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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인류가 아닌 당신 자신을 위해, “그래도 위를 바라봐!” (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8.08 08: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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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에 따르면, 정치·사회적으로 취약한 신흥국일수록 신속히 수출제한조치를 도입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러한 국가들일수록 국제 식량 가격 상승이 단순히 국내물가 불안을 넘어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례로 올해 초부터 식용유 가격 안정을 위해 팜유 수출 허가제, 내수 할당제를 도입해오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팜유 수출을 전면 금지한 인도네시아, 지난 4월 글로벌 밀 수급 안정에 기여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식료품 가격의 오름세가 지속되자 곧바로 다음 달 밀 수출 금지조치를 발표한 인도를 들 수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취약한 신흥국일수록 신속히 수출제한조치를 도입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수출제한조치는 식량 수급 불안을 심화해 국제 식량 물가의 추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악순환을 야기한다. [사진=한국은행 보고서 캡처] 
정치·사회적으로 취약한 신흥국일수록 신속히 수출제한조치를 도입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수출제한조치는 식량 수급 불안을 심화해 국제 식량 물가의 추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악순환을 야기한다. [사진=한국은행 보고서 캡처] 

인도네시아는 세계 1위 팜유 생산국이며, 인도는 세계 2위 밀 생산국임에도 두 국가 모두 신속히 수출제한조치를 시행한 것이다. 이외에도 튀르키예, 헝가리, 세르비아, 이집트, 아르헨티나, 카자흐스탄, 말레이시아 등이 밀, 옥수수, 식물성 유지류, 닭고기 중 적어도 한 품목 이상의 수출제한조치를 실시했다.

이에 따라 국제 식량 가격의 변동성은 매우 커졌는데, 이러한 현상은 국제 식량 무역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국제 식량 무역은 크게 다음의 3가지 특징을 갖는다.

우선 기후 및 지역 의존도가 매우 높다. 작물생산에 적합한 기후와 토질을 만족하는 지역이 한정된 탓에 자칫 해당 지역에 가뭄이나 폭염 등 이상기후가 발생하면 금세 국제 식량 가격이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동태평양 적도 근방에서 저수온 현상이 수개월 동안 지속되는 라니냐 현상이 발생하면 주요 곡창지대인 남미지역의 작황이 부진해지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가 관찰된다.

둘째, 식량 무역은 제조업과 달리 전체 생산 대비 무역 거래 비중이 작아 공급 충격에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일례로 쌀, 밀, 옥수수 3대 곡물의 경우 전체 생산량의 15%만이 무역을 통해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곡물 대부분을 자국 내에서 소비한 뒤 남은 생산물을 수출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국내 수급 불안이 발생하게 되면 자국 수급 안정이 최우선인 각국 정부는 수출 제한 또는 금지 조치를 취하게 되고, 이는 수출물량 급감으로 이어져 국제 곡물 가격 상승 압박으로 작용한다.

셋째, 소수 공급자에 의한 과점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 현재 식량 수출 시장은 미국, 브라질, 러시아 등 일부 국가가 대부분 점유하고 있으며, 유통 부문도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분게(Bunge), 카길(Cargill), 드레퓌스(Dreyfus) 등 일명 ABCD로 통칭하는 소수의 곡물 메이저에 집중돼 있다. 이들 기업은 곡물의 생산·저장·운송·가공·판매 등 유통 전 과정을 수직적·수평적으로 통합해 독점적 이윤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들이 차지하는 세계 곡물 시장 인프라 점유율은 8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 주목할 부분은 전 세계 1, 2위 식량 생산국인 중국과 인도의 경우, 자국 내 막대한 수요로 인해 수출량 자체는 적은 편이며,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의 40%에 불과한 좁은 국토에도 불구, 스마트팜 등 기술혁신을 통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농식품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는 물가가 낮게 형성되던 시기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는 조치로서 관세 인하 요구 등의 권한을 행사하는 데는 익숙해도, 현재와 같이 물가가 고공행진하는 시기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응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는 물가가 낮게 형성되던 시기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는 조치로서 관세 인하 요구 등의 권한을 행사하는 데는 익숙해도, 현재와 같이 물가가 고공행진하는 시기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응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현재로서는 점차 강화되고 있는 각국의 식량 보호주의를 즉각 해결할 만한 대책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무역 자유화를 지향하며 전 세계 무역 시스템을 관리·조정하는 세계무역기구(WTO)는 1995년 출범했는데, 이 시기는 지금과는 달리 세계 식량 가격이 대체로 하락하던 시기였다. 심지어 1999년 말에는 실질 세계 식량 가격이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WTO는 물가가 낮게 형성되던 시기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는 조치로서 관세 인하 요구 등의 권한을 행사하는 데는 익숙해도, 현재와 같이 물가가 고공행진하는 시기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응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내리던 시기에 세계 각국은 고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값싼 수입품은 제한하고 수출은 장려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물가가 급등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역으로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국내물가의 안정화를 꾀하는 데 집중한다. 특히 인간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식량의 경우 국내 수요를 충족하기에도 벅찬 마당에 해외에까지 수출한다는 건 그만큼 정치·사회적 불안을 자초하는 행위이므로 다른 상품보다 우선해서 수출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물가가 내리던 시기에 설립된 WTO는 이러한 수입에 초점을 맞춘 보호무역주의와 관련해 제대로 된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부족하며, 더구나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 간 갈등이 고조된 현 상황에서는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좋다. 점차 뜨겁고 건조해지는 기후는 주요 곡물 원산지의 작황 부진을 초래하고, 전쟁은 이러한 사태를 가속했으며, 주요 식량 수출국들은 속속 문을 닫고 있다. 그래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쯤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현재의 식량 위기가 생산의 부족 때문이 아닌 분배의 부족 때문이라는 점을 되새기자.

