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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 젊은 세대의 사랑과 연애가 가볍고 아슬아슬해 보인다고요? (下)

  • Editor. 박다온 객원기자
  • 입력 2022.02.07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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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에 따른 사랑과 연애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낭만적 사랑’에 대해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모 세대의 사랑이 ‘낭만’을 바탕으로 한 연애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연애가 등장하고 대중화된 시점 자체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 연애의 역사

우리가 말하는 로맨스의 의미는 원래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이 발발한 이후 수많은 남성이 징집됐고, 여성들은 정조대를 차고 남편들을 기다렸다. 그때 돈 많은 귀부인들은 음유시인들로부터 남녀 간의 사랑과 기사도 이야기를 들으며 대리만족을 했는데 이 이야기를 ‘로맨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로맨스가 실현되는 사례는 결코 많지 않았다. 종교적 교리가 지배하던 중세시대에는 신에 대한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보다 우위에 있었고, 결혼은 가족끼리의 비즈니스였기 때문에 애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낭만은 한낱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로맨스가 대중화된 건 계몽주의 시대 이후다. 이성과 과학으로 세계를 이해하자는 움직임은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일으켰다. 책이 대중화되면서 로맨스도 주류로 부상했다. 그리고 나타난 낭만주의는 로맨스에 뜨겁게 불을 지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성보다는 직관과 감정을 미적 경험의 근원으로 봤다.

특히 문학에서 변화가 눈에 띄었는데 1774년 발간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그 예다.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며 돌풍을 일으켰다. 얼마나 영향이 컸던지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던 젊은이들이 실제로 자살하는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기도 했다. 사랑 문제로 목숨을 끊는 일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더불어 낭만적 연애 시들이 나오면서 ‘자유연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이런 개념이 들어온 건 120년 정도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평론가 이정옥 교수(숙명여대)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연재한 칼럼 ‘이정옥의 문화톡톡’ 에서 “19세기에 처음 발명된 ‘연애’는 프랑스식 사랑(fine amore)과 19세기 영국식의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을 결합한 개념으로 출발했다. 이후 20세기 미국의 데이트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연애는 사랑과 분리된 데이트시스템을 포섭하면서 더욱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연애는 영육합일의 지고지순하고 숭고한 사랑이라는 최상의 가치로 미화되는가 하면, 때론 구속적인 결혼제도에 맞서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자유연애와 연애결혼을 선택하는 해방적인 실천행위로 이상화된다. 또한 기념 이벤트나 프러포즈와 같은 소비자본주의적 데이트시스템을 포괄함으로써 성과 사랑, 결혼의 가치를 자본으로 환산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이 교수의 사랑에 대한 진단이다.

[사진 = 픽사베이]
[사진 = 픽사베이]

■ 요즘 20·30세대가 가벼운(?) 연애를 추구하는 이유

이렇게 연애가 복잡해지다 보니 젊은 세대들은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IMF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신자유주의 체제는 한국사회를 가족이나 집단을 배려할 여유조차 빼앗긴 채, 오직 살아남기에 올인하는 무한경쟁의 정글로 만들었다”며 “‘살아남기’가 생존전략이자 지상목표인 사회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성별 구분에 기초한 데이트나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강요하는 (구)연애시스템은 감당하기 버거운 구시대적 유물로 굳어진 것”이라고 연애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 IMF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현대인의 삶은 팍팍해졌다. 특히 경제적 여유가 없는 젊은 세대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기 시작했고 취업 과 내 집 마련, 꿈과 희망 등 수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른바 N포세대다.

삭막한 현실의 무게로 많은 걸 포기하고 사는 이들에게 결혼을 전제로 한 ‘진지한’ 연애가 사치가 된 것이다. 데이트비용 자체도 부담스럽지만 연애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젊은 세대도 많다. 연애를 당연히 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아울러 정보통신의 발달도 연애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00년대 들어서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폰팅’, ‘채팅’ 등 남녀 개인 간의 만남이 활발해졌다. 특히 개인 PC가 보급되면서부터는 다양한 커뮤니티와 채팅 프로그램을 통한 ‘만남의 장’이 생겼고, 최근에는 데이팅 앱도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부담 없이 연애 대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여기에다 여권 신장은 연애뿐만 아니라 성에 대한 인식도 변화시켰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낮은 지위는 유독 여성에게만 가혹한 ‘순결주의’를 강요했다. 피임의 발전이 있기 전까지는 임신에 대한 통제력이 남성에게 있었으며 순결 이데올로기에 갇혀 성적 자유를 실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여성의 교육수준과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성 평등에 대한 의지는 견고해졌다. 여성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여성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성관계를 하는 풍조로 바뀌고 있다.

