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노동자 안전에 대한 책임의식 변화, 한국과 영국은 무엇이 다른가?

  • Editor. 조근우 기자
  • 입력 2022.11.08 0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조근우 기자] 12만2713명.

고용노동부가 밝힌 지난해 우리나라 산업재해자 수다. 이 중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2080명. 사망자 중 사고사는 828명, 질병사망자는 1252명에 달한다. 사고사로 매일 2명 이상 사망하는 셈이다.

또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됐던 ‘위험의 외주화’는 지난해 산업재해현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사고사망자 중 5인 미만 기업의 사망자는 318명, 5~49인 기업 사망자는 352명으로 전체 사망자 비중의 81%에 달한다. 반면 300인 이상 기업의 경우 총 48명밖에 되지 않는다.

위험의 외주화는 기업들이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를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하청업체 노동자 등 외부에 떠넘기는 것을 뜻한다. 원청이 위험 업무를 외주화할 때 비용을 깎고 책임까지 하청에 떠넘기면서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꾸준히 문제로 지적됐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10만 명당 산업재해 사망자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권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한국의 2018년 근로자 10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사망자수는 5명으로 OECD 국가 중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산업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은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28.7%)을 가진 나라다. 산업이 제조업에 몰려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산업재해가 합리화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올해 초 발생한 하청근로자 사망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원청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위험의 외주화 속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산업재해 사망사고에서 원청의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법을 적용한 검찰의 처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검찰의 이번 기소는 안전보건 담당 임원(CSO) 선임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를 중대재해법으로 기소하는 첫 사례여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매일 2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 2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검찰, CSO 선임에도 원청 대표이사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

창원지검 통영지청 형사2부(배철성 부장검사)는 지난 3일 중대재해법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삼강에스앤씨와 그 대표이사를 불구속기소 했다.

고성에 있는 삼강에스앤씨 조선소 선박 수리공사 현장에서는 지난 2월 19일 오전 선박 안전난간 보수공사 작업에 나선 하도급 업체 소속 50대 근로자가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해당 근로자는 작업용 가스 호스를 운반하던 중 추락 방호망과 안전대 부착 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10m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삼강에스앤씨와 그 대표이사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하청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다.

원청 측은 중대재해법 시행일인 지난 1월 27일 CSO를 선임했다며 수사 과정에서 CSO가 경영책임자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압수수색 등을 통해 수집한 증거로 원청 측이 명목상 CSO를 뒀을 뿐 대표이사가 안전보건 확보에 대한 실질적·최종적 책임자임을 확인했다.

창원지검 마산지청 형사1부(김은하 부장검사)는 함안 한국제강과 대표이사 역시 중대재해법상 산업재해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이날 기소했다.

한국제강에서는 지난 3월 16일 협력업체 소속 60대 근로자가 크레인에서 떨어진 무게 1.2t 방열판에 부딪혀 사망했다. 해당 협력업체는 한국제강에서 8년째 상주하는 업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원청과 대표이사가 하도급 업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능력과 기술에 관한 평가 기준 등을 마련해야 했지만, 이 의무를 다하지 않아 하청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판단했다. 협력업체 대표(안전보건관리책임자)는 안전보건 규칙상 중량물 취급계획서를 작성하지 않고 방열판을 인양하는 크레인에 노후화된 섬유 벨트를 사용한 혐의(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업무상 과실치사)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고윤기 로펌 고우 대표 변호사는 업다운뉴스와의 통화에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나서 CSO를 선임하는 회사가 많아졌다. 실질적으로 안전보건 담당 임원에게 권한을 부여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고 오너 혹은 대표이사 책임을 대신 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자리를 만든 경우가 있다”며 “이번 검찰 기소는 선임된 안전보건 담당 임원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면, 실질을 따져 대표이사나 배후 오너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첫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보건 담당 임원을 선임한 회사에서는 이런 부분을 더욱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처럼 계속되는 산업재해를 어떻게 하면 감소시킬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우리나라가 본보기를 삼는 나라가 영국이다. ILO에 따르면 2015년 영국의 10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사망자수는 1명으로 한국의 1/5수준이다.

그렇다면 영국은 어떻게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나라가 됐을까?

영국은 어떻게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나라가 됐을까? [사진=연합뉴스]
영국은 어떻게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나라가 됐을까? [사진=연합뉴스]

■ 영국, 최악의 산업재해 국가에서 우수 국가로

“새로운 전략의 핵심은 위험을 만드는 사람들이 통제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지난 5월 영국의 산업안전보건청(HSE)이 제시한 단 한 줄의 새로운 10년 전략이다. 위험을 통제하지 않는 사람은 책임을 지게 되고,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의해 산업재해의 원청과 하청을 구분하지 않고, 징벌적 배상 규정을 포함한다.

영국은 산업혁명 당시 최악의 근로자 환경으로 유명했다. 이랬던 영국이 어떻게 산업재해가 가장 낮은 나라가 됐을까? 변화는 하나의 보고서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영국의 산업안전보건정책 입안과 집행에 있어 근간이 되는 것은 1972년에 제출된 로벤스 보고서다. 로벤스 보고서는 현재도 영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의 산업안전보건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벤스 보고서는 로벤스 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7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제출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기존 체재의 문제점으로 ▲법령이 너무 복잡하고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으며 ▲자율기능을 무시하면 효과가 없는 것을 꼽는다. 위원회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문제는 안전보건법규의 만성병이며, 이들 안전보건법규가 현대의 기술‧지식의 진보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방해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원회는 기존 시스템 결함에는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자율 기능을 강화하고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며 ▲법령 규제를 일원화하는 법령을 제정한다. 이에 영국은 1974년 산업안전보건법(HWSA)을 제정하고, 영국 정책결정 기관 안전보건위원회(HSC)를 출범한다. 이어 각 부처의 집행 업무를 통합한 안전보건청(HSE)을 출범한다. HSE의 안전감독관은 기소권과 작업중지명령권을 가진다.

이 같은 변화는 근로자 안전에 대한 기업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된다. 안전사고 발생 시 책임 있는 법인과 이사진에 모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됨으로써 어떤 방법으로라도 안전 목표를 달성하게 된 것이다.

2007년에는 세계 최초로 사망사고에 대해 법인의 과실치사 등에 형사 죄책을 인정하는 ‘기업과실치사법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이는 지난 1월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중대재해법의 근간이 된 법이다. 기업과실치사법 제정 전후 영국의 건설 산업 십만명 당 사고사망 감소율은 2007년 ‘기업과실치사법’ 제정 전 2.6%에서 제정 후 3.3%로 증가했다.

이 법에 대한 논쟁은 영국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업과실치사법이 유의미한 효과가 없다는 지적과 함께 이로 인해 오히려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또한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에 따른 재해 예방의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 기업과실치사법을 근간으로 한 우리나라의 중대재해법도 수많은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아무리 안전가이드라인을 준수하라고 이야기해도 근로자들이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근로자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법의 취지 자체는 매우 좋지만, 일부 조항들이 애매하여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좀 더 명확하게 세부적인 내용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중대재해법의 일부 조항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에 규정된 안전보건의무를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현실적으로 이행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안전사고는 회사만 잘한다고 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작업자들도 규정된 안전보건 의무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 사람의 목숨과 시장의 가치를 저울질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한 사람 목숨의 가치가 직업이나 재산으로 정해지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대통령과 하청 노동자 목숨 가치는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더 나아가 모든 노동자의 가족이 출근길 인사로 “조심해”가 아닌 “수고해”라고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