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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열의 리셋] 한국 젊은이의 낮은 자존감은 부모 탓이다?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3.06.14 0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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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부모들이 양육하면서 자녀에게 ‘넌 존재만으로 괜찮은 아이야’라는 말을 안 해 줘 젊은 세대들이 자존감이 낮다고 하는데 이게 말이 돼! 그 논리대로라면 그런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자란 기성세대들은 자존감이 아예 ‘제로’겠네. 일부 인사들이 전문가랍시고 엉뚱한 소리를 해대고, 젊은이들이 곧이곧대로 듣고 있어 정말 문제라니까.”

최근 모임에서 한 친구는 이렇게 토해냈다.

사실 대한민국은 ‘자존감 만능 시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오래전부터 열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자존감이 높아야 일과 인간관계에서 성공하고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일종의 교리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자존감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실행 팁을 공유하며 SNS에서 과시하느라 바지런을 떠는 이들도 목격된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던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아내 이주연(진경)은 고가 명품백을 건네며 남편을 설득해달라고 회유당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돈으로 사람 휘두르는 거 식상하지 않아요?”라며 일침을 가한다. [사진 = 영화 베테랑 스틸 컷]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던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아내 이주연(진경)은 고가 명품백을 건네며 남편을 설득해달라고 회유당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돈으로 사람 휘두르는 거 식상하지 않아요?”라며 일침을 가한다. [사진 = 영화 베테랑 스틸 컷]

#2. 자존감이란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해 긍정 평가하는 것을 뜻한다. 자존감 높을수록 능력에 대해 자신감이 생기고 온갖 도전을 시도하며 극복할 가능성이 커지는 데 비해 자존감 낮을수록 능력과 시도에 대해 회의적이고 스트레스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한다. 자녀 자존감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받고 소중히 여겨진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면 “너는 존재 자체만으로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말과 함께 소통과 공감해주는 것은 자존감 형성과 발달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족 외에도 학교와 친구 등 사회와 인간관계처럼 여러 요인이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녀 자존감에 대한 문제점을 부모 문제로만 국한하는 것은 단순한 접근이며 본질을 왜곡할 수도 있다. 자존감은 개인의 성격, 경험, 문화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그 발달 과정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인, 특히 젊은이들의 자존감 낮은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세계에서 첫손에 꼽힐 만큼 치열한 비교 경쟁 및 줄 세우기 사회, 그로 인한 엄청난 학업 스트레스, 취업난 등을 떠올리면 숨이 막힌다. 나이와 지위에 따라 서열이 갈리는 수직 사회도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3. “나는 자식들에게 ‘똑똑하다, 예쁘다. 존재 자체만으로 빛난다’며 열심히 칭찬해 줬는데, 집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화되면서 아빠를 ‘거짓말쟁이’로 알던데.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남과 자연스레 비교하고 자기 객관화하면서 아빠 말을 한쪽 귀로 흘리던걸. 하하하”

또 다른 친구의 경험담이다.

실로 우리네 현실이 그렇다. 왜 우리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희생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살지 않았을까. 한국 사회의 문화적 맥락 때문은 아닐까. 동질의 집단에서 모여 살던 우리는 개성보다는 조화를 중시해 왔다. 서구 학문에 익숙한 일부를 제외한 보통 부모들은 자녀들이 관계를 중심으로 한 조직에서 잘 적응하도록 ‘특별한 존재’로서보다는 ‘더불어 사는 법’ 체득을 위해 겸손과 겸양의 미덕을 강조해 왔다. 행여 타인을 무시하며 우쭐대는 독불장군이 될세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정 수위를 맞추려고 애썼다. 한데 이번에는 서구식 ‘자존감’ 전성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런 부모를 몰아세운다.

#4. 서양식 자존감과 한국의 자존감은 엄연히 다르다. 개인주의 문화에서 자존감은 개인의 독립성과 성취에 대해 방점을 찍는다. 이에 비해 집단주의 문화에서 자존감은 공동체 의식과 타인에 대한 책임과 배려에 대한 강조가 더 크다. 미국에서 자존감 높은 이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자신의 필요를 우선시하며 자신감 있게 자기 홍보나 자랑에 능한 특징을 지닌다. 반면 한국 문화에서 자존감이 높은 이는 가족과 공동체의 필요를 우선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겸손함을 보이는 등의 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만과 아집, 오만과 독선, 허세 등은 과하거나 뒤틀린 자존감의 또 다른 얼굴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간 팔불출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동서양 차이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은 리처드 니스벳은 ‘생각의 지도’에서 “동양인들에게는 자신이 ‘특별하다’ ‘남들보다 탁월하다’고 믿게 하는 문화적 압력이 없다.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사회에서 개인의 과제는 ‘남들보다 뛰어나다’ 혹은 ‘더 독특하다’라는 평가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화목을 유지하고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기비판이 필수적이다.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다른 구성원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집단의 과제 달성을 방해하는 개인의 단점이나 특성은 반드시 고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5. 문화적으로 상이한 자존감은 표현 방식도 엄연히 다르다. 드러냄과 드러내지 않음의 차이라고 할까. 한데 이 같은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서양식 자존감만을 강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적절한지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한국 문화에 서구식 자존감을 강요하는 것은 자신의 문화적 가치와 모순되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종용하는 것으로 도리어 위화감, 소외감을 초래할 수 있다. 문화적 적응력이 없을 수 있는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자존감을 높이기가 어려운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서양의 경우 자존감은 개인의 성취와 자질 등 내적 영역인 데 비해 한국은 외부와 사회로 향한다. 외부 검증과 사회적 비교를 통해 엄정하게 평가한다.

내가 잘났다고 잘 난 것이 아니라 타인, 아니 사회적 인정을 받아야 한다. 공인된 대학과 직장, 직업과 지위 그리고 큰 차와 좋은 집에 집착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렇다 보니 남과의 비교 또는 개인 부침에 따라 수시로 심한 변동성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여기에다 개인 성취보다 집단을 위한 공헌도 중요 잣대다. 그렇게 완수했더라도 드러내선 안 된다.

한국의 자존감은 그래서 더 어렵고 힘들다.

발행인


■ 글쓴이는? - 천방지축 말썽꾸러기의 온갖 떼와 억지를 묵묵히 받아주고, 장래 희망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고, 자식이 사고 쳐 학교로 불려 와 큰 애를 먹었음에도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시지 않았으며…. 그땐 몰랐으나 무언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음을, 부모가 돼보니 그것이 쉽지 않음을, 그리고 삶의 든든한 원천이 됐음을….

■ 후기 - “이만하면 잘 살았지!” 노인으로 접어든 선배 중 몇몇은 자기 삶에 대해 긍정 평가하곤 한다. 운 좋게도 무탈했다는 안도의 한숨? 한편으론 힘 떨어져 욕망을 내려놓으면서 ‘비교 경쟁 감옥’에서 탈출해 평온해진 모습이다. 한국에서 자존감 지키며 사는 법은 태어나면서 자동 입력된 ‘타인 및 외부 지향’의 소프트웨어를 걷어찰 결심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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