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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알못의 서울 나들이] 인왕산 찍고 활쏘기의 본산 황학정까지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11.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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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01. “여기 산악경찰 몇 분 오셔서 교통정리 좀 해야겠는데.”

“지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스갯소리와 고마움의 인사가 서로 오갔다. 까마득한 아래까지 족히 100여명의 사람들이 늘어서 기다리는 동안 다른 한쪽으로는 수십의 사람이 줄지어 내려갔다. 가파른 바윗길에 실족할까 조심하며 하산(下山) 대열에 낀 기자도 마주친 얼굴들에 틈틈이 목례해 고마움을 전했다.

주말 오전 서울 종로구의 인왕산 정상 부근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불과 반 시간 전만 하더라도 그리 붐비지 않았건만,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산행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 있었다.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악산의 모습 [사진=여지훈 기자]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악산의 모습 [사진=여지훈 기자]

인왕산 경치가 그렇게나 좋다며 동료가 추천해 준 지도 벌써 두 달여가 흘렀다. 그 전망 좋다는 인왕산 부근에 발도 못 디딘 채 이대로 해를 넘기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란 생각에 나선 산행이었다. 출발 전 알아본 정상까지의 높이는 338.2m. 큰 부담 없이 동네 산책한다는 심정으로 다녀올 만한 높이였다. 차림새도 찢어진 청바지에 대충 걸친 바람막이가 전부. 흔한 물병 하나 손에 들지 않았다.

종로3가역에서 한차례 환승 후 무악재역에서 내리니 시작부터 가파른 비탈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길옆으로 계단이 난 덕분에 올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르막 너머로부터 불어온 서늘한 바람이 위를 향해 쳐든 얼굴에 기분 좋게 부딪치길 반복했다. 정신없이 한 주를 보낸 뒤 가만히 쉬고 싶다는 몸을 겨우 달래며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입동이 지났건만 산에는 가을 정취가 여전히 완연했다. 그런 정취를 만끽하며 서두는 마음 없이 느긋하게 한발 한발 떼어갔다. 서서히 입술이 말라올 즈음, ‘인왕 약수’라고 쓰인 표지석이 때마침 모습을 드러냈다. 시의적절이 나타난 약수터가 반가워 다가가니 바위틈으로 뚫린 관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 바가지를 만들어 두어 모금 마신 것만으로도 금세 기운을 차렸다.

인왕 약수터 [사진=여지훈 기자]
인왕 약수터 [사진=여지훈 기자]

반 시간가량 이어진 산행에서 마주친 사람이라곤 오직 서넛뿐. 고즈넉한 산행에 대한 유쾌함과 그토록 전망이 좋다면 왜 이리 사람이 없는 걸까, 라는 의아함이 동시에 들 무렵, 갑작스레 인왕산 성곽길에 올라섰다. 그리고 눈앞에 줄지어 움직이는 인파를 마주하고 나서야 그동안 올라온 숲길이 성곽길로 이어진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었다.

“와아….”

눈앞의 풍광에 절로 터진 감탄사. 동료의 말마따나 실로 절경이었다. 아직 정상에 오른 것도 아니건만 기자가 발을 디딘 성곽 위에선 이미 서울 도심이 한눈에 조망됐다. 동쪽으로는 북악산이, 남쪽으로는 남산이 자리 잡은 가운데 성냥갑 같은 빌딩들이 오밀조밀 채워진 도심 위로는 넓고도 드높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길에 따라 이리저리 모양내진 구름들은 그 안을 옅게 채우며 순항 중이었고, 매일 빌딩 숲 아래서 올려다본 조각난 모습과 달리 눈앞으로 펼쳐진 광활한 세계는 보는 이의 가슴마저 넉넉히 확장시키는 듯했다. 시선을 던지는 위치의 차이가 세계와 그것을 보는 이의 마음마저 완전히 뒤바꿀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남녀노소가 한데 어울린 인파에 섞여 15분가량을 더 오르니 금세 인왕산 정상에 도착했다. 좁은 정상 어름엔 이미 많은 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챙겨온 주전부리를 꺼내 먹으며 데워진 몸을 식히는 이들, 도심을 조망하며 조용히 사색에 잠긴 이들, 정상 표지석에서 왁자지껄 기념 촬영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군상이 두루 섞여 있었지만 시끄럽다기보다는 흥겨웠고, 무엇보다 여유로웠다. 신기하게도 정상 표지석 뒤편 수풀에서는 두엇의 고양이가 그런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중에서야 그 고양이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인왕산 정상을 터 삼아 자라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왕산 정상엔 챙겨온 주전부리를 꺼내 먹으며 데워진 몸을 식히는 이들, 도심을 조망하며 조용히 사색에 잠긴 이들, 정상 표지석에서 왁자지껄 기념 촬영하는 이들까지 다양했다. [사진=여지훈 기자]
인왕산 정상엔 챙겨온 주전부리를 꺼내 먹으며 데워진 몸을 식히는 이들, 도심을 조망하며 조용히 사색에 잠긴 이들, 정상 표지석에서 왁자지껄 기념 촬영하는 이들까지 다양했다. [사진=여지훈 기자]

