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최문열의 리셋] '일 안하고 월급 받고 싶어?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해!'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3.09.05 0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민 주권 시대,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국민이 갑질 하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진대, 이를 악용한 악성 민원이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일선 공무원의 정상 업무를 방해하는 것을 넘어 최근의 동화성 세무서 사건처럼 소중한 생명을 앗아갑니다. 젊은 교사가 스러진 양천구 초등학교와 서이초 사건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모두 악성 민원 탓입니다. 악성 민원은 담당 공무원이나 교사 등을 괴롭히거나 불법 또는 탈법, 편법 등 비정상을 막무가내로 강요하는 악질 민원을 뜻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허위 신고로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직장 내 괴롭힘 허위 신고로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요즘 기업에서도 악성 민원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직장 내 괴롭힘 허위 신고 때문입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2022년까지 약 2만 3541건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한데 전체 2만 3000여 건 중 고용부가 '개선 지도'를 한 경우는 2877건(12.2%), 검찰송치는 415건(1.7%)에 그쳤습니다. 정부가 관여할 정도로 괴롭힘으로 인정된 사례는 14%에 불과하다는 얘기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해 말 내놓은 '직장 내 괴롭힘의 허위 신고 실태와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법처벌 조항을 보유한 국가(프랑스, 노르웨이, 호주, 루마니아, 버뮤다 등) 중 유일하게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하지 않아 그 판단을 주관적 해석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에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한국보다 먼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한 나라들은 괴롭힘 정의에 객관적인 성립 기준(지속성 또는 반복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벨기에, 노르웨이, 프랑스 등에서는 괴롭힘 신고 접수를 위해 신고인이 최소한의 합리적인 증거를 제출토록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일랜드의 경우 사용자에게 허위 신고 징계 등의 지침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허위 신고 위험성을 인지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 서 연구원의 진단입니다. 한데 국내에는 객관적인 판단 기준도 없고 허위 신고를 막을 장치도 없습니다.

“(동료가) 괴롭힘 당했다고 신고한 걸 알고 위로했는데 '신고하면 일 안 하고 출근도 안 해도 되니까 저한테도 해 보라'고 (했어요). (… ) 인스타에 남친과 놀러 간 사진 올리고… 신고가 허위로 밝혀지자 퇴사했어요.(목격자 B씨)”

서 연구원이 허위 신고를 직접 당하거나 목격한 근로자 1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허위신고 사례 분석연구(2023)'의 개별 면담 조사 내용 중 하나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면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 차원에서 유급 휴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허위 신고자 입장에선 일 안하고 월급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꽃놀이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허위 신고 사례를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외부 기관 신고, 언론 제보 등을 운운하며 사측에 압력 ▲동일 행위에 대한 재신고 언급하거나, 최대 7회 이상 반복 신고 ▲보상을 먼저 요구하는 경우 등입니다.

얼마 전 직장 내 괴롭힘 진정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주변 지인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실상이 참으로 안타깝고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로남불’ 성향이 강한 30대 초반 A씨는 주변과 늘 불화를 겪었다고 합니다. 결국 팀장과 동료 2명이 그와 일하기 어렵다며 회사를 떠났습니다. 이직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그는 재택근무 중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며 ‘꿀 빤다’고 좋아했고 친분이 있는 새 팀장의 양해를 얻거나 혹은 얻지 않은 채 근무 시간 중 면접 보러 다녔습니다. 근무 태만과 업무 지시 불이행 등 사내질서 문란 정도가 심해 사측이 정상적으로 업무에 집중하도록 압박을 가하자, 대표와 이사, 팀장 3인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노동청에 진정을 냈습니다. 이어 가해자들과 분리 조치시켜달라며 유급휴가를 요청하고 조사 기간 내내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대표까지 가해자로 지목되는 바람에 제3자인 노무법인을 통해 상당 기간 조사를 받는 진통 끝에 노동청에서 불인정 판정이 났습니다. 취업규칙이 없는 10인 이하의 소기업은 만신창이가 된 것은 뻔한 일입니다.

비단 이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선량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근로기준법을 악용해 자신의 회사와 구성원 등에 칼을 꽂는 허위 신고 등의 악성 민원은 근로감독관도 괴롭힙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가 심의 결과(불인정)를 전하는 근로감독관 앞에서 휘발유를 뿌리고 자해 시도를 해 충격을 던졌습니다. 지난 5월에는 젊은 근로감독관이 민원인한테 고소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허위 신고의 경우 실제 괴롭힘 피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짜 피해자에 대한 일종의 가해 행위라고 우려합니다. 한국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율(20~30% 이상)이 EU 국가나 호주(10% 이하)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심각한 실정인데다 아직 피해자 구제조차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마당에 허위 신고가 남발되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효과적 대응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허위 과장 신고를 일삼는 ‘오피스빌런’들을 막을 방도는 없는 것일까요?

먼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객관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반복성 또는 지속성의 기준을 정해 공정하게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또 허위 신고에 대한 대응 지침 마련도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징계 등 사용자에게 허위 신고에 대응할 지침 마련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경우는 참고할 만합니다.

“당장 노동청에서 허위 신고자 DB를 구축해 근로감독관은 물론 노무사간 정보 공유토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자료가 남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축될 수 있으니까.”

지인은 한동안 혀를 끌끌 찹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수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 글쓴이는? - “이제 사람을 누구도 못 믿겠어요!” 허위 신고의 폐해는 자못 심각하다. 그동안 잘 지내던 동료로부터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돼 오랜 조사 끝에 불인정 판정을 받은 젊은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불신의 나락이다. 허위 신고자는 사직했으나 손익계산서는 어떨까. 출근도 안하고 일도 안하고 월급을 챙겼으되 신뢰를 잃고 동료를 잃고 악명을 얻었다. 한참 세월이 지나 인생을 되돌아볼 때 득이라며 웃을지 실이라며 울지 궁금하다.

■ 후기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만 4년이 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은 과거보다 과연 줄어들었을까. 분명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하지만 그에 따른 혼란과 잡음도 크다. 특히 허위 신고 남발로 직장 내 괴롭힘이 오히려 ‘작은 기업 괴롭힘’이라느니 ‘근로감독관 괴롭힘’이 됐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넘쳐난다. 가짜 피해자로 인해 진짜 피해자의 입지를 좁히기도 한다. 건강한 직장문화를 위해 재정비가 절실하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