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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 나는 댓글을 단다, 고로 존재한다(上)

  • Editor. 정태겸 객원기자
  • 입력 2022.05.31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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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물밑에서 그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의미와 맥락을 짚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풍속도요, 미래 변화상의 단초일 수 있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동향 분석이기도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세상, 그 흐름을 놓치지 마세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정태겸 객원 기자] ■ 댓글, 비난과 비판 사이에서

“통화를 하면서 내게 예의를 갖춰 얘기하고 친절하기까지 한 그들을 접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보라. 한때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잔인하다고 생각했던 사람, 끔찍한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실은 자상하고 친절하며 좋은 아빠이자 친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정치평론가 샐리 콘의 ‘왜 반대편을 증오하는가’라는 책에 나온 구절이다. 메일과 댓글을 통해 자신에게 가장 악랄한 비판을 한 사람과 직접 통화해보니, 그들도 ‘좋은 사람’이라는 내용이다. 샐리 콘은 이 같은 무차별 비난의 원인을 ‘증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증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2018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세대를 불문하고 분노지수가 높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 화를 인터넷에서 ‘악플’의 형태로 해소하는 것은 아닐까. 악플은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곤 한다.

시민들이 인터넷에 익숙해질수록 포털 뉴스 댓글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 성장했다. 뉴스에 직접 참여하고, 건전한 비판 등 실시간 상호작용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건 긍정적인 점이다. 반면 부정적인 점도 있었다. ‘악플’ 문제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2020년 2월 19일 네이버의 연예 뉴스 댓글이, 같은 해 8월 27일 스포츠 뉴스 댓글이 잠정 폐지됐다. 9월 10일자로는 스포츠 영상에 대한 댓글도 중지됐다. 또 댓글 닉네임과 활동 이력을 공개하는 업데이트도 진행됐다. 2021년 5월 13일에는 댓글 등록 시 프로필 사진도 같이 노출되도록 변경됐다.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들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악플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2020년 여자 배구선수 고 고유민씨는 지나친 악성댓글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아 극단적 선택을 했고, 포털은 재발 방지 차원에서 스포츠 면에서 댓글을 차단하게 됐다. 연예 뉴스 댓글이 사라진 것도 스포츠 부문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 사건은 2012년 5600건에서 2016년 1만 4900건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네이버에 따르면 뉴스 댓글 중 악플로 신고 되는 건수가 하루 평균 2만3700여개나 된다.

그렇다면 악플은 감소했을까?

답은 ‘아니오’다. 악플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SNS 계정을 이용한다거나, 우회하여 다이렉트 메시지(DM)나 게시글 형태로 댓글을 올리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익명의 계정을 이용해서 공개적으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저격하기도 한다. 악플의 형태가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변한 것이다.

포털의 댓글 규제는 언뜻 보기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선 듯하나 오히려 세계적인 추세에는 반하는 모양새다. 세계 인권단체나 유엔 인권위에서는 대한민국의 명예훼손죄와 묘욕죄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무차별한 비난과 정당한 비판을 구별할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개인의 감정을 민사 소송도 아니고 형사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고 ▲개개인간의 감정적인 논쟁의 옳고 그름을 국가가 판단할 수 없으며 일관되고 대다수가 동의할 기준이 없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기분이 상하지 않는 비판은 없고 ▲ 모욕죄와 명예훼손은 권력자를 위한 법률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증명하기 위해선 많은 증거를 수집하고 그것을 법적으로 정당화해야 하는데, 일반인들에겐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표현의 자유를 엄격하게 보장하는 해외에선 이런 유명인이 악플러를 형사고발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본인이 모습을 스스로 결정하고 드러냈으니까. 악플을 받고 싶지 않다면 애초에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된다는 논리다.

이처럼 포털사들이 악플을 방지하기 위해 수많은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가운데, 댓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댓글, 저널리즘의 영역으로 올라오다

“중요한 이슈는 수십 건의 기사가 올라온다. 내용은 다 비슷비슷 하다. 하지만 댓글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기사는 하나만 읽고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의 댓글만 읽기도 한다. 댓글은 생각도 못한 촌철살인의 평론을 해주기도 하고 기사 또는 기자 그리고 매체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기도 하는 등 사고가 확장된다”(40대 직장인 한신우 씨)

“댓글 보는 재미에 기사를 클릭하는 것 같다. 기사는 재미가 없다. 그런데 댓글만 읽어도 기사 본문의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따분하지도 않고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어떤 댓글은 기사보다 더 전문적인 것 같다”(20대 대학생 김기명 씨)

“댓글도 읽고 대댓글도 읽어 약간 애매하다 싶은 댓글은 그 사람이 쓴 다른 댓글도 확인한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 그리고 생각보다 신박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 정말 많다. 댓글을 읽다보면 편향될 수 있는 생각의 중심을 잡아주는 건 확실히 있는 것 같다”(30대 직장인 천고은 씨)

댓글은 어느덧 ‘댓글저널리즘’이라고 불리며 또 다른 저널리즘의 영역까지 올라왔다. 댓글이 저널리즘의 영역까지 올라온 이유는 엄청난 영향력 때문이다. 실제 인터뷰에 응해준 시민들은 대부분 기사를 읽으면 댓글도 함께 읽는다고 말했다. 댓글을 읽는 이유도 ▲타인의 의견에 대한 궁금증 ▲사고의 확장 ▲촌철살인의 재미 등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이 독자들의 기사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댓글이 기사를 읽는 것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연구는 세계적인 언론학 학술지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 소개됐다.

논문 내용은 독자의 뉴스 기사에 대한 인식이 댓글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특히 기사의 이슈에 관심이 많을수록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댓글을 접했을 경우 미디어가 왜곡돼 있다는 인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논문을 통해 이은주 교수는 온라인 미디어 시대의 뉴스 공정성에 대한 독자의 인식은 기사 자체뿐 아니라 댓글에도 영향을 받고, 댓글이 매체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침을 보여줬다.

시민들이 기사에 대한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내고 있다. [이미지=네이트 뉴스 캡처]
시민들이 기사에 대한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내고 있다. [이미지=네이트 뉴스 캡처]
시사기사의 댓글 숫자가 압도적이다. [이미지=네이트 캡처]
시사기사의 댓글 숫자가 압도적이다. [이미지=네이트 캡처]

이처럼 시민들이 기사를 보는 눈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낚시성 제목을 단 기자들에게는 ‘기레기’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고, 좋은 기사에는 공감과 응원을 보낸다. 이런 댓글은 네티즌들이 집단지성과 여론 및 공론화를 표방하는 또 하나의 저널리즘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또한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리는 정치기사의 경우 같은 기사에도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정파와 이념에 따라 같은 이슈도 다른 시각의 기사를 쓰는 언론사들처럼, 댓글에 달린 시민들의 생각도 첨예한 대결과 대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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