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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당신도 “위를 보지 마!”라고 외치고 있진 않은가 (上)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8.0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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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시력, 청력, 근력, 정신력…. 사람이 지닌 힘의 종류는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럼 여러분의 '이야기력'은 어떤가요? 이야기력은 '내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뜻합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쌓아왔고, 어떤 이야기를 꿈꾸며,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여지훈의 이야기力]은 “좋은 이야기가 좋은 세계를 만든다”는 믿음 아래, 차근하고도 꾸준히 좋은 이야기를 쌓고 나누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편집자 주>

‘돈 룩 업! (위를 보지 마!)’

지구를 향해 에베레스트 크기의 혜성이 다가온다는 사실에도 불구, 미국 대통령부터 정치인, 세계적인 기업인과 언론인, TV 인기 프로그램 진행자에 이르기까지 눈앞에 혜성이 보이기 직전까지 그 누구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씁쓸한 상황을 희화해 풀어낸 블랙코미디 영화다. 제목인 돈 룩 업은 혜성이 다가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라는 얘기로, 극 중에서는 다가오는 위험을 알리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무산하려는 정부 선전 구호로 등장한다.

혜성이 발견된 직후부터 지구에 충돌하기까지 6개월 동안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언론인과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이를 어떻게 이용할지 골몰할 뿐이었고, 미국 대통령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만큼 세계적인 기업의 대표는 혜성에 있는 광물을 채취해 막대한 부를 거머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느라 다가오는 파멸을 멈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혜성이 지구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과학자들의 노력에도 많은 이들이 이를 무시하거나 '좋아요'를 누르는 것 외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사진=넷플릭스 '돈 룩 업' 예고편 캡처]  
혜성이 지구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과학자들의 노력에도 많은 이들이 이를 무시하거나 '좋아요'를 누르는 것 외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사진=넷플릭스 '돈 룩 업' 예고편 캡처]  

그러나 영화가 궁극적으로 겨냥한 것은 근시안적 탐욕에 물든 이들 몇몇 인물만이 아니다. 영화는 이들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의 이야기에 너무나 쉽게 휩쓸린 나머지 이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도록 요구하지 못한 채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서 ‘좋아요’나 누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반 대중의 무책임함과 나태함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다.

그렇다. 혜성이라는 가시화된 파멸로 극적 긴장을 고조시켰다는 차이만 있을 뿐,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는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한 위기 상황과 그에 대처하는 각국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그리고 대중의 반응과 매우 흡사한 측면이 있다.

좀체 잠잠해지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년째 이어지는 공급망 병목 현상, 기후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까지. 지난 수년간 이러한 대형 악재들이 잇따랐고, 최근에는 물가 급등과 부채 급증까지 겹치면서 전 지구적인 생계난은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앞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6월 “급격한 식품과 에너지 가격 상승, 또 부채 증가로 인해 한 세대 만에 수십억 명이 가장 큰 생계비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이것이 가장 취약한 소비자들을 참담한 상황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가파르게 치솟는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 지구촌 서민들의 생계난을 가중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정치와 사회 질서까지 불안정하게 한다는 징후는 이미 여럿 포착됐다. 최근 식량과 연료 부족으로 물가 폭등을 겪던 끝에 결국 부도 선언을 한 스리랑카가 좋은 예다. 막대한 부채와 지나치게 치솟은 물가로 스리랑카에선 끼니조차 때우지 못하는 이들이 급증했고, 통화 가치 폭락 등 외환 위기까지 겹치자 경제가 완전히 붕괴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세계 경제 변두리에 있는 한 개발도상국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건 지나치게 근시안적 관점이다. 현재 극단적인 기후위기는 선진국에서조차 직접적인 경제적·인명 피해를 초래하고 있으며, 간접적인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그 피해 범위는 훨씬 커진다. 여기에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전쟁은 에너지 대란과 식량 대란, 물가 대란을 가중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6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전달보다 소폭 하락했으나, 여전히 1년 전보다 23.1%나 상승한 154.2포인트를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놀랍게도 이 수치는 2008년 세계를 강타해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전 세계 수십 개국에서 정치적 불안을 촉발했던 식량 위기 당시의 정점보다 10%가량 높은 수준이다.

