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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서방 '금융 핵무기'에 맞선 푸틴 '핵 으름장' 속내는

  • Editor. 강성도 기자
  • 입력 2022.02.2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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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서방 세계가 러시아의 재정파탄을 불러올 수 있는 ’핵폭탄급‘ 금융 제재를 추가하자 러시아는 ’핵 위협‘ 카드로 응수하면서 대립 수위가 ’강 대 강‘으로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 남, 북부 루트로 전방위 침공을 전격 단행했을 때만 해도 국제사회에서는 이번 '유럽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우크라이나가 결사항전으로 버티고 있고, 러시아 내에서도 반전 여론이 일고 있다.

러시아 은행들의 해외자산 동결과 수출통제 등으로 침공 사태에 대응한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전쟁 초기 경제제재에 대해 글로벌 금융시장들에선 예상보다 제재 강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평가했지만 전쟁이 첫 주말을 넘기면서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연합뉴스와 AP, AFP,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유럽연합과 G7(주요 7개국) 등 서방 31개국이 뭉쳐 27일 성명을 통해 ’금융 핵무기‘로 불리는 스위프트(SWIFT) 제재로 러시아를 글로벌 금융에서 고립시키는 초고강도 조치를 추가하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크렘린궁 웹사이트 영상 캡처/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크렘린궁 웹사이트 영상 캡처/연합뉴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원하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유럽의 대응은 전쟁 초반만 해도 군사적인 직접 지원보다는 제한된 수준의 경제제재에 집중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그간 미온적이었던 독일까지 강성으로 돌아서 이날 군용헬맷 대신 유도지대공미사일 등 무기를 지원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EU)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사상 처음으로 EU는 공격을 받고 있는 국가에 무기와 다른 장비 구매, 수송에 자금을 댈 것"이라고 밝히면서 금기를 깬 전쟁무기 지원을 공식화했다.

침공 1주도 안돼 이같은 전방위 압박에 맞서 러시아는 핵 위협 카드를 꺼내들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7일 "핵 억지력 부대의 특별 전투임무 개시를 국방부 장관과 총참모장(서구의 합참의장 격)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운용하는 러시아 전략로켓군 등 핵무기를 관장하는 부대에 핵무기 발사 준비태세를 강화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림으로써 ’핵 보복전‘을 시사했다.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침공 전인 지난 19일 쿠라 훈련장에서 ICBM ’야르‘ 등 대규모 전략 핵무기 훈련을 참관한 바 있다.

그렇다면 푸틴 대통령이 이같이 핵 위협 카드로 대응한 속내는 무엇일까.

일단 공포심 조성으로 판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속셈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핵 위협이 즉흥적인 깜짝 발상이 아니라 침공 전 훈련 참관으로 보여줬듯이 이미 최악의 사태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점을 명분으로 깔고 있다.

그는 침공 직전 한 연설에서 "우리를 방해하거나 나아가 우리나라나 국민에 위협을 가하려는 자는 러시아의 대응이 즉각적일 것“이라며 ”그 결과는 당신들이 역사에서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것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옛 소련의 비밀경찰·첩보조직인 KGB(국가보안위원회) 고위간부 출신답게 정치전략적인 면에서 심리전을 병행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금세기에만 세 번째로 침공한 우크라이나가 유럽전쟁을 넘어 세계대전을 촉발하는 ’화약고‘가 될 수 있음을 핵 공포와 연계시킨 것이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해체 뒤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다가 경제지원과 핵폐기를 맞바꾼 그 우크라이나에 역설적으로 핵 보복을 감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그다. 러시아가 개전 초기에 1986년 대폭발로 20세기 최악의 원점참사로 기록된 체르노빌 원전을 점령한 것도 핵 불안을 볼모 삼으려는 푸틴의 의중이 깔린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방 세계가 러시아에 스위프트 제재를 결정했다. [그래픽=연합뉴스]
서방 세계가 러시아에 스위프트 제재를 결정했다. [그래픽=연합뉴스]

핵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우크라이나 군과 국민이 예상보다 거세게 저항하는 가운데 일단 양국 대표단이 28일 벨라루스에서 회담 테이블에 앉기로 한만큼 원하는 대가를 얻어내는데 핵 압박 효과가 유효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미국도 이같은 푸틴의 속내를 간파하는 분위기다. 침공 전부터 군병력의 철수와 재배치 등으로 나타난 푸틴의 강온 전술을 기만전술로 규정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미국은 이번에도 ’푸틴의 패턴‘에 주목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ABC방송에 출연해 푸틴의 ’위험한 지시‘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는 긴장 고조와 위협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번 분쟁 내내 푸틴에게서 봐왔던 하나의 패턴에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개전 초반에 독일 등의 신중론으로 뒤늦게 러시아 은행들을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시키는 ’금융 핵 옵션‘ 제재를 추가한 것 말고도 에너지 분야 제재까지 선택지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지구촌 원유의 12%, 천연가스의 17%를 생산하고 있는 만큼 에너지 제재를 가한다면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타격은 극한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로선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침공해 강제병합한 뒤 처음 EU에서 언급되면서 압박을 느낀 스위프트 제재는 이미 예상됐기에 외환보유고의 달러화 비중을 16%대까지 낮춰 대비해왔다. 대미 공조 파트너인 중국과 무역액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을 크림반도 병합 당시 3%대에서 현재 17% 이상으로 높이는 것으로 안전판을 만들었지만 한계가 따른다.

200여개국 1만1000곳이 넘는 금융기관이 사용하는 핵심전산망인 스위프트에서 배제되는 조치는 아직 러시아 전체 은행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지만 러시아 경제의 근간인 에너지 수출에는 큰 피해를 유발하게 된다. 핵 개발 문제로 스위프트 망에서 퇴출된 이란의 경우 제재 직후인 2013년 원유 수출액이 40%나 급감했던 사례가 있다.

27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규탄하는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7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규탄하는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브루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이 "금융의 핵무기"라고 부를 만큼 스위프트 제재가 본격 시행되면 러시아는 중국 이외에는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출 대금을 못 받아 글로벌 교역에서 사실상 설 자리를 잃게 돼 자국 내에서 ’금융 핵폭발‘로 재정 파탄을 맞을 수 있다.

신냉전 시대에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전면 침공을 감행한 뒤 경제제재에 대한 내성으로 자신감을 내보이는 푸틴이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쫓길 수 있고, 반전 시위가 반푸틴 세력화로 결집되는 불안요소까지 커지면 종신집권의 권력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렇기에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전쟁에서는 패하는 권력자로 남지 않기 위해 일단은 '핵 으름장'으로 버티고 있는 푸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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