과 교란 행위도 차츰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비록 그 과정에서 각종 잡음과 갈등이 불거지는 건 불가피하겠지만, 언젠가는 금융당국과 증권사, 기관 투자자 등 다양한 시장참여 주체가 개인투자자들과 제로섬 게임이 아닌,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선진 자본시장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경제산업팀장

 

글쓴이는?  한때 최대한 중립적 입장에서 공들여 쓴 공매도 관련 기사가 당시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을 누군가에는 자칫 편향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기자 역시 국내 자본시장에 참여한 뒤로 이전 십수 년간 벌어들인 돈을 단 수개월 만에 날린 경험이 있어 그 박탈감과 억울함을 참으로 잘 이해하고 있다.

글의 말미에야 고백건대, 기자는 국내 자본시장이 최대한 공정한 경쟁의 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1인이다. 그러나 이때의 경쟁이란 끊임없이 신사업을 구상하고 무언가를 창출하려는 기업과, 그런 기업의 비전을 믿고 기업이 번창하기를 기대하며 자신의 돈을 기꺼이 내어놓는 투자자와 투자자 간의 경쟁이지, 누가 돈을 더 취하고 덜 취하느냐, 혹은 누가 상대의 몫을 더 빼앗아오느냐 그런 수익률 경쟁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취재 후기 – 늘 그렇지만, 어떤 조직이건 본업에 열심을 다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있다. 취재를 위해 여러 기관에 문의했을 때 성실히 자료를 찾아주는 이가 있던 반면, 고민 끝에 던진 기자의 질문을 가당치 않은 이야기인 양 성급히 일축하는 이도 있었다. 상대가 진지하게 꺼낸 이야기를 본인의 한정된 사고와 경험의 틀에 갇혀 귀담아듣지 않으려 하기에, 본래는 훨씬 나아질 수 있었을 많은 것들이 여전히 정체된 채 남아 있다는 생각이다.

국내 자본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1400만 주주들이 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면 그에 마땅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문제를 점검하고 개선하는 게 우선이지, 금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떠드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이때만 모면하면 되겠지, 이런 생각으로 제도를 개선하지 않은 것이 현 사태를 초래했다는 생각이다. 자성할 부분을 진심으로 자성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에게 매질을 가할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지금은 어느 한 주체만의 노력이 아닌, 여러 주체에 의한 공동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