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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커리큘럼] 결혼? 그게 뭐라고!

  • Editor. 박다온 객원기자
  • 입력 2022.04.0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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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행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 고행자입니다. 살다보면 온갖 역경과 좌절과 함께 고행의 소용돌이로 빠져듭니다. 그러면서 깨닫는 것도 늘어납니다. 인생커리큘럼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해하고 깨쳐야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하죠. 그 성장을 위해 우리의 고민과 아픔, 상처를 그대로 마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박다온 객원기자] 어릴 때부터 주구장창 보는 동화에서는 공주가 왕자와 만나 결혼을 하며 이야기를 마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아무리 인생을 주체적으로 산다고 해도 이상형의 왕자나 공주를 만나기가 어디 쉬운가? 더군다나 그들이 사는 성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 뒤편에는 ‘독박육아’나 ‘시집살이’ 또는 장서 갈등(丈壻葛藤)이 있었는지 알게 뭐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결혼을 꿈꾼다. 이건 분명 백설공주, 신데렐라의 잘못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이렇게 결혼에 집착하게 됐을까?

■ 결혼, 한 명하고만 해야 해?

놀랍게도 일부일처제가 제도적으로 확립된 건 200~300년 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이스 헨리 모건은 인류가 세 단계의 발전을 거쳤다고 봤다. 수렵 채집을 하던 ‘야만’, 농경생활을 하던 ‘미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명’이다.

이 과정에서 결혼의 형태도 변화했다.

원시시대에서 결혼은 집단혼으로 존재했다. 집단 속에서 모든 남성은 남편이, 모든 여성은 아내가 됐다. 아이도 공동 육아를 했다. 힘을 합쳐 사냥을 하고 채집을 하기 위한 생존방식이었다. 집단혼 아래에서 원시 인류는 모계를 기반으로 했다. 누가 아버지인지는 알 수 없어도 어머니인지는 확실했기 때문이다. 일처다부제 사회였다.

하지만 농경이 시작되면서 부계사회가 된다.

잉여 생산물을 누가 차지하느냐 문제에 있어 힘이 센 남성이 우위에 있었다. 재산이 생긴 남성들은 자신의 혈통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었다. 결국 남성은 여성에게 경제적 자원을 약속했고, 여성은 남성에게 친자를 보장하면서 결혼 제도가 생겨났다.

그 후 귀족이나 왕실에서는 중매를 통한 결혼이 많았다. 결혼은 그들에게 가족이라는 우호관계 아래서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일종의 정치적 도구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평민들의 만남은 그에 비해 자유로웠다.

현재의 일부일처제가 자리를 잡게 된 건 불과 300년도 지나지 않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 아래 사람들은 신분이나 자산과 상관없는 평등한 결혼을 원하게 됐다.

그리고 2022년, 일부일처제를 기반으로 한 결혼제도는 벌써 철지난 이야기가 됐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사진출처 = 픽사베이]

■ 결혼, 꼭 해야 해?

친구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축하 인사와 함께 묻는 말이 있다.

“왜 결혼을 결심했어?”다. 악의 없는 궁금증이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싶지만 어찌 하겠는가 정말 궁금한 것을. 사실 저 말의 속내는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서 결혼을 결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다. 예전에는 결혼이 ‘나이가 차면 으레 하는 인생의 중차대한 행사’였다면 요즘에는 ‘확신이 있어야 결정하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지난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혼인 이혼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결혼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저 수치다. 10년 전인 2011년 32만9000건에 비해 40% 이상 감소했다. 천 명당 혼인건수를 의미하는 ‘조혼인율’도 2011년 6.5에서 점차 줄어들어 지난해 3.8을 기록했다. 결혼율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통계청 노형준 인구동향과장은 혼인이 감소한 이유에 대해 “30대 결혼 적령인구 감소와 미혼남녀의 가치관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혼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은 특히 여성 사이에서 더 확대되는 것으로 보인다.

국승민 정치학과 교수를 비롯해 김다은 김은지 정한울이 함께 지은 책 ‘20대 여자’(시사IN북)에 따르면 18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은 36.9%에 불과했다. 20대 남성은 23.8%가, 20대 여성은 8.1%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적절한 시기에 결혼하고 출산을 해야 하는 흐름은 이제 구시대적 사고가 됐다. 요즘 청년들은 결혼에 대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거나 “혼자 잘사는 게 낫다”고 여긴다.

40대 초반 여성 K씨도 비혼주의자다. 20대 중반까지는 결혼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지만 늘 웃던 언니가 결혼 후 불행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비혼을 결심했다. 상대방과의 합의 하에 연애는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비혼주의자라고 말하면 어떤 이들은 ‘지금은 괜찮겠지만 나중에 외롭지 않겠느냐고’고 묻는다. 그럼 K씨는 대답한다. 괴로운 것보단 외로운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K씨처럼 비혼주의자들은 결혼적령기에 맞춰 배우자를 고르기보다는 자신만의 방향성과 속도대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미지 = 연합뉴스]
[이미지 = 연합뉴스]

■ 결혼, 도대체 왜 안 하는데?