내려오는 길은 한결 수월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정오 무렵 인파가 급격히 몰린 탓에 상당한 교통체증(?)을 겪긴 했으나, 오르내리는 이들 모두가 서로를 여유롭게 기다리며 누구 하나 느리다고 재촉하지 않았다. 하산하는 중간중간 절경을 맞닥뜨릴 때마다 멈춰서 사진을 찍다 보니 함께 내려오던 이들끼리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고, 나중에는 결국 떨어져 홀로 내려왔다. 인왕산 자락길을 따라 20여분을 내려오니 어느새 대로변에 도착해 있었다.

#02. 그로부터 다시 10분쯤 걸었을까. 도로 왼편으로 옛 기와집과 공터가 눈에 들어왔고, 그 안에서 서넛의 사람이 활을 쏘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황학정 국궁전시관’이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직업병이 발동한 걸까. 가던 발길을 멈추고 곧바로 전시관으로 내려갔다. 점심때라 그랬는지 작은 전시관 내 관람객이라곤 기자 혼자뿐이었다. 전시관 안에는 조선의 대표 활이었던 각궁을 비롯해 몽골, 중국, 일본, 터키, 부탄, 영국, 헝가리를 대표하는 활과 화살도 전시돼 있었다. 또 활에 발사 장치를 달아 기계적 힘으로 화살을 쏜 쇠뇌, 느린 발사 속도가 약점인 쇠뇌의 단점을 보완해 최대 10연발의 연속 사격이 가능하게 한 수노기(연노),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해 수십의 화살을 동시에 쏜 신기전 등도 볼 수 있었다.

습사 중인 황학정 회원들 [사진=여지훈 기자]
습사 중인 황학정 회원들 [사진=여지훈 기자]

본래 황학정은 고종황제의 명으로 1899년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궁술을 연습하도록 지은 사정(활터에 있는 정자)이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군대 제식무기에서 활이 제외되면서 전국의 사정이 거의 사라지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종이 국민의 심신단련을 위해 궁술을 장려하고 중흥하려는 목적으로 황학정을 짓고 일반 백성에게도 개방했다. 고종 본인 역시 자주 방문해 직접 활쏘기를 즐겼다고 하는데, 황학정이란 이름도 황색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고종의 모습이 마치 학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하지만 1922년 일제가 경희궁을 헐면서 황학정은 조선 시대 인왕산 아래 있던 오(五)사정 중 하나였던 옛 등과정 터인 사직동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황학정에 모인 선비들은 조선궁술연구회를 조직해 1928년 전조선궁술대회를 개최했고, 이듬해에는 ‘조선의 궁술’을 발간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로도 황학정은 전통 활쏘기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958년 ‘제1회 전국남녀궁도대회’를 개최했고, 1959년에는 최초로 양궁을 도입해 국내 양궁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이후로도 전통 사법을 전승하는 본산이자, 국궁계의 수장으로서 전국 380여개 활터의 종가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까지 활쏘기 대회, 궁술 교실 등을 꾸준히 열고 있다.

황학정 국궁전시관에는 세계 각국의 활과 화살을 비롯해 조선시대 각궁, 쇠뇌, 신기전 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여지훈 기자]
황학정 국궁전시관에는 세계 각국의 활과 화살을 비롯해 조선시대 각궁, 쇠뇌, 신기전 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여지훈 기자]

현재 황학정은 회원제로 운영 중이다. 앞서 기자가 목격했던 이들 역시 황학정 회원으로서 습사(활쏘기 연습)를 하던 중이었다. 한 회원은 “내년 봄쯤 궁술 교실을 다시 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궁술 교실에서 6개월~1년 정도 배운 뒤 시험을 치르고, 시험에 합격해야만 회원으로 등록할 수 있다”면서 “저 역시 현재 황학정의 회원이고, 활을 쏜 지는 5년 정도 됐다”고 소개했다. 왜 활을 쏘기 시작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활을 쏘면 기분이 좋다. 그 점에 매료돼 계속 쏘아 왔다”며 “시간이 되는대로 틈틈이 나와 활을 쏜다”고 말했다.

회원들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황학정과는 별개로 황학정 국궁전시관에서는 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제고하고자 활쏘기 및 활제작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활쏘기 프로그램의 경우 매주 금요일 10시부터 14시까지, 마지막 주 토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운영한다. 활쏘기를 체험하고 싶었던 기자로서는 아쉽게도 날짜가 맞지 않아 기회를 놓쳤으나, 해당 일자에 맞춰 소정의 체험료만 내면 8세 이상의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활쏘기 체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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