많은 전문가가 현재 상황이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한 2008년의 애그플레이션과 유사하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2007~2008년, 2010~2011년에 발생한 글로벌 식량 위기는 유가 상승, 폭염 등의 기상이변으로 인한 공급 차질, 중국과 인도에서의 육류 소비 급증, 옥수수로 만든 바이오 연료에 대한 수요 증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나타났는데, 사실상 현재 지구촌이 겪는 식량 위기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분쟁, 기후위기, 코로나19, 치솟는 식량과 연료 비용은 ‘퍼펙트 스톰’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진=세계식량계획 제공]
분쟁, 기후위기, 코로나19, 치솟는 식량과 연료 비용은 ‘퍼펙트 스톰’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진=세계식량계획 제공]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과 FAO는 지난 6월 ‘기아 핫스팟- FAO-WFP의 급성 식량불안 조기 경보’란 보고서를 발표하며 “현재 곡물 부족 사태는 2011년 아랍의 봄과 2007~2008년 식량 위기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며 “우리는 이미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페루, 스리랑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목격했으며,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들 국제기구의 경고대로, 2010~2011년 폭동이 발생한 중동 지역의 사회적·정치적 격변은 상당 부분 높은 식비 때문에 일어났다.

데이비드 비즐리 WFP 사무총장 역시 지난 5월 트위터를 통해 “기아는 무서운 수준으로 치솟고 있고 세계정세는 계속 악화하고 있다”면서 “분쟁, 기후위기, 코로나19, 치솟는 식량과 연료 비용은 ‘퍼펙트 스톰’을 만들어 냈다”고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재앙 위에 재앙을 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퍼펙트 스톰이란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동시에 발생해 그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곡물을 비롯한 식량 가격의 급등은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개발도상국에 심각한 영양실조와 건강 위험을 초래한다. WFP는 지난 6월 초, 세계적인 식량 불안정으로 5개국에서 75만명의 사람들이 IPC5 등급인 ‘기근 또는 재앙’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중 약 40만명이 에티오피아에 있었고, 나머지가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남수단, 예멘 등지에 있었다. 나이지리아 일부 지역 역시 IPC4 등급인 ‘비상’ 수준의 식량 불안에 처해 있었다.

유엔은 ‘통합 식량 안보 단계 분류(IPC)’에 따라 식량 불안정 상태를 ‘정상(Minimal)-경고(Stressed)-위기(Crisis)-비상(Emergency)-기근(Famine) 또는 재앙(Catastrophe)’ 총 5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중 3등급 이상을 급성 식량 불안정(Acute Food Insecurity) 상태로 분류한다.

여기서 급성 식량 불안정이란 유엔이 매년 발간하는 ‘세계 식량 안보 및 영양 상태 보고서’에서 언급되는 ‘만성적 배고픔(Chronic hunger)’과는 다른 개념으로, 만성적 배고픔이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오랜 기간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급성 식량 불안정은 적절한 식량 섭취가 없어 생명이나 생계가 즉각적인 위험에 빠지는 상태를 뜻한다.

또 WFP에 따르면, 당시 기근 등으로 사망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수가 46개국에서 4900만명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고, 81개국에서 총 2억7600만명의 사람들이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직면해 있었으며, 올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간접적 여파로 이 숫자가 3억2300만명까지 급증할 것으로 추정됐다.

현재 전 세계 1인당 일일 평균 칼로리 공급량은 약 3000kcal로, 한 사람의 건강한 삶을 위해 요구되는 기초 대사 수준을 훨씬 웃돈다. [사진=유엔 식량농업기구 제공]
현재 전 세계 1인당 일일 평균 칼로리 공급량은 약 3000kcal로, 한 사람의 건강한 삶을 위해 요구되는 기초 대사 수준을 훨씬 웃돈다. [사진=식량농업기구 제공]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식량 위기에 처한 건 지구상에 충분한 식량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전 세계에는 이들을 먹여 살릴 충분한 식량이 있다. 전 세계를 엄습한 식량 불안 위기에도 불구, 현재 전 세계 1인당 일일 평균 칼로리 공급량은 약 3000kcal로, 한 사람의 건강한 삶을 위해 요구되는 기초 대사 수준을 훨씬 웃돈다. 기초대사량은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양으로, 성인의 경우 성별과 나이, 체격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1200~2000kcal 범위 안에 있다.

따라서 현재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겪고 있는 기아와 영양실조의 핵심은 분배의 부족이지, 식량 생산의 부족이 아니다. 이러한 분배의 부족은 국가 간, 계층 간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또 상당 부분은 현행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식품 손실 및 식품 폐기물(Food Loss & Waste, FLW)로 초래되기도 한다.

지나치게 높은 식품 가격은 가난한 국가 또는 빈곤층 사람들의 식품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며, 부유한 국가에서 식량 생산부터 소비 후 폐기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서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식품의 양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봤을 때 실로 막대한 양으로, 이 역시 효율적인 분배의 실패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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