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돌이] 젊은 직장인이여, 그대는 진정 살아 있는가?(下)

  • Editor. 정태겸 객원기자
  • 입력 2022.03.28 10:38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정태겸 객원기자] # Scene : 자아

세계적인 글로벌 IT기업 G사를 다니던 직장인 A씨는 퇴사를 결심했다. 직장 내 불화가 있다거나, 업무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니었다.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스타트업을 유심히 지켜본 A씨는 연봉을 절반 수준으로 삭감하면서까지 마침내 이직을 결심했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모두 A씨를 뜯어 말렸다. 심지어 A씨 어머니는 이직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자 ‘번듯한 직장 내버려 두고 왜 퇴사하느냐’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엄마, 지금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 길을 가려고 하는데 그렇게 슬프게 우는 이유가 뭐야? 내가 보기에 엄마가 슬픈 건 아들의 미래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 G사’에 다니는 주변에 자랑할만한 아들이 사라져서 슬픈 거 아냐? 그렇다면 그건 내 걱정이 아니라 엄마 자신을 위한 눈물이 아닐까?”

A씨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눈물을 이내 그쳤다. 그리고 3일 후, A씨는 어머니로부터 “너의 이직을 축하한다”는 진심어린 메시지를 받았다.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 ‘나’라는 자아의 상실, ‘그대’는 살아있는가?

지난해 방영된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알쓸범잡)에 출연한 오은영 박사는 자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상실감’을 꼽았다. 사람이 재산, 사람, 건강, 명예 등을 상실했을 때, 이 상실감은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울증은 자살 제1원인으로 손꼽힌다.

솔직하게 대답해보자. 당신은 내가 선택한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자식’, ‘돈 잘 버는 남편’과 같이 주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혹은 책임감 때문에 ‘나’를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정녕 우울하지 않은가?

OECD가 발표한 2020년 우울증 유병률에서도 한국은 1위(36.8%)를 차지했다. 반면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10년간 우울증 의사진단 경험률은 약 4%에 불과했다. 즉, 우울해도 병원에 가 치료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특히 20·30대가 성별 불문하고 병원에 방문하지 않는 경향이 컸다. 30대 남성의 경우 우울증 진단율은 1.4%에 불과했다.

문제는 우울증 수치는 젊을수록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우울증 수치는 20대(9%), 30대(7.4%), 40대(6.1%), 50대(4.4%), 60대(3.9%), 70대(2.9%) 순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우울감을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박종석 원장은 ‘우울증을 빠져나오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유튜브 영상에서 ‘혼자 있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울증이 걸린 상태에서 혼자 있게 되면 우울증 원인에 대해 되새김질하게 되고, 이것이 자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모면하기 위해서 가급적 타인을 만나는 것을 추천한다. 만날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TV라도 켜놓으라고 조언한다. 또 타인과 비교를 하지 않기 위해 SNS 등을 아예 차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주변사람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오은영 박사는 “마음을 굳게 먹어봐”, “용기를 내봐”, “취미를 가져봐”, “힘내” 등 통상적인 위로의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이 방법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경청, 즉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이다. 여기에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방이 공격적으로 느끼지 않도록 좋은 질문을 해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미지 = 연합뉴스]
[이미지 = 연합뉴스]

◇ 기능이냐 존재냐

독일 철학자 에리히프롬은 자신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물질)가 존재의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소유가 존재의 목적이 되어 버리고 이것이 사회의 병폐를 발생시킨다”고 이야기한다. 자유롭기 위해 돈을 벌면서, 돈을 벌기 위해 자유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지 50년 가까이 지났지만, 지금 우리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히 타인을 ‘어떻게 기능하는가’로 비교 평가하곤 한다.

사회에서 훌륭히 기능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수치심을 느끼도록 가치관을 주입받는다. 문제는 ‘수치심’은 ‘비교’에서 시작되고, 비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은 언제나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월급, 더 높은 명예를 갈구하게 된다.

이렇게 끊임없이 비교우위에 오르려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언제 행복할 수 있을까?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 그렇다면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은 행복할 자격조차 없는 걸까?

결국 이런 시스템 안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은 이 우월감을 지키기 위해,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이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더 잘 ‘기능’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된다. 한 사람을 기능으로만 판단한다면, 그건 사람을 물건으로 보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의 인격을 지닌 인간으로 보는 것일까. 칼이 얼마나 잘 드는지, 신발이 얼마나 가볍고 튼튼한지 물건을 기능으로 판단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만든 공산품은 기능에 목적을 두고 만들어졌으니까. 하지만 이게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일까.

얼마를 버는지, 얼마나 잘생기고 예쁜지,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것을 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취급받으며 무시당하는 게 과연 옳은 사회의 모습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사진출처 = 픽사베이]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2007년까지만 하더라도 그저 전화나 문자만 할 수 있는 기계였던 휴대폰은 이제는 하나의 컴퓨터가 되었고, 3년 전만 해도 아직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자율주행은 상용화를 넘어 대중화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는 3년 후를 상상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과학정보통신의 발전은 가속도가 붙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뇌가, 유전자가 변하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었다. 인간은 여전히 사회적 동물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삶을 나누고 싶어 한다. 만약 우리에게 무한한 통장잔고가 있다면, 당신은 외딴섬에서 혼자 명품을 진열해 놓고 호의호식하며 평생을 살고 싶을까?

과학 발전의 방향성은 인간 기능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삶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우리가 정말 교육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공감해주고, 다른 사람을 그 자체로 사랑해주는 마음가짐과 기술이 아닐까.

우리 행복에 정말 필요한 건 기능함으로 느끼는 우월감이 아니다. 정녕 나 자신을 존재 자체로 존중해주는, 비교하고 판단하지 않으며 나를 지지해주는 사랑이다.

 

■ 글쓴이는 –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의미의 라틴어)을 인생신조로 삼고 있는, 롤러코스터 인생을 탄 30대 직장인이다. 10대 후반부터 급격한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이 조성됐고, 더 밑바닥으로 내가 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연속된 실패를 맛봤다. 당시 “자살한다면 모든 게 끝날까”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차마 용기가 부족해 실행하진 못했다. 다행히 지금은 ‘나는 나인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로 회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 취재후기 – 죽음을 하나의 축으로 두고 삶을 돌이켜보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명료해진다. 그리고 그 중요한 것에 돈이나 명예 같은, 사회적으로 ‘가치있다’고 하는 것들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 너무 많은 것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것이 내가 진정 원한 것이든, 원하지 않은 것이든, 잃는 것이 두려워 버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지키며 살아가려 한다. 너무 많은 것을 구겨 넣어놓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키려 한다. 결국 지킬 것이 너무 많으면 지키다가 지치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과거 친한 친구에게 ‘왜 자살하지 않느냐’는 진지하지만 악의 없는 질문을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내 정신건강은 많이 회복한 상태였고, 그때 ‘아직 행복해서’라고 답했다. 그 답을 할 때 ‘이제는 과거처럼 아프지 않을 거야’라는 자기최면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나를 힘들게 하는 하나의 강박이었음을 이내 깨달았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