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여지훈의 이야기力] 수십 년째 들은 기후위기,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4.13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후위기라는 말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회자했지만, 그 말이 갖는 무게는 과거와 현재가 확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데이터가 그 차이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현재 지구 평균 기온은 문자 그대로 ‘유례없는’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유엔 산하 기구 중 하나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정기적으로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기후 변화를 평가하고 보고서를 제출해왔다. 지난해 8월 IPCC의 제1 실무그룹이 발표한 제6차 평가 보고서 ‘기후변화 2021 : 과학적 근거(AR6 Climate Change 2021 : The Physical Science Basis)’를 들여다보자.

IPCC의 '기후변화 2021 : 과학적 근거(AR6 Climate Change 2021 : The Physical Science Basis)' 보고서 [사진=IPCC 보고서에서 캡쳐]
IPCC의 '기후변화 2021 : 과학적 근거(AR6 Climate Change 2021 : The Physical Science Basis)' 보고서 [사진=IPCC 보고서에서 캡쳐]

보고서는 전 세계 60개국 이상에서 234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해 1만4000개 이상의 과학논문을 종합해 작성했다. 1차 초안만 750명의 전문 검토자로부터 2만3462건의 검토 의견을 받았고, 2차 초안은 1279명의 전문가로부터 5만1387건의 검토 의견을 받았다.

IPCC 보고서를 위해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이 화상회의 등을 통해 협업했다. [사진=IPCC 제공]
IPCC 보고서를 위해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이 화상회의 등을 통해 협업했다. [사진=IPCC 제공]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 기온은 1.09℃ 상승했으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난 2백만년 중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표면 온도가 급등하면서 지난 수백 년간의 평균 온도보다 최근 10년(2011~2020년) 동안의 평균 온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빙하 소실로 인한 해수면 상승도 가속화되고 있었다. 보고서는 2011~2020년 동안의 연평균 북극 해빙 면적이 1850년 이래 최저 수준에 도달했고, 1950년대 이후 전 세계 빙하 대부분이 동시다발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은 지난 2000년간 유례가 없다고 전하고 있다. 1900년 이후 100여년 간의 지구 평균 해수면 상승 속도 역시 과거 3000년을 100년 단위로 봤을 때 최고 수준이었다.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현재의 온난화가 인간 활동으로 인한 탄소 배출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로 인한 기후변화가 전 세계에서 극심한 기상이변을 유발하고 있었다. 1950년대 이후 육지 대부분에서 폭염과 같은 극한 고온의 빈도가 잦아졌고, 해양 폭염의 빈도도 1980년대 이후 2배 증가했다. 반면 한파 등 극한 저온의 빈도와 강도는 축소됐다.

1950년대 이후 호우의 빈도와 강도도 높아졌으며, 강한 열대성저기압(3~5등급)의 발생 비율 또한 과거 40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폭염과 가뭄, 산불과 홍수의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는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급증했다. 과학자들은 세계 각국이 즉시 획기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향후 20년 이내에 세계가 1.5℃ 이상의 온난화를 겪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속에서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의 약속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독일의 비영리 단체 기후분석(Climate Analytics)과 새기후연구소(NewClimate Institute)가 집계한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에 따르면, 현행 각국이 채택한 기후 정책은 금세기 말까지 2.7°C의 온난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IPCC 보고서에서는 1.5℃ 상승 시나리오에서조차 극심한 폭염‧가뭄‧폭우‧홍수 등 기상관측 사상 전례없는 기상이변이 급증할 것이며, 2℃ 상승 시에는 그 강도가 적어도 2배, 3℃ 상승 시에는 4배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많은 국가, 도시, 기업, 단체 등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으며, 세계적인 투자자들은 친환경을 표방하는 펀드에 점점 더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기간 동안 총 130조달러(15경8000조원)를 관리하는 전 세계 45개국의 450여개 은행, 보험사, 연기금, 투자기업은 2050년까지 순 배출량 제로(0)에 도달하기 위해 자금을 사용하기로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탄소중립을 위한 글래스고 금융연합(GFANZ)'으로 불리는 이들 연합체는 지난해 4월에 출범했으며, 탄소 중립을 위한 △업종별 경로 △실물경제에서의 이행계획 △금융기관 이행계획 등을 수립하고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으로의 민간자본 동원 지원 △공공정책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춰 활동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13일 현재 사회책임투자채권 중 녹색채권과 지속가능채권으로 분류되는 채권의 상장잔액은 각각 17.3조원, 18.5조원에 달한다. 녹색채권은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프로젝트나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할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며, 지속가능채권은 환경친화적이고 사회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에 투자할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기후대응 수준이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제환경협력단체 기후투명성이 발표한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NDC 등 기후 정책 수준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기후대응 수준은 '매우 불충분' 평가를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발전 부문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전체 발전량의 7.2%에 불과했다. 이는 G20 평균 비중인 28.7%에 한참이나 미달한 수준이다.

