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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열의 리셋] "당신 생각은?" "…", '과묵'의 불편한 진실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3.01.06 0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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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왜 화가 났냐고요? 계속 말하는데 듣질 않으니까요.”

팀 회의를 참관하다가 ‘날 선’ 언어로 말하는 직원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열심히 의견을 내놓는데도 반영은 안 되고, 그런 불통 상황에 감정이 격앙된 듯합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과 회의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열심히 들어줘야 한다는 것. 무거운 입을 가진 이들이 다수여서 속마음 드러낼 때까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흰소리를 늘어놓아도 집중해야 하는 것은 대화의 마중물로 작용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면서 과거 여러 장면이 겹쳐 떠오릅니다.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02. ‘아예 입을 닫거나 화가 나 소리치거나.’

어린 시절, 평소 말 없고 점잖던 어른들이 술 한 잔 들어가면 수다쟁이로 변해 같은 말만 무한 반복하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던 선배들이 갑자기 욱하면, 맹수처럼 돌변하는 광경을 보는 것도 일상사였습니다.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 속마음을 ‘맨홀’ 뚜껑으로 막아놓았다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펑’ 하고 폭발합니다. 중간은 없고 극과 극 감정풀이 소통만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다음날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일합니다. 그런 촌극은 여기저기서 반복됩니다.

조직문화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젊은 세대 또한 정상적인 감정 소통이나 의사 표현에 서툴고 어려움을 겪고 있어 내심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03. “아무 말 없이 일하는 것이 진국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며 살았습니다. 침묵을 강요당했고 과묵은 신중함과 듬직함, 어른스러움의 상징으로 우대받았습니다. 또 “어린 것이 뭘 안다고”, “건방지게”. 중뿔나게 나섰다간 이런 불호령을 듣곤 했습니다. 어른들의 완고한 행태에 다양한 감정과 의견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을 삼가며 꾹꾹 가둬놓았습니다.

그 이유야 복합적이겠으나 의사 표현이 ‘침묵과 분노’, 두세 가지 모드로만 설정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평소 가만히 있다가 술김에 또는 감정 폭주 시에만 입이 비로소 열립니다. 중간 지대 언어는 편한 이들끼리의 자랑질과 농담, 뒷담화가 주를 이룹니다.

#04. 일상에서 정상적인 대화와 소통 모습을 못 보면서 자란 우리는 듣기(경청) 교육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는 그저 어른들의 일장 훈시를 ‘열심히 듣는 척하면서 딴생각하기’와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리기’ 내공만을 쌓아갔습니다.

나이가 든 뒤에는 달라졌을까요. 듣기 능력은 그대로인 채, “굳이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독심술의 대가인 양 상대 말문을 막습니다. 말하기 능력은 일취월장한 듯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듣기 싫었던 그 어른들의 가르침과 훈계 언어를 그럴싸하게 모방하며 답습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쌍방향 대화는 없고 한 방향의 지도 편달만 넘쳐납니다.

#05. “순간 목소리가 커지고 말을 급하게 하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모임에만 가면 그랬습니다. 말할 때 다들 딴청을 피웁니다, 말을 중간에 끊기도 하고요. 그렇다 보니 목청은 높아지고 말은 빨라졌습니다. 늘 말하고 나면 맥이 빠집니다. 결국 손절했습니다.”

경청하지 않는 좌중 탓에 차분히 말하기도 어렵다는 한 친구의 고백은 씁쓸합니다.

애써 말하려고도 하지 않고, 애써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침묵과 불청(不聽) 사회, 우리의 서글픈 현주소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면 아래에선 익명의 쑥덕공론, 수면 위에선 성난 언어만 난무합니다. 귀는 작아지고 입만 어마어마하게 커진, 기괴한 괴물들만 활보하는 형국입니다. 무슨 시너지가 날까요. 결국 우리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자기표현에 적극적이지 않은 그들의 심정을 알고 싶습니까? 진심으로 묻고, 진실로 듣지 않으면 평생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 생각을 읽고 싶습니까. 낮은 자세로 더 경청해야 합니다. 개인과 조직은 물론 사회와 국가도, 아프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진정 귀 기울이고 있는지 더 늦기 전에 되돌아봐야 합니다.

검은 토끼해인 새해, 토끼처럼 귀를 쫑긋하고 들읍시다. 우리가 모두 평정심으로 자신의 느낌과 감정, 주장과 관점을 차근차근 풀어놓는 그날이 올 때까지!

발행인

 


 

■ 글쓴이는? - 표현에 어려움을 느끼는 그들 중 하나다.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고자 주변에 “말할 때 인상 쓰면 지적해 달라”고 하지만 그 버릇, 쉬 고쳐지지 않는다. 말할 때 당신의 표정은? 심기 불편할 때만 입을 열어 심각한 표정 그 자체인가. 지인들은 주로 어떤 얼굴로 말하는지 떠올려보라.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음계는 일곱 개다. 중간 음계는 전혀 사용하지 못한 채 낮은 도와 높은 도의 ‘감정’ 음계만 사용하고 있다면, 답은 당신이 갖고 있다.

■ 후기 -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그 오만가지 파동을 섬세하게 읽어내지 못하는 ‘감정 난독증(難讀症)’에 빠진 것은 아닐까. 하여 내 감정의 실체를 몰라 자신을 표현하는 ‘말하기’ 기능도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을 모른다면 남을 알 턱도 없으므로 타인 감정을 읽어내는, ‘보고 듣기’ 기능까지 고장 난 것은 아닐까. 결국 ‘역지사지’하는 것이 난제여서 그것을 인생 화두로 삼고 평생 시행착오 겪으며 살아야 하는 운명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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