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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 깡통전세? 왜 문제야? (上)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11.1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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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끝없이 치솟기만 할 줄 알았던 집값이 하락하면서 언론에 ‘깡통전세’란 말이 부쩍 회자하는 요즘이다. 깡통전세란 전세 계약이 끝나더라도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로, 해당 주택의 매매가가 선순위 대출금과 전세금을 합한 금액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로 형성된 탓에 임대인이 주택을 처분하더라도 전세금을 돌려줄 충분한 자금을 마련치 못해 발생한다.

최근 발표된 통계는 현 사태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이미 지난 9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사고 건수는 523건, 사고금액은 총 1098억원으로 2013년 9월 상품 출시 이후 모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누적 사고금액과 사고건수 역시 각각 6466억원, 3050건으로 지난해 한 해 전체 사고 규모(5790억원, 2799건)를 일찌감치 추월해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은 전세 계약 기간이 만료됐음에도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경우, HUG나 서울보증(SGI) 등의 보증 기관에서 집주인 대신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대신 반환해주는 보험상품이다. 그런데 그 사고건수와 사고금액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 즉 깡통전세가 국내 부동산 시장에 일파만파 퍼지고 있음을 짐작게 해준다.

끝없이 치솟기만 할 줄 알았던 집값이 하락하면서 언론에 ‘깡통전세’란 말이 부쩍 회자하는 요즘이다. [사진=연합뉴스]
끝없이 치솟기만 할 줄 알았던 집값이 하락하면서 언론에 ‘깡통전세’란 말이 부쩍 회자하는 요즘이다. [사진=연합뉴스]

그럼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걸까?

무엇보다 최근 깡통전세가 급증하며 사회적 논란거리로 부상한 이유는 지난 수년간의 집값 상승기에 충분한 자기자본 없이 시세차익만을 노리고 ‘갭투자’로 건물을 사들인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류상으로는 주택의 소유주지만, 수중에 충분한 현금이 없어 부동산 침체기를 맞은 현 상황에서는 임차인에게 돈을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사실 갭투자에 관한 말은 많아도 그 개념을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이는 전문 투자자나 업계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일생에서 부동산을 거래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 데다 설령 한 번 관련 지식을 숙지했다 하더라도 거래가 없는 수년의 공백기를 거치면서 익힌 지식 상당수를 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펴봤다. 갭투자와 깡통전세의 개념부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까지. 다음 내용은 장지성 차장으로부터 자문받고, 여럿의 개인 공인중개사에게서 취재한 이야기를 함께 담은 것이다.

본래 ‘차이’를 뜻하는 영어단어 ‘갭(Gap)’은 부동산 시장에서는 주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를 가리킬 때 쓰인다. 갭은 시장 상황이나 수급 등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데, 갭이 작을 때 사용하는 부동산 투자기법 중 하나가 바로 갭투자다. 갭투자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세제도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부동산 투자기법이다.

갭투자의 메커니즘을 간단한 사례와 함께 살펴보자. 설명의 단순화를 위해 세금을 비롯해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일체의 비용은 없다고 가정하겠다.

우선 나소유(가명)씨가 소유한 매매가 10억원인 집에 나전세씨가 전세금 8억원을 내고 세입자로서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얼마 후 집값이 더 상승할 거라고 예상한 나투자씨가 나타나 집을 사겠다고 나섰다. 나투자씨는 현 시세 10억원에서 향후 나전세씨에게 돌려줄 전세보증금 8억원을 제외한 2억원만을 지불하고 나소유씨로부터 집을 사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사실 나투자씨는 수중에 현금이 없었으므로 집을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2억원의 대출을 받아 매입금을 충당했다. 이미 수년간 이어진 저금리 환경에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할 거라고 예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부동산 가격은 이후로도 한동안 상승했고, 집의 매매가는 이제 14억원, 전세가는 10억원까지 올랐다. 이런 와중에 나전세씨가 나가고 신규 세입자 또전세씨가 들어왔다. 나투자씨는 또전세씨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 10억원으로 나전세씨가 나갈 때 줄 보증금 8억원을 충당하고, 나머지 2억원은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갚거나 예금하는 등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얼마 후 나투자씨는 충분한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 집을 매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돌연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며 거시경제 환경이 심상찮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지난 수년간 급증하는 부채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으나, 그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경제지표가 동시다발적으로 나빠지면서 부채 문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은행들의 재무 건전성 악화가 문제시됐다. 이에 은행들은 신규대출을 줄이거나 기존대출의 연장을 꺼렸고, 그 결과 부동산 시장의 신규수요가 급감했다.

나투자씨는 사방팔방으로 집을 사들일 이를 물색했지만, 좀처럼 나서는 이가 없었다. 얼마 후 나투자씨 소유의 집과 비슷한 주택의 매매가가 13억원으로 꺾이는가 싶더니 금세 12억원으로 떨어졌다. 전세가도 9억원으로 하락했다. 설상가상으로 또전세씨와의 계약 만료 시점이 수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다른 주택의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 하락하고 있었으므로 또전세씨는 좀 더 저렴한 전세를 찾아가기 위해 나투자씨에게 계약 만료 시점에 맞춰 전세보증금 10억원을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나투자씨는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었다. 애초에 나투자씨가 주택을 사들일 수 있었던 것은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 즉 2억원의 갭에 해당하는 금액만 마련하면 됐던 데다 그마저도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규 세입자가 나타나면 또전세씨에게 줄 전세보증금을 충당할 수 있겠으나, 본격적인 집값 하락이 시작된 마당에 현 전세가인 9억원을 내고 들어오려는 신규 세입자가 쉽게 나타날 리 만무했다.

그동안 낮은 대출이자만 내며 적절한 기회를 틈타 집을 매각하려고 했던 나투자씨는 급한 마음에 현 시세보다 낮춘 11억원에 집을 내놓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10억5000만원으로 집값을 내렸다. 집값이 지금보다 더 내릴 경우 자금 사정이 더욱 악화할 게 뻔했으므로 큰맘 먹고 내놓은 자구책이었다.

그러나 다수가 집값이 더 내릴 거라고 예상하는 판국에 신규 매입자가 나타날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투자씨는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다면서 또전세씨에게 그냥 집에 살 것을 요구했다. 또전세씨로서는 배 째라는 식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상황은 더욱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자포자기한 나투자씨가 급기야 주택담보대출 이자마저 제때 납입하지 않은 것이다. 또전세씨는 나투자씨가 집을 매입한 이후 들어온 세입자였기 때문에 나투자씨가 집을 담보로 대출했던 은행보다 후순위 채권자였다. 따라서 나투자씨가 대출이자를 못 갚아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현 시세보다 한참 낮은 낙찰가에서조차 일부만 배당받을 수밖에 없었다. 즉 전세보증금 10억원 중 상당액을 날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현재 부동산 침체기를 맞아 갭투자와 맞물린 깡통전세에 들어간 수많은 세입자가 겪는 고통이자, 최근 사회적 논란거리로 깡통전세가 급부상한 이유다.

기사 작성 중 접촉한 다수의 공인중개사는 현 상황을 하나같이 ‘부동산 침체기’ 내지 ‘부동산 냉각기’로 표현했다. 온누리 부동산의 김성근 공인중개사는 “요즘은 말 그대로 거래 절벽이다. 누구 하나 거래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오죽하면 최근 전국 공인중개사무소 폐업 건수가 월 1000건을 넘어섰다는 발표까지 났겠느냐”며 부동산 경기 악화로 인해 현장에서 체감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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