또 G20 회원국 중 1위인 일본, 2위인 중국 다음으로 공적 금융을 통해 화석연료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국가로 지목되기도 했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도 13.8tCO₂eq(이산화탄소환산톤)를 기록하며 G20 평균인 7.5tCO₂eq의 2배 가까이 됐다.

중위도 지역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경우, 기후 변화로 인한 물리적 피해에 크게 노출되지 않아 대다수 시민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크게 체감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 가시화되는 재난 상황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지구 온난화가 실제 시민들이 체감하는 기후위기의 대부분인 탓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8월 평균 한낮 기온이 30℃를 웃도는 고온 지역이 급증하고, 무더위가 도래하는 시점도 점차 앞당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MODIS 위성이 수집한 지도 형태 데이터를 확보해 지난 2002년부터 2019년까지 18년치 한국 지표면 온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무더위가 도래하는 면적이 지난 9년 사이 2배 이상 커진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의 8월 평균 한낮 기온이 30℃를 웃도는 고온 지역이 급증하고 무더위가 도래하는 시점도 점차 앞당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한국에너지공단 블로그에서 캡처]
한반도의 8월 평균 한낮 기온이 30℃를 웃도는 고온 지역이 급증하고 무더위가 도래하는 시점도 점차 앞당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한국에너지공단 블로그에서 캡처]

그린피스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2~2010년 동안 8월 한낮 평균 기온이 30℃ 이상이었던 지역은 국토의 12%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1~2019년에는 8월 평균 기온이 30℃를 넘어가는 지역이 국토의 27%에 달했다. 특히 서울 일부 지역 등 국토의 약 6%에서 1.5℃ 이상 큰 폭의 온도 상승이 관찰됐다.

또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기상청 데이터를 추가 분석한 결과, 30℃ 이상의 무더운 날이 처음으로 도래하는 날짜도 3국 모두에서 크게 앞당겨졌음이 확인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주 12.7일, 부산 11.5일, 서울 10.6일, 수원이 9.3일 앞당겨졌으며, 이 같은 현상은 3국 57개 도시 중 48개 도시에서 관찰됐다. 일본 훗카이도의 삿포로는 23.1일, 중국 경제상업중심지 창사는 21.9일이 빨라져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30℃ 이상 고온 지역이 전 국토의 4%에 불과했던 2014년 우리나라 온열질환자 수는 1만8004명이었다. 반면, 30℃ 이상 지역이 46%에 달한 2018년에는 그 수가 4만4094명으로 약 2.5배 급증했다.

IPCC 보고서의 주요 근거로 사용되는 결합 모델 상호비교 프로젝트 6단계(CMIP6) 데이터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이 현 추세를 유지할 경우 2040년에는 태백산맥 등 일부를 제외한 우리나라 지역 대부분의 8월 지표면 온도가 30℃를 웃돌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나라도 결코 기후위기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쯤에서 양치기 소년의 우화를 떠올려 보자.

양 치는 소년의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거짓말이 거듭되자, 처음에는 그 말에 속아 무기를 들고나온 동네 사람들은 점차 소년의 말에 시큰둥하게 반응하게 된다. 결국 어느 날 정말 늑대가 나타났을 때 양치기 소년이 또 한 번 이를 알리지만, 소년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고 만다. 사람들은 더는 양치기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고 아무도 도우러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끝내 양치기 소년의 모든 양이 늑대에게 잡아먹힌다는 내용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상황이 이 같지 않을까. 수십 년간 이어진 기후위기 경고에 이제는 많은 이가 무덤덤하게 반응한다. 오히려 “그래서 어쩌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긴 해?”란 반응이 나오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만큼 ‘전 지구적 위기’란 것은 일개 개인이 가늠하거나 대응하기에는 지나치게 커다란 문제다.

그러나 우화와 현실의 차이는 극명하다. 양치기 소년과 달리, 그동안 기후위기를 경고한 이들은 결코 심심풀이로 떠들어댄 것이 아니며, 다가오는 기후위기란 늑대에게 잡아먹히게 될 것은 양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 바로 우리 자신이란 점이다. 따라서 대응은커녕 무심한 방관 속에서 늑대를 맞이한다면, 비참한 운명의 희생자는 결국 우리 자신이 될 것이다.

경제산업팀장

 

글쓴이는 –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평범한 소시민. 그럼에도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이를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 시민으로서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는 기자 스스로도 모르겠다. 다만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국제기구를 비롯해 국가와 기업, 시민단체의 행보에 계속 주목하고자 노력하겠다. 기사를 읽는 분들도 단순히 정보를 알았다는 선에서 그치지 말고, 늘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취재 후기 - 오랜 시간 국내외 관련 정보들을 찾았고, 차근히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러나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음에도 지나치게 방대한 양의 데이터로 인해 혹여 틀린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틀린 부분을 발견했다면 가감 없이 지적해 주시라. 그러나 정보의 오류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부디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맥락에 더 집중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