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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열의 리셋] 부모와 배우자가 물에 빠지면…? 그 질문이 불편한 이유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3.04.24 0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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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엄마와 아내가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까?’

지난달 한 지상파 예능프로그램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형제 편. 예능에 자주 출연해 얼굴이 낯익은 전문의는 “우리 채널이 악플이 없는데 엄청나게 달린 적 있다. 정신과 고전 퀴즈로 교수님들이 처음 하는 질문이 있다. ‘어머니와 배우자가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 거냐?’는 질문이다. 여기엔 의도도 있고, 정답도 있다”면서 “이 질문은 ‘어머니와 배우자 중 내 선택으로 만들어진 관계가 누구냐’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관계는 배우자다. 결국 내가 선택한 사람을 구하는 게 정신과적으로 건강한 답”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한 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19일 한 매체 기명 칼럼에서 같은 질문에 대해 “모범답안은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먼저 구해서 둘이 힘을 합쳐 어머니나 자식을 구하는 것이다. 즉, 부부는 어느 상황에서도 팀이 돼 가정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적었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 스틸 컷. 영화 속 주인공이 어느 날 자신이 날씬하고 예쁘다는 착각에 빠지고 매사 자신만만해지면서 일과 사랑 등에서 만사형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신감 자존감 천국인 서구문화의 한 전형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 스틸 컷. 영화 속 주인공이 어느 날 자신이 날씬하고 예쁘다는 착각에 빠지고 매사 자신만만해지면서 일과 사랑 등에서 만사형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신감 자존감 천국인 서구문화의 한 전형을 엿볼 수 있다.

 

#02. “너는 똑똑하니?”

동서양 문화 차이를 체감할 수 있는 화제의 영상. 몇 년 전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샘 리처드 교수는 동양(한국)과 서양(미국) 여학생 한 명씩 강단으로 불러 질문을 던진다. 서양 학생은 수학과 영어를 잘한다며 자신만만하게 늘어놓는다. 한국 학생은 “잘 모르겠다”고 운을 뗀 뒤 교수가 질문을 바꿔 다시 묻자 “그랬으면 좋겠는데, 글쎄요”라고 말끝을 흐린다. 한데 반전이 일어난다. 같은 2학년생인데 한국 학생은 4.0 만점에 3.6점으로 2년 빨리 조기 졸업한다. 이를 지켜보던 학생들은 매우 놀라며 환호와 함께 진심 어린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이날 강의서 강조한 핵심은 이렇다. 자기 능력에 대해 서양인은 과대평가하는 데 비해 동양인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 전자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데 비해 후자는 못 하는 것에 전념한다. 서양인은 강한 자신감이 좋은 평가를 불러오고, 높은 자존감이 성공적인 삶을 이끈다고 여긴다. 이에 비해 동양인은 겸손한 자세가 주변의 호평을 받는 데 유리하며, 부족함을 채우고자 하는 자기 계발 열망이 성공하는데 이롭다고 생각한다.

#03.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라!’ ‘자기 PR 시대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라!’

젊은 시절,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외부의 주문이다. 정말 그래야 성공한다고 굳게 믿고 열심히 따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선 ‘너무 튀거나 나대지 마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덕목을 철칙처럼 여기라는 가르침을 밥상머리 교육으로 받고 자랐다.

머리와 몸은 따로따로다. 상호 모순됨직한 가치 언저리를 이리저리 오가다가 안전지대로 수렴한다. 외면보다는 내면의 자신감, 자기 자랑 같지 않은 자기 PR, 대충 뭐 이런 식이다.

#04. 개인의 ‘개별성’과 ‘독립성’이 강한 고대 그리스 문화를 승계한 미국 영국 등 서양 문화와 ‘사회성’과 ‘상호의존성’을 중시해 온 고대 중국 전통을 이어받은 한중일 동아시아 문화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서양은 논리를 중시하고 ‘Either 혹은 Or’ 등 양자택일의 명쾌한 논리를 선호하는 데 비해 동아시아는 경험을 중시하며 ‘Both 혹은 And’ 등 통합과 중용을 지향한다.

이것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이 ‘생각의 지도’에서 날카롭게 분석한 내용이다. 그는 서양의 ‘홀로 사는 삶’과 동아시아의 ‘더불어 사는 삶’의 차이를 여러 실험을 통해 소개하며 ‘부분 vs 전체’ 등 세상을 지각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어 그는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심리학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지금까지 서양인들만을 대상으로 수행된 많은 연구에 근거한 ‘문화 보편성 결론’이 틀린 것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설파한다.

#05. 어쩌면 그들이 ‘건강한 답’ 또는 ‘모범 답안’이라고 틀 지우는 것을 자못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생각의 지도’가 천차만별 각양각색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 비율이 강한 사람일수록 서구식 개인주의 사고에 기초한 명쾌한 답에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황희 정승처럼 모두가 맞는 슬기로운 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 질문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우리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의 창창한 앞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자식의 입장은 또 다르다. 보은(報恩)과 배은(背恩), 더 근원적인 인간성의 문제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자식에게 희생한 부모에 대한 감사함이 깊은 만큼 힘닿는 데까지 봉양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고 어느 정도 나이 들어 그 책임과 의무감이 옅어지면 그동안 고생한 배우자에게 자연스레 향하는 이들을 어렵잖게 목도한다. 가슴 밑바닥에는 절절한 고마움과 미안함과 함께.

서양과 동아시아 가치관이 혼재된 ‘생각의 지도’에서 당신의 좌표는 어디쯤인가?

발행인


■ 글쓴이는? - 내 자녀라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보통 부모의 마음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또 원가족의 굴레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그렇게 강조해야만 그나마 적정선에서 중심과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해야 하는 당사자라면? 솔직히 그런 난감한 상황 자체에 직면한다는 것이 싫다. 필자 또한 어쩔 수 없는 공자와 유교 사상에 젖어있는 동아시아의 일원임이 분명한 듯하다.

■ 후기 - 글로벌 시대 서구 문물이 우리 일상처럼 스며드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부르짖는다. 자아실현 등의 가치 또한 가슴 설레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들과 소통하고픈 필자 또한 그 흐름에 몸을 던진다. 한데 웬걸. 주변의 20대 젊은 친구는 완전히 다르다. “요즘 친구 맞아?”라고 할 만큼 기성세대보다 더 조직과 관계에 동화적이고 순응적이다. ‘생각의 지도’가 세대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사고를 여지없이 뭉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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