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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알못의 서울 나들이] 몽촌토성 (上)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9.2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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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밖은 위험해.”

보통 집 밖으로 나가는 걸 귀찮아하거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단 집에 머물며 여가를 즐기는 게 더 낫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이후로는 실제로 집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표현으로도 종종 쓰이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풍토병처럼 자리 잡은 엔데믹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그동안 집 밖으로 나오길 꺼렸던 이들이 다시 모임을 갖고 야외활동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에 기자 역시 과감히 이불을 박차고 주말 아침부터 집 밖으로 나왔다.

주말을 맞아 올림픽 공원 내 조성된 백제 문화유산을 탐방했다. 사진은 한성백제박물관 내 전시된 그림. [사진=여지훈 기자]
주말을 맞아 올림픽 공원 내 조성된 백제 문화유산을 탐방했다. 사진은 한성백제박물관 내 전시된 그림. [사진=여지훈 기자]

목적지는 송파구에 있는 올림픽 공원. 공원 자체보다는 그 큰 자락을 차지하는 몽촌토성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설알못(서울을 알지 못하는)’ 기자의 두 번째 서울 나들이를 위해 동료 기자가 좋은 산책 코스라며 추천해 준 곳이었다.

공기가 서늘한 이른 아침인데도 지하철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이 많았다. 아이와 함께 나온 부모부터 배낭을 메고 등산복을 갖춰 입은 반백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비록 붐빈다는 점에선 같았지만, 모두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탓에 쥐 죽은 듯 고요한 평일 출근길과는 엄연히 다른 활기가 있었다.

40분가량을 이동해 올림픽공원역에서 내려 곧장 성내천 옆으로 난 하천길을 걷기 시작했다. 천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는 한국체육대학교의 큼직한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천변을 따라 운동하거나 산책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올림픽 공원 산책로. 롯데월드타워는 공원 내 어디서나 자주 눈에 띄었다. [사진=여지훈 기자]
올림픽 공원 산책로. 롯데월드타워는 공원 내 어디서나 자주 눈에 띄었다. [사진=여지훈 기자]

반 시간쯤 걸었을까. 왼쪽으로 ‘몽촌역사관’이라고 쓰인 아담한 건물이 보였다. 역사관 앞에선 보도블록 공사가 한창이었다. 역사관을 돌아보는 내내 기자가 마주한 관람객이라곤 한 무리의 아이들뿐이었는데, 나중에야 몽촌역사관이 한성백제박물관 소속의 어린이 대상 박물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역사관에는 몽촌토성과 그것을 만든 백제의 문화에 대해 알기 쉽게 쓰여 있었다.

일반적으로 ‘성곽’이라고 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돌로 축조한 성을 떠올리기에 십상이다. 그러나 성곽은 축조에 사용된 재료에 따라 목책, 토성, 석성으로 구분하며, 지형에 따라서는 평지성, 평산성, 산성으로 나뉜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인 우리나라에서는 높고 경사진 지형을 이용한 산성이 가장 많다.

몽촌토성은 좀 더 북쪽에 있는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의 초기 도읍이었던 위례성(한성)을 이루던 토성이다. 몽촌토성이 구릉에 흙을 쌓아 만든 일종의 산성이라면, 풍납토성은 평평한 땅에 인공적으로 쌓아 올린 평지성이다. 돌로 쌓아 만든 석성이 많던 고구려나 신라와 달리, 백제의 성은 유난히 토성이 많았다.

백제 시대는 도읍의 위치에 따라 한성(서울) 시대, 웅진(공주) 시대, 사비(부여) 시대로 구분된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아들 온조가 기원전 18년 한강 남쪽 위례성에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된 한성백제는 기원후 475년까지 총 493년 동안 이어지며 백제 전체 역사(678년) 중 7할을 넘게 차지한다. 고구려에 패해 지금의 공주로 도읍을 옮기며 시작된 웅진백제는 63년으로 백제 전체 역사 중 1할을, 사비백제는 122년으로 2할 가까이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2015년 7월 유네스코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후기 백제의 도읍지였던 공주, 부여, 익산(사비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 3개 도시에 분포된 8개 유적지만 포함됐고, 가장 오랜 기간 백제의 도읍지였던 서울의 문화유산(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방이동 고분군)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성백제박물관 내 전시된 풍납토성 단면의 모습 [사진=여지훈 기자]
한성백제박물관 내 전시된 풍납토성 단면 [사진=여지훈 기자]

이쯤에서 잠시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의 관계를 짚고 넘어가자.

