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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열의 리셋] 냄비사랑과 뚝배기사랑의 오묘한 차이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2.02.07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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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이 영화를 기억하시는가?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영원한 로맨티스트’ 조병만 할아버지와 ‘만년소녀’ 강계열 할머니의 노년 사랑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4년 11월 개봉했는데 당시 98세와 89세 노년부부의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에 관객들은 웃다가 울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눈시울을 적셨다. 2011년 KBS 인간극장에서 방영되었던 '백발의 연인' 편에서도 백발의 부부는 이미 안방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당시 강원도 횡성의 한 마을에서 76년째 연인으로 살았던 노년의 사랑 이야기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따지고 2000년대 통신사의 광고 카피로 유명한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를 외치던 이들에게 감동과 함께 잔잔한 울림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다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스틸컷.
다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스틸컷.

 

그로부터 다시 8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여전히 이성 간의 사랑은 호르몬 농간에 자유롭지 못한 채 그 놈의 유효기간은 더 짧아진 듯하고 움직임은 더 재빠르게 이뤄진다.

시대 변화에 맞게 사랑 방정식도 바뀔 것이 분명한 가운데 요즘 우리 주변에서도 다큐 속 노년 부부 못잖은 은은한 사랑을 심심찮게 목도할 수 있어 흐뭇함을 더한다.

전국의 유명 관광지나 명소에 가면 어디서든 쉽게 만나는 이들이 있다. 60, 70대 노년커플이다. 1980, 90년대에만 해도 전세버스로 단체관광 다니던 어르신들이 많았다는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 무렵 출장 차 해외에 나가면 북미와 유럽의 선진국 노부부들이 지구촌 곳곳에 여행 다니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는데 이제 우리도 달라졌다는 얘기다.

여행지뿐만 아니다. 코로나19로 더 인기를 끌고 있다는 캠핑장 또는 자전거 도로, 공원에 나가보면 노후를 함께 즐기는 나이 지긋한 커플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자녀를 출가시키고 부부가 자신들만의 삶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을 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어머니아버지는 ‘원 플러스 원’이에요. 실과 바늘처럼 늘 함께 다니세요.”

한 여성은 부모가 24시간 늘 붙어 다닌다면서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얼마 전 영화 속 백발 부부 못잖게 금실 좋은 선배세대 몇 분에게 “지금 죽는다면 누가 가장 눈에 밟힐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현재 속마음이 궁금해서다.

한마디로 우문이었다. 이구동성으로 늙은 남편이요, 늙은 아내란다.

함께 한 세월이 고맙고 미안하단다. 훌쩍 늙어버린 그이를 보면 짠하단다. 젊은 시절 일과 역할, 그에 따른 관계 등을 위해 간혹 밀쳐두기도 했으나 세월이 지나보니 곁에 남는 것은 그 사람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반려자에게 덜 상처주고 더 사랑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신혼 초의 ‘뜨거운’ 사랑은 식어버렸으나 친구처럼 동지처럼 오누이처럼 ‘따스한’ 사랑을 하고 있는, 모범적인 부부들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가 1986년에 내놓은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서 열정은 나이 들어 다소 식었으나 친밀감이 상승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단단해진 ‘성숙한 사랑’은 아닐까?

물론 대다수 노년 부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여전히 상처 주며 죽지 못해 산다는 이들도 없지 않다. 황혼이혼이 점점 늘고 있거니와 졸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뉴스를 보면 그러하다. 어쩌면 사랑의 뜨거움을 고스란히 따스함으로 바꿔놓지 못한 까닭이리라.

냄비 같은 열정이 사라지면 뚝배기 같은 친밀감이 증대해야 한다고 한다. 친밀감이란 사랑하는 관계에서 서로 가깝게 연결돼 있는 동시에 하나로 결합돼 있다는 느낌을 말한다. 그것은 대화와 소통을 통한 정서적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로를 향한 굳은 믿음과 함께.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그리고 가슴 뛰게 했던 우리의 젊은 시절 열정과 사랑이 자신이 원하는 곳을 향해 지금 순항 중인지도 궁금하다.

 

* 사랑의 삼각형 이론은 사랑은 열정과 친밀감, 헌신이라는 세 요소로 구성돼 있으며, 세 요소의 구성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 골자다. 세 요소가 균형 있게 발달했을 때 성숙한 사랑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 글쓴이는? - 어릴 적 가족이 길을 나서면 아버지는 앞장서서 걷고 어머니와 자녀들은 그 뒤를 따라가던 기억이 난다. 흔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과거 거리두기를 하던 노부부는 나란히 걷고 심지어 손을 잡기도 한다. 젊은 세대의 경우 스킨십 등 애정표현도 과감하다. 부모 앞에서도 거리낌 없다. 처음의 당황스러움도 잠시, 점점 적응 중이다.

■ 후기 - ‘지금 죽는다면 누가 가장 눈에 밟힐까?라는 질문을 주변 지인들에게 던졌다. 미혼남녀의 경우 부모를 드는 이들이 많다. 기혼남녀의 경우 어린 자녀가 있다면 그들을 첫손에 꼽는다. 그리고 자녀를 독립시킨 노년 부부의 경우 배우자를 지목한다. 그 질문을 받고 순간 감정이입이 됐는지 울컥한 이들도 있었다. 같은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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