정리하자면 젊은 세대들은 부모 세대와 다르게 잠재적 배우자가 될만한 후보 하고만 연애하지 않는다. 그들은 운명적 상대를 기다리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대신 현재 만족할 수 있는 이성과 만나는 것에 크게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2030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연애에 대한 무게감이 덜한 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정옥 교수는 업다운뉴스와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과거와 같이 평생 일부일처로 살아가는 동반자적 결혼이 무너지고 있는 추세에 따라 천생연분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본으로 하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관념이 약화되고, 자기주도적인 생을 염두에 둔 기브앤테이크의 사랑관이 자리 잡으면서 과거와 같은 연애는 점점 희미해져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 앞으로 연애는 또 어떤 방식으로 확대되고 변화할까?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천생연분이나 부모가 엮어준 사랑은 더는 주류의 연애 방식이 아닐 수도 있다. ‘썸’이나 동거, 비혼 문화가 그렇듯 새로운 형태의 연애가 그 자리를 채워갈 것이다. 미래에 대중화될 수 있는 몇 가지 연애 스타일을 소개하면 이렇다.

□ 성소수자들의 연애

지난해 방송된 채널A 예능프로그램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는 홍석천이 반가운 손님으로 등장했다. 그는 20년 전 커밍아웃 이후 비슷한 고민이 있는 사람들과 상담하고 있으나 회의감이 든다는 사연을 토로했다. 그는 커밍아웃 이후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말하며 당시 “스스로 떳떳하고 행복 하고 싶었기 때문”에 성 정체성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가 커밍아웃을 하고 20년이 지난 현재, 아직도 꽃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적인 분위기는 많이 변했다.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을 드러내며 권리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매년 5~6월경 열리는 성소수자들의 문화축제(퀴어축제)는 서울을 시작으로 지역을 확대해 현재 대구, 인천, 제주, 부산 등에서도 열리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벌써 세계에서 30번째 나라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는 ‘제3의 성’인 논 바이너리임을 공개한 선수가 출전했다. 성소수자인 미국의 피트 부티지지 미 교통장관은 두 아이를 입양 후 육아휴가를 냈다. 일본에서는 주요기업 100개 가운데 80% 이상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키는 차별금지를 명문화하고 있다.

□ 폴리아모리

폴리아모리란 새롭게 등장한 연애 방식 중 하나다.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비독점적 다자간연애를 의미한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폴리아모리에 대한 움직임은 1990년대 이후 성정치적, 문화적 화두로 대두됐다. 연인이나 부부가 쌍방 합의 아래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외도’, ‘불륜’, ‘양다리’ 등과 구별된다.

폴리아모리를 행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는 관념을 거부하고, 열린 연애를 지향한다. 그들은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은 제도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여러 상대와의 다양한 관계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현재 폴리아모리를 하는 홍승은 씨는 자신의 에세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에서 말한다.

“우리 관계는 폴리아모리로 불리지만, 특별하게 다르지 않다. 여느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질투와 존중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다만 서로를 소유하고자 애쓰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쓴다. 소유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상대와 또 다른 상대를 존중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면서.”

이들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 의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의 연애 방식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실로 궁금하다.

□ 가상연애

“OS와 사귄다고? 어떤 느낌인데?”

2025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ER' 속 대사다.

주인공은 목소리와 대화만으로 AI비서와 사랑에 빠진다.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랑을 납득하게 된다. 놀라운 점은 개봉 시점인 2013년만 해도 공상영화로 여겨졌던 내용이 현실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최근 AI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수단이 됐다. AI 스피커와 말을 주고받는 사람이 많은가 하면 AI챗봇의 활약도 눈에 띈다. 2020년 말 정식서비스를 시작한 AI챗봇 ‘이루다’는 출시하자마자 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헬로우봇’은 이용자들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사주와 타로 등을 이용해 답변을 내놓아 호응을 얻고 있다. 둘 다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해 공감을 일으킨다.

버추얼 인플루언서(가상인간) 역시 뜨거운 키워드다. 요즘 가상인간이 모델이나 인플루언서 뿐 아니라 은행원 교사 등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향후 ‘연애’와 결합된 사업모델도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예상된다. 어쩌면 우리 자녀의 연애 상대는 ‘사람’이 아닌 ‘AI’가 될 수도 있다.

또다시 30년이 흐른 뒤 인간의 사랑은 어떻게 변할지 자못 궁금하다,

 

글쓴이는? - 통금이 있는 집안에서 자란 30대 여성. 20대 초반, 남자친구가 생긴 후 9시면 걸려오는 전화에 지쳐 다시는 집에 연애 여부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솔로인척 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엄마가 넌지시 물었다. “요즘 연애는 안 해?”, “연애를 잘해야 결혼을 잘 한다더라.” 아니 언제는 연애하지 말라며! 지금과는 너무 다른 부모 세대의 연애와 그 변화 배경이 궁금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취재 후기 - 기성세대의 연애 방식을 보며 지금과 비교하는 과정도 재밌었고, 연애의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다양한 연애의 방식들을 조사하면서 다자연애를 하겠다고 외치는 미래의 아들을 상상해봤다. ‘왜 집에 안 오냐’고 전화로 닦달하던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내 아이가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 같다. 그렇지만 후세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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