그렇다면 요즘 청년들, 왜 결혼을 안 하려고 할까?

사회학자 오찬호 교수는 그의 저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 비혼주의자의 증가에 대해 △경제적 사정 △인간관계의 문제 △성불평등에 대한 공포, 세 가지로 설명했다.

경제적 사정이야 뻔하다. 한국은행이 얼마 전 발표한 ‘MZ세대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MZ세대(1980~1995년생) 근로소득은 2000년 같은 연령의 1.4배, 총 부채는 4.3배로 집계됐다. 소득은 18년 전에 비해 크게 늘지 않은 반면 빚만 왕창 늘어난 것이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조사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도 결혼비용은 현실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지난달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혼부부 총 결혼비용은 2억8739만원으로 나타났다. 2022년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인 194만4812원을 세금 없이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모은다고 해도 약 12년 걸리는 금액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 결혼하는 청년들은 세 부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집안 도움을 받거나 빚을 내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이들에게 결혼은 대출지옥과 부모간섭을 담보로 한 시작이다.

오찬호 교수는 “단순히 가난한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혼자들은 어떻게든 사랑의 힘으로 가정을 꾸린다고 가정했을 때, 이 경제적인 이유가 결국 원인이 돼 자신의 자존감이 어떻게 상처받을지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혼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인간관계도 비혼을 결정하는 이들에게는 문제 요인으로 작용한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서는 결혼이 연애의 전제라고 생각하는 진하경(박민영)이 애인 이시우(송강)가 비혼주의자라는 사실에 당황하는 장면이 나온다. 도박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시우는 결혼이 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는 “결혼하는 순간 가족으로 얽매이는 게 부담스럽다. 내 짐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연애 과정은 당사자 둘만 눈이 맞으면 되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결혼은 두 사람만의 일은 아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배우자 부모, 형제 등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오죽하면 결혼은 집안끼리 하는 거라는 말이 있겠는가. 치약 짜는 방식 하나에도 갈등을 겪는 상황과 주위에서 들리는 흔해 빠진 고부갈등 스토리는 상상만으로도 벅찰 수 있다.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 결혼, 그 가깝고도 먼 이야기.

거기다가 성 불평등에 대한 걱정까지 겹쳐지면 결혼은 ‘그닥 좋지 않은’ 선택지가 된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했다. 오늘날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아버지가 곱게 키운 딸을 신랑에게 넘겨주는 것 또한 과거 문화의 산물이다. 그렇다 보니 여성들은 경제활동과 가사 노동 등 여러 분야에서 불평등을 겪었다.

물론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성 평등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공포의 흔적들은 여전히 산재돼 있다.

지난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2020년 조사에서 남편은 20.7%, 아내는 20.2%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한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가사를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비중은 남편 75.6%, 아내 76.8%로 여전히 높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젊은 부부일수록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아이라도 낳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직장 여성에게 계획되지 않은 임신은 오히려 불안감이 된다. 간신히 육아휴직을 해 애를 낳고 나서도 주위 사람들의 “아이는 엄마가 봐야지” 같은 말은 그들이 직장으로 갈 때 죄책감을 안겨준다. 이 뻔한 이야기는 페미니즘을 외치던 여성에게도, 부부가 평등하게 산다고 자부하던 남성에게도 적용된다.

오찬호 교수는 비혼주의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비혼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미혼자에서 비혼자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을 찾아보면 ‘대한민국에서 결혼한다는 것’에 어떤 공포가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풍속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결혼 문화도 점차 해체되고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방송인 사유리처럼 결혼은 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여성이 증가하고 있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의 ‘졸혼’ 문화는 노년층의 새로운 트렌드다. 이외에도 동성결혼, 폴리아모리 등의 형태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깨뜨린다.

어쩌면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동화 속 결말은 백설공주가 알지도 못하는 왕자와 결혼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인 인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아닐까?

[사진출처 = 픽사베이]
[사진출처 = 픽사베이]

 

■ 글쓴이는? - 고등학교 시절 40대 미혼 여선생님을 보고 싱글 생활을 꿈꿨었다. 그가 여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안팎으로 일하는 우리 엄마 상황과 대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에게 “결혼 안 하고 평생 엄마 옆에서 살 거야”라고 말하면 엄마는 답했다. 이혼을 하더라도 결혼은 한번 해보라고. 인생에서 한 번쯤은 경험할 만하다나 뭐라나. 아직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결혼은 할 생각이다. 아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 다만 여전히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결혼은 안 하는 게 좋다는 주의다.

■ 취재 후기 - “남자친구 있어?”, “결혼은 언제 할 거야?” 20대 후반부터 들었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질문이다. 비단 결혼뿐 아니라 취업, 연애, 육아 등에 있어서도 틀에 박힌 사람들은 너무 쉽게 타인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원하는 건 걱정이라며 건네는 고루한 조언이 아니다. 그들이 직접 삶의 방향키를 설정하고 책임지도록 가만히 두는 것이다. 사회는 그들이 설령 치이더라도 덜 다치도록 범퍼 역할만 제대로 해주면 된다.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주인공이 자유를 외치며 하는 말을 이 사회에도 던지고 싶다.

“저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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