현재 세계 각국에서 효율적인 식품 시스템에 대한 민간투자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곤 하나,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투자의 특성상, 농식품 시스템에 대한 투자 대부분은 현재 저소득 국가에서의 식량 불안 사태를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오히려 식품을 구매할 여력이 충분한 국가에서 더 많은 소비자가 더 수월히 식품을 주문하고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돼 있다. 가령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로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든지, 식품의 신선함을 향상할 수 있도록 저온유통체계를 개선한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일찍이 FAO는 현행 식품 시스템이 대대적인 개선 없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2011년 13억톤이었던 FLW의 양이 2030년에는 21억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일찍이 FAO는 현행 식품 시스템이 대대적인 개선 없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2011년 13억톤이었던 FLW의 양이 2030년에는 21억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그러나 이러한 투자의 결과물 대부분은 고소득 국가에서 해마다 발생하는 막대한 양의 식품 손실 및 식품 폐기물(FLW)을 감소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라면 버려졌거나 소실됐을 식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전환하는 기술 개발 및 업사이클링 운동이 많은 단체와 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는 모양새나 아직은 역부족이다. 

오히려 점차 수요가 늘어나는 육류와 호화로운 음식의 공급을 유지하고자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과 담수 소비, 토양 침식, 화학 살충제와 비료 사용 등이 증가하고 있으며, 부가적으로 과한 칼로리 섭취로 인한 비만과 그로 파생되는 여러 질병이 함께 확산하고 있다.

세계은행 그룹이 2020년 발표한 ‘식품 손실 및 폐기물 해결방안 : 지역적 해결책과 세계적 문제(Addressing Food Loss and Waste: A Global Problem with Local Solutions)’에 따르면, 전 세계 FLW는 매년 전체 인공 온실가스의 8%에 해당하는 4.4GtCO2eq(이산화탄소환산톤)를 발생시키고 있으며, 고소득 국가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낭비와 관련된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저소득 국가의 2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찍이 FAO는 현행 식품 시스템이 대대적인 개선 없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2011년 13억톤이었던 FLW의 양이 2030년에는 21억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이러한 FLW를 감소시키는 것은 단순히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산과 유통, 소비,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더 적은’ 자원을 이용해 ‘더 많은’ 이들에게 ‘더 양질의’ 음식을 제공한다는 뜻이며,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 인구에 충분한 음식을 공급하고, 현행 식품 시스템의 자원 낭비는 물론 환경파괴를 줄임으로써 지속 가능한 식품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고소득 국가에서의 식품 유통·관리 체계 개선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현재 기아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저소득 국가에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나아가 그들이 겪는 식량 위기를 어떻게 하면 근절할 수 있을지 그 대책 마련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기후위기에 대한 여러 국가의 공동 대응, 또는 내전 등을 겪는 국가에서 분쟁의 종식을 위한 정치적 노력 등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으므로, 단순히 식품 유통 체계만 손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일개 국가와 지역을 넘어 범지구적으로 함께 해결책을 도모해야 할 일인 것이다.

‘범지구적 해결책’이란 일개 국가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말이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어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많은 주체가 다른 주체에 일의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식량 위기, 기후위기, 난민 위기가 내포하는 그 모든 시급함과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 회피와 나태함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사진=넷플릭스 '돈 룩 업' 예고편 캡처]
‘범지구적 해결책’이란 일개 국가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말이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어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많은 주체가 다른 주체에 일의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식량 위기, 기후위기, 난민 위기가 내포하는 그 모든 시급함과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 회피와 나태함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사진=넷플릭스 '돈 룩 업' 예고편 캡처]

바로 이 부분에서 일반 시민은 물론 각국 정치인들마저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만다. ‘범지구적 해결책’이란 일개 국가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말이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어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많은 주체가 다른 주체에 일의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식량 위기, 기후위기, 난민 위기가 내포하는 그 모든 시급함과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 회피와 나태함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개인은 국가에, 국가는 다른 나라에, 현세대는 다음 세대에 책임을 떠넘길 뿐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서서히 다가오는 실재하는 위험을 외면한 채 다음과 같이 외칠 뿐이다.

“돈 룩 업! (위를 보지 마!)”

또 그렇게 모두는 정확히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예견된 자멸로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다. 과학자들이 숱하게 경고했지만, 그런 경고의 목소리에 ‘좋아요’나 누르면서 말이다.

경제산업팀장

 

■ 글쓴이는?  어쩌면 기자 역시 기후위기, 식량 위기를 주제로 기사를 쓰면서 ‘나는 할 만큼 했어’라고 자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구 멸망을 초래하는 사건마저 시청률을 높이는 방송 콘텐츠로 사용하려던 극 중 언론인들의 모습과, 현재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알리겠답시고 기사를 쓰는 기자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기자의 일상은 호화롭기보다는 소탈하다. 집에서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무더운 여름을 나고 있으며, 외식할 때는 최대한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런 소시민적 실천이 과연 다가오는 위기를 지연시키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 취재 후기 – 그럼에도 할 수 있는 한 계속 이야기를 전하고자 노력하겠다. 다만 시청률이나 조회 수를 신경 쓰는 극 중 언론인들과 달리, 오로지 올바른 정보에 근거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걸 하나의 사명처럼 여기고 그러하겠다. 부디 들을 귀가 있는 분들은 들으시길 바란다. 설령 머지않아 인류가 큰 시련에 직면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깊이 새기고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그전까지 훨씬 뜻깊고 밀도 높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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