삼국사기 백제 개로왕 21년 기록을 보면 “고구려군이 북성을 공격해 7일 만에 빼앗고 남성을 공격했다”는 말이 나온다. 풍납토성이 좀 더 북쪽에 있음을 고려한다면 여기서 말한 북성과 남성은 각각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으로 추정된다. 또 ‘일본서기’ 웅략기 20년 기록에는 “대성(큰 성)을 7일 밤낮으로 공격하니 왕성이 함락돼 마침내 위례를 잃었다”고 나오는데, 풍납토성이 둘레 3.5km가 넘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평지 토성임을 감안한다면 여기서 말한 큰 성이 풍납토성, 왕성이 몽촌토성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풍납토성은 왕성이 아니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풍납토성 옛터에선 고대 왕성의 특징 중 하나인 성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비롯해 중국제 청동자루솥 등 고급 유물이 출토됐고, 백제 왕궁의 일부로 보이는 건물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것으로 보이는 유적·유물 등도 다수 발굴됐다. 이것들 모두가 풍납토성이 왕성이었음을 알려주는 유력한 증거이며, 이에 따라 현재는 풍납토성을 평상시 왕이 살던 곳, 몽촌토성을 전시에 농성 또는 대피를 위해 왕이 머물던 곳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처럼 평시성과 전시성으로 이원체계를 갖춘 것은 비단 백제만의 특징은 아니며, 고구려와 신라, 이후 조선에서까지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몽촌토성은 도로, 건물터, 토기 등 유물이 대거 발굴되면서 고고학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따라 개발이 중지되고 현재는 올림픽 공원의 일부로 조성돼 있다. 또 백제 유물뿐 아니라 고구려, 신라 유물도 출토됨에 따라 백제가 고구려에 패해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차례로 이 성을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풍납토성은 1925년 대홍수로 남서쪽 일부가 잘린 데다 서울이 개발되는 와중에 특별한 보호 없이 방치된 탓에 많은 문화재가 소실됐고 뒤늦게야 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현재는 성벽마저 2km 남짓 남아 있을 뿐이다.

몽촌역사관에서 관람을 마친 뒤엔 다시 산책로를 따라 정처 없이 걸었다. 시종일관 깔끔하게 정리된 산책로와 잔디밭을 보고 있자니 거대한 공원 면적을 관리하기 위해선 웬만한 인력과 비용 없이는 불가능하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고마운 손길로 다듬어진 산책로 위에선 많은 사람이 걷거나 뛰고 있었고, 몇몇은 잔디밭과 벤치에 앉아 조용히 주말의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대중없이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산책로 중에서도 제법 높은 곳에 이르렀다.

올림픽공원 9경 중 하나인 '나홀로 나무'와 그 너머로 보이는 타워크레인 [사진=여지훈 기자]
올림픽공원 9경 중 하나인 '나홀로 나무'와 그 너머로 보이는 타워크레인 [사진=여지훈 기자]

주위를 둘러보던 중 먼발치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홀로 우뚝 선 나무가 유독 눈에 띄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올림픽공원 9경 중 하나인 ‘나홀로 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나홀로 나무는 높이 10m의 측백나무로,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의 배경으로 자주 나온다고 했다. 꽤 유명했는지 사람들이 주위를 오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사실 기자의 관심을 더 끈 것은 그 너머로 즐비하게 늘어선 십수 대의 타워크레인이었다. 방향으로 가늠컨대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상 최대 재건축 사업이라며 난리도 아니었던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인 듯싶었다.

‘비록 지금은 다른 의미로 난리도 아니지만.’

한동안 고지에서 부는 바람을 만끽하다가 재차 산책을 이어갔다.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롯데월드타워는 국내 최고(最高)층 건물임을 과시하듯 공원 어디서나 자주 눈에 띄었다. 얼핏 어울리지 않을 조합으로 생각되지만, 도심 속 조성된 숲길과 그 위로 삐죽이 튀어나온 세련되고 현대적인 건물의 모습은 자못 잘 어울렸다.

그렇게 공원을 누비기를 30여분. 점차 햇살이 따가워진 탓에 애초 방문하려고 했던 한성백제박물관으로 향했다. 낮은 곳으로 내려오니 전보다 사람이 부쩍 늘어 있었다. 단순히 놀러 왔다고 하기엔 많은 인파가 끝이 보이지 않는 줄까지 이루며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어 근처에서 큰 행사라도 열리나 싶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검색해보니 이날부터 이틀간 올림픽공원 내 88잔디마당에서 ‘조이올팍페스티벌’이 개최된다고 했다. 국내 많은 유명 가수가 출연하는 뮤직페스티벌이라는데, 평소 음치인 탓에 노래에 큰 관심이 없던 기자로서는 한성백제박물관이 더 시급했기에 이내 관심을 접고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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