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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균형외교, 화려하진 않으나 실리를 취하다 (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8.1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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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균형외교에 대해 생각해보자.

앞서 감정적 외교의 위험성을 언급했지만, 이는 반중 정서에 매몰되지 말자는 의미지, 중국 의존도를 지나치게 의식해 굴욕 외교를 해야 한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반중 정서에만 근거한 외교가 매우 위험하듯,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친중 외교 역시 지양해야 한다. 또 균형외교를 통해 여러 국가 사이에서 줄타기하더라도 중대 사안과 관련해서는 분명하고 일관된 태도를 견지할 필요도 있다.

균형외교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군사·안보적 측면까지 고려하면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사진출처=픽사베이]
균형외교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군사·안보적 측면까지 고려하면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제9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을 역임했던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은 지난 2월 기고한 칼럼 ‘한중수교 30년, 새 전략이 필요하다’에서 중국이 우리나라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요한 시장이라는 점과 중국 수입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지위가 일본과 1, 2위를 다툴 정도로 커졌음을 강조하면서도, 한중수교 30년을 맞은 올해 중국에 대한 전략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현 이사장은 중국과 미국의 패권·체제 경쟁이 앞으로 더 격화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그동안 우리나라가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의식해 중국 체제나 제도 문제를 애써 외면해 왔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른 현시점에서는 그 위상에 걸맞게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 정부가 시장경제 원리와 배치되는 중국 정부의 자국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결국 우리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수출 물량 증가가 거의 한계 상태에 이른 현 상황에서는 대중국 무역은 앞으로 양적 확대보다는 질적 개선으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사드를 핑계한 중국 정부의 한한령 등 과거 사례가 있지만, (중국이 했던 것처럼) 그 나라 국민을 우리가 똑같이 매도하는 일은 없어야 올바른 관계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균형외교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군사·안보적 측면까지 고려하면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최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미중 간 긴장과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 연구원은 지난 5일 ‘낸시 펠로시 대만 방문 이후 미중 갈등 확대와 우리의 대응 방향’에서 “한국은 다자무대 및 한중, 한미 양자 대화에서 대만 문제에 관한 일관된 원칙과 입장을 수립하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면서도 “다수국가가 양자적으로 합의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대만의 적절한 국제활동을 보장하고 지지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취할 것을 강조했다.

또 “한미 정상회담에서 밝힌 바와 같이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이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도 직결된다는 점을 원칙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이와 같은 표현은 중국을 적시하지 않았고,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특정 국가의 편을 들지 않는 객관적 표현이며, 역내 안정과 평화를 희망하는 보편적 입장과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재는 미중 대립이 격화되는 추세이고, 대만에서 독립지향의 민주진보당이 집권한 상태로는 대만 문제의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나 만일 차기 대만의 총통선거에서 국민당 후보가 집권할 경우, 양안 관계는 급속도로 개선될 여지가 있는바, 양안 사이 또는 미중 사이에서 어느 일방에 대한 과도한 지지나 편승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듯하다. 일찍이 윤석열 정부는 선거 기간 드러낸 확고한 친미적 행보에도 불구, 120대 국정과제 중 96번째 과제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공동이익에 기반한 동아시아 외교 전개’의 하위과제로서 한중 정상 간 교환 방문과 고위급 간 교류 및 소통의 강화 등을 통해 상호존중과 협력에 기반한 한중관계를 구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5월 열린 한미정상회담. 당시 양국 정상은 남중국해와 여타 바다에서의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를 재확인하고,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피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여줬다. [사진=외교부 제공]
지난 5월 열린 한미정상회담. 당시 양국 정상은 남중국해와 여타 바다에서의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를 재확인하고,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피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여줬다. [사진=외교부 제공]

또 앞서 박병광 연구원이 언급했듯,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 후 최단기간에 이뤄진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남중국해와 여타 바다에서의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를 재확인하고,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피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여줬다.

당시 성명 내용은 남중국해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 아래 대만의 흡수통일을 꾀하는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함으로써 외교적 갈등이 격화되지 않게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는 평이다.

지난 3일 방한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에 대한 영접에서도 윤 대통령은 휴가를 이유로 직접 면담 대신 전화통화만 했는데, 중국 관영매체는 이를 “한국의 국익을 고려한 적절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방한 이전에 대만을 방문함으로써 대만해협에서의 긴장을 고조시킨 펠로시 하원의장을 환대할 경우 자칫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음을 윤 대통령이 충분히 인식했다고 해석한 발언이다. 다만 이미 반중 정서가 심해진 국내에서는 윤 대통령의 처사가 ‘외교 결례’, ‘외교 참사’라는 식의 비판적 논조가 주를 이뤘다.

당시의 자세한 속사정까지야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새 정부가 갈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난해 보인다. 더욱이 최근에는 보수 언론에서조차 하락하는 지지율을 두고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가운데, 앞으로 윤석열 정부가 가야 할 길은 절대 순탄치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다만 어떤 정치세력, 단체가 됐든, 일부러 대중에 한쪽으로 치우친 감정을 조장하고, 그러한 감정에 근거해 정치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국익을 위한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 단체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그러한 극단적 주장 속에서 찾으며 지지자들을 모집하고 있지만, 겉보기엔 화려할지 모를 극단적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간과하고 있다. 특히나 상대국과 언어적·문화적 교집합을 찾기가 여간 쉽지 않은 국제 관계에서 한 번 관계가 틀어질 경우 발생할 다양한 측면에서의 손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제 막 걸음을 뗀 정부로서는 쏟아지는 비판에 자칫 위축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바로 잡고 정치 논리보다는 국익을 위해 행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국민 역시 스스로 지도자를 선택했다면, 좀 더 믿고 응원부터 해 줄 일이다. 그런 지지를 당연하게 여기고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 정부라면 당연히 매질을 가해야겠으나,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이 복잡다단한 국제 정세를 탈 없이 헤쳐나가도록 격려해주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경제산업팀장

 

글쓴이는?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청년세대의 1인으로, 본문에 언급된 또래들의 반중 정서를 비슷하게 갖고 있다. 그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랬기에 굴욕적이다 싶을 정도의 친중 외교를 고수해왔던 지난 정권을 결코 좋게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도 근거 없는 이분법적 사고는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취재 후기 - 미국과 중국, 일본의 주요 정치세력조차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서로 협력하고 갈등하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 국제 외교의 현실이다. 각국의 대립이 심화할수록 그중 어느 한 편에 서도록 강요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더구나 지정학적으로 매우 민감한 곳에 위치한 국가이자, 주변국 모두가 강대국인 우리나라로서는 균형외교를 유지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심지어 균형외교의 결실은 어느 하나에 치우친 선택지를 골랐을 때만큼 극단적이지 않아 잘했더라도 잘했다고 칭찬받기 어렵다.

그러나 균형외교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참으로 필요한 외교다. 친중이냐 반중이냐, 친미냐 반미냐, 친일이냐 반일이냐, 오로지 두 선택지만을 강요하는 것은 그로부터 이득을 취할 누군가가 짜놓은 프레임에 매몰되는 것이다. 우선은 이런 일차원적이고 유아적인 프레임에서 국민 스스로 벗어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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