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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열의 리셋] '오운완'과 '갓생'? 대한민국 성취 욕구의 두 얼굴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3.04.03 0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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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ecause people are working fucking hard to improve themselves.”(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지독하게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리더이자 메인 래퍼 RM(김남준)이 지난달 12일(현지 시각) 한 스페인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한 말이다. “K팝 안에는 젊음과 완벽성, 과도한 훈련에 대한 숭배가 있다. 그것이 한국문화의 특징인가?”는 질문을 받자 대한민국의 아픈 현대사를 이야기하면서 그런데도 눈부시게 발전한 원동력에 대해 이렇게 짚는다.

방탄소년단(BTS) 사진. BTS 멤버 RM의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은 여러 면에서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진 = 빅히트 제공]
방탄소년단(BTS) 사진. BTS 멤버 RM의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은 여러 면에서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진 = 빅히트 제공]

“항상 절실했어요. 20대 땐 많이 혼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왜 나는 타고나지 못했을까, 왜 이렇게 가진 게 없지?’ 근데 그런 자격지심이 오히려 저한테 그냥 ‘더 노력해야 돼, 더 집요해야 돼. 더 연구하고 더 고민해야 돼’…. 잘 모르겠고 좌절하는 순간이 찾아와도 항상 생각했던 건 그래도 ‘연기가 하고 싶다’였던 것 같아요.”

‘더 글로리’에서 악역(박연진)을 멋지게 소화한 배우 임지연이 최근 JTBC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임지연 못잖게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2. 더 나아지고 싶은 욕구, 더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일부의 얘기일까. 천만의 말씀, ‘갓생’을 보면 알 수 있다. ‘갓생’은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다. ‘갓(God)’과 ‘생(生)’의 합성어로 부지런하게 지속적인 성취를 이루는 삶을 뜻한다. 주로 운동과 공부하면서 갓생을 외친다.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과 미라클모닝(일찍 일어나 자기 계발 하는 것) 등에서 빛을 발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지독하게 일한다’는 BTS RM의 말은 과장이 아닌 셈이다.

성장과 성취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 경쟁이 치열한 한국인의 보통 삶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식민지 시대와 6·25 전쟁의 고통을 겪은 조부모, 근면 자조를 앞세운 새마을운동 정신으로 무장한 부모 세대의 피를 물려받은 까닭일까. 2030 젊은 세대 역시 ‘갓생’이라니 다소 서글프기도 하다. 좁은 땅덩어리에 가진 건 없고 인구 밀도는 높아 ‘열심’ 아니면 생존할 수 없는 척박한 토양과 환경을 떠올리면 더 착잡하다.

#3. 이 때문일까. 한국은 단기간 내에 세계가 인정하는 고도성장을 이뤘다.

1974년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베네수엘라(25위), 인도네시아(26위), 나이지리아(29위)보다 낮은 한국(30위)은 10위로 비약했다. 1970년대와 비교해 GDP는 85배가량 늘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얼마 전 발표한 ‘한국 경제와 우리 기업의 50년 변화와 미래 준비’보고서 내용이다.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1974년 0.53%(세계 39위)에서 2021년 2.89%(7위)로 뛰어올랐다.

어디 그뿐이랴? 스포츠는 물론이요, BTS와 블랙핑크를 비롯한 K팝, 그리고 K드라마와 영화, K뷰티와 패션, 게임과 푸드 등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전 방위적으로 위풍당당하다. ‘문화강국’을 외치던 백범 김구 선생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류 연구학자로 꼽히는 샘 리처드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 교수는 과거 국내 강연에서 ▲공동체 중심 사회 ▲효율적인 교육시스템 ▲공익을 위한 규칙 준수 ▲세계적인 소프트 파워 등의 강점을 거론하며 한국을 환경 기후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나라로 치켜세웠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비롯해 코로나19의 적절한 대응 시스템 등도 전 세계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밖에 시민 의식과 치안 등등 외국인이 부러워하는 것은 한둘이 아니다.

#4. 그늘도 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지난달 20일 발간한 ‘세계행복보고서’(WHR) 자료에 따르면 한국 행복 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하위권이다. 한국인이 스스로 매긴 주관적 행복도 점수 평균은 10점 만점에 5.951점이다. OECD 정회원국 38개국 중 그리스 콜롬비아 튀르키예 3곳만이 한국보다 낮다.

또 한국인은 반달가슴곰, 수달, 장수하늘소처럼 ‘멸종 위기종’이라고 한다.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최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서울의 경우) 두 명이 0.5명을 낳는 거니까 이렇게 되면 멸종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저출산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지난해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9명으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난 2월 한겨레의 ‘인구절벽’ 유독 심한 동아시아 국가들, 왜 그럴까’라는 기사에서 국제적인 인구학자들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의 저출산 위기 이유로 ▲사회적 성취를 중시하는 입신양명 문화 ▲삶의 만족도보다 근면성실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지적했다. 성에 관한 도덕적 엄숙주의, 학력주의, 한쪽 성에 집중되는 육아 부담 등과 함께였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무한 경쟁’ ‘성취 만능’ 대한민국의 슬픈 단면을 꼬집는다.

#5. 자본주의 성장 중심의 시선으로 본다면 한국은 대단한 나라임이 분명하다. 빈번한 외세 침략에도 5천 년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우리 민족은 아픈 역사는 있으나 크게 부끄러운 역사는 없다. 하지만 겉으론 세계 모범국가이지만 속으론 여기저기 아픈 구석이 많은 대한민국이다. 시종일관 악전고투하면서 상처투성이로 조로(早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렇다면 ‘닥치고 성취’라며 몰아세우는 것 대신 다소나마 치료하고 안정을 취하며 치유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또다시 50년 뒤, ‘갓생’ 열망을 살리면서도 그 폐단은 줄일 수 있는 건강한 사회 체제와 제도를 하나씩 갖춰 가면 좋겠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아프거나 죽지 않고 불행하지 않은, 어느 나라도 상상 못 한 미답의 땅을 찾길 빌어본다.

발행인


■ 글쓴이는? - “독기가 없다고 하는데요?!” MZ세대 직원이 선배한테서 들었다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다소 이해가 갔다. 그 친구는 관심 분야가 넓고 취미 생활도 곧잘 즐긴다. 그런 태도를 보면 일종의 한눈팔기로 영혼까지 갈아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에겐 2% 부족하게 보일 수 있다. 내심 놀란 것은 독기로 일하던 기성세대가 아니라 MZ세대 사이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모든 걸 포기하고 온몸을 불살라 일하기는 유일한 성공방정식인 것처럼.

■ 후기 - ‘갓생’ DNA는 기본 사양이다. 주변에는 다 잘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적잖다. 삶에 대한 열의, 성취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 젊을수록, 가진 게 없다고 여길수록 강렬하다. “열심히 해도 남들 다 그러니 쉽지 않다”는 고백은 엄살이 아니다. ‘노력’을 강조하는 기성세대를 비판하면서 열심밖에 답이 없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점점 가속 페달을 밟는 열심과 노력의 무한 반복의 덫, 탈나기 전 욕망의 조절 또는 내려놓기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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