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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고립 해결을 위한 씨앗은 ‘이해’ (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5.24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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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마주치는 좀 더 자세한 실정을 듣고자 직장인과 학생, 군인 등을 상대로 오랫동안 상담을 진행해온 전길자 심리상담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길자 상담사는 “코로나19가 퍼진 이후 상담하러 오는 청년들이 부쩍 늘었다”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가족들과 부딪치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 온 많은 이들이 본인을 드러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면 눈에 띄게 좋아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대인관계, 가족관계, 취업문제 등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결국은 어릴 적 가정 문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원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많은 부모가 이를 모르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내담자의 부모에게도 자녀에게 간섭이나 무시하는 투의 말을 절대 하지 말라고 늘 당부한다”면서 “부모는 자기 기대에 맞지 않아서 그냥 뱉는 소리지만, 충고나 평가가 대부분인 그런 잔소리는 자녀의 현재 모습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듣는 이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담자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내담자뿐 아니라 그 가족도 함께 배워야 한다”면서 “실제로 가족이 그런 노력을 기울일 때 내담자의 변화도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 이는 부모가 비꼬거나,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을 때 비로소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내담자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내담자뿐 아니라 그 가족도 함께 배워야 한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고립을 해결하는 씨앗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서로에 대한 '이해'에 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전 상담사에 따르면 바로 이 시점에서 ‘이해’가 시작된다. 상담하러 오는 청년들은 실제로는 외모나 능력에 크게 부족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본인을 ‘쓸모없는 사람’, ‘시도해도 금세 실패하는 사람’, ‘어차피 무시 받는 사람’ 등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의 많은 부분이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래서 상담사는 부정적 이미지를 스스로 생성하는 그들에게 묻는다.

“그게 정말 당신의 모습이에요?”

“상대가 당신을 무시하는 게 정말 사실이에요?”

질문을 받은 청년들은 스스로 만들어온 이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이내 꼭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간 자신이 지레짐작해온 것이 사실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과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그 과정에서 설령 자신의 여러 단점과 부족함을 깨닫더라도, 그조차 자신의 일부임을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모자란 부분, 본인이 싫어하는 부분조차 ‘나’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참된 이해가 시작되고, 변화의 싹이 움트는 것이다.

“사실 상황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요. 단지 생각이 바뀐 것뿐이에요. 그런데 그 작은 사고의 전환이 자신을, 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요. 조금씩 내담자의 행동이 바뀌기 시작하고, 그건 다시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행동을 바꿔요. 그렇게 현실이 바뀌는 거죠.”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 선순환. 그러나 단기적이고 극적인 반전이 아닌, 여러 주체의 인내심 있고 꾸준한 노력이 있을 때 이뤄질 수 있는 변화에 대해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 상담사는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담자 본인의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변화에 대한 동기가 있어야만 오랜 시간 노력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 관점이 달라졌다고 해서 가족도 바뀌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요. 오히려 내가 이전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수용했듯, 다른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익혀야 해요.”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을 수용하려는 이런 노력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므로 그 지난한 과정을 이어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본인의 동기가 중요하다. 그러나 변화는 변화를 불러오고, 선순환은 선순환을 불러온다. 어려웠던 과정은 차츰 익숙해지고, 처음에는 무덤덤히 대했던 다른 이들도 점차 다른 시선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상담조차 하러 오지 못하는 이들이다. 앞서 언급한 3개월 이상의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들 말이다. 그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는 말에, 전길자 상담사는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아무 생각 없이 30분 정도 걷기, 한 끼 식사를 직접 차려보기 등 뭐든 좋아요”라면서 “사람이 몸을 움직이면 뇌가 활성화되고, 그러면 부정적인 사고에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것을 방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라고 말했다.

끝으로 “우리 사회가 모든 일을 잘하는 ‘만능 플레이어’를 원하는 풍조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사실상 누구도 그럴 수 없거든요. 각자 부족한 부분은 그것대로 인정하고, 저마다 잘하는 부분을 더욱 칭찬하고 장려하는 분위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을 맺었다.

사회적 문제는 어느 한 주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에 ‘사회적 문제’라고 불린다. 청년고립 역시 마찬가지다. 고립을 겪는 청년 본인에게만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가족이나 지인, 환경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합당치 않다. ‘나’와 ‘너’,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따라서 그 해결 역시 이들 주체가 힘을 합해 어떻게 노력하는지에 달렸다.

일본에서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히키코모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고립 문제는 더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고, 우리 사회가 당장 직면한 문제이며, 지금부터 차근히 해결해가야 할 문제다.

경제산업팀장

 

글쓴이는 – 청년고립은 사실 기자도 오랫동안 겪은 문제다. 고립 상황에서 느껴진 절망감에 사무쳐 지금껏 수백 번, 어쩌면 천 번이 넘도록 죽음을 생각했던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으나, 본문에서 언급된 대로 어릴 적 가정의 불화가 큰 영향을 줬던 것 같다. 그러다 도저히 견디지 못해 죽음을 결심했고, 배낭 하나만을 든 채 사막으로 떠났다. 이왕이면 원 없이 광활한 하늘을 마주하고 그 아래 적막한 대지 위에서 죽고 싶단 생각에서였다. 홀로 한 달 가까이 사막을 걸었고 문득 그 길의 중간에서, 그토록 죽고 싶다는 생각의 저변에는 실은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삶을 향한 갈애의 외침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취재후기 – 사람이 심적으로 연약한 상태에 처했을 때 “너는 그것도 못하냐”고 면박을 주는 것은 참으로 잔인한 행동이다. 부모나 친구로서 섣불리 내뱉는 그 한마디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수처럼 꽂혀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낼 수도 있다. 누구도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으며, 또 모든 걸 잘할 필요도 없다. 현재 고립 상태에 처한 많은 분이 부디 의연함을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오랜 시간 방 안에 머물렀다면 잠깐이라도 나와 걷는 것도 좋으며, 심정을 털어놓을 이가 필요하다면 전문 상담사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스스로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으며, 기자 역시 행복해지기 위해 오늘도 여전히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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