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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 직장 내 괴롭힘, 퇴사하면 되지 왜 극단의 선택을?!(上)

  • Editor. 정태겸 객원기자
  • 입력 2022.03.28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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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물밑에서 그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의미와 맥락을 짚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풍속도요, 미래 변화상의 단초일 수 있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동향 분석이기도 합니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세상, 그 흐름을 놓치지 마세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정태겸 객원기자] # Scene : 우울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엄마도,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럼 내 삶에 이런 불편함도 그들과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하지만 곧바로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느꼈다. 내가 괴물이 된 것만 같았고, 이런 나를 자책하고 혐오할 수밖에 없어 우울해졌다. 지금 상황에서 자살만큼 간단한 해결책도 없어 보였다.”

◇ 극단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원인은?

누군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사회, 그래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벗어나고 싶은 사회. 니체는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이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자살한 이들은 도저히 빠져나갈 곳이 보이지 않는 지옥을 탈출하고자 최후의 선택을 한 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살은 그 사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기도 하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사진출처 = 픽사베이]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평균 2배를 넘어선다. 2020년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수는 총 1만3195명으로 하루 평균 36.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은 암, 심장 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에 이어 전체 사망의 4.3% 비중을 차지하며 한국인의 사망 원인 중 5위를 차지했다.

OECD 국가 간 연령 표준화 자살률(국가 간 연령구조 차이를 제거한 표준화 사망률 개념)을 보면 한국은 23.5명으로 OECD 38개국 평균인 10.9명의 2배가 넘는다. 비교 대상 국가 중 자살률이 20명대인 국가는 한국을 제외하면 리투아니아(21.6명)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일까? 자살 원인을 심리부검을 통해 일부분 살펴볼 수 있다. 심리부검이란 자살 유족의 진술과 기록 검토를 통해 자살 사망자의 심리 행동 양상 및 변화 상태를 확인하고, 자살의 구체적인 원인을 검증하는 조사방법이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2018년 자살 사망자 103명에 대한 심리부검 면담을 진행했다. 이 면담에서는 생애 스트레스 사건의 전반을 탐색, 사망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찾아낸다.

스트레스 사건은 △정신건강문제 △직업스트레스 △경제적문제 △가족 관련스트레스 △부부관계스트레스 △연애스트레스 △가족 외 대인관계 △학업스트레스 △신체건강스트레스가 포함되고, 각 스트레스 사건은 중복 집계가 가능하다.

면담 결과에 따르면 한 사람당 평균 3.9개의 스트레스 사건이 죽음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정신건강문제가 87명으로 가장 많았고, 직업관련 스트레스(70명), 경제적 문제와 가족관련 스트레스(각 56명) 순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직업 관련 스트레스는 피고용인과 실업상태였던 사람들에게 주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망 당시 피고용인이었던 51명중 41명, 실업상태였던 16명중 13명, 자영업자였던 15명 중 8명에게 직업 관련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음을 나타냈다.

직업 관련 스트레스 사건이 있었던 70명을 대상으로 세부 유형을 분석한 결과 ‘직장 내 대인관계 문제’를 겪은 사람이 24명, ‘퇴직 및 해고를 포함한 실업 상태’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은 사람이 18명, ‘이직 또는 업무량 변화’가 있었던 사람이 17명으로 조사됐다. 즉, 일터에서 흔히 일어나는 문제들이 자살에 이를 정도로 위험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살이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2018년 쓴 저널 ‘자살 유족 지원 방안 연구’ 따르면 자살 유족의 우울장애 발병 위험은 일반인의 약 18배,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경험은 일반인의 6배 이상 높다. 또 중앙심리부검센터에 따르면 한 사람의 자살이 발생했을 때 심각한 영향을 받는 사람이 최소 5~10명이다.

이처럼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파생시킬 확률이 가장 높은 원인 중 하나다.

◇ 개인 선택에 의한 자살인가, 사회적 타살인가

“끝내 ~를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노동자들의 자살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나오는 단골 표현이다. 이는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사람이,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인 자살에 대한 이런 인식은 스트레스는 ‘이겨내야 하는 것’으로, 자살은 ‘개인 선택’이라는 왜곡된 시선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과연 자살을 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지금 그만둔다고 더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을까.”

“얼마나 힘들게 구직했는데 이 과정을 또 겪기는 싫어.”

“부모님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선배나 동료는 더 열심히 사는 걸.”

“월세에 공과금, 휴대폰 요금에 식비…학자금 상환도 남았고….”

“지금만 넘기면 어떻게든 될 거야.”

“여기보다 힘든 곳도 많아.”

“일 못한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어.”

“도중에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거야.”

주변에 “정말 힘들면 직장을 그만두면 되지?” 이렇게 묻자 위와 같은 답변이 줄줄이 나왔다.

젊은 직장인들이 현실의 고통스러움에도 회사를 쉽사리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다.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갑자기 관두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 누군가의 기대를 잔뜩 짊어진 상황이라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더욱 더 어려워진다. 직장은 내가 가진 정체성과 존재 이유의 상당부분을 구성한다.

사회 제도적으로 안전장치가 미비하다면, 예방은 불가능한 것일까?

상급자로 인해 끊임없이 부하직원이 퇴사하는걸 보고 조처를 취하는 인사팀이 있었다면, 직장이 아무리 중요해도 당신 삶이 더 중요하니 그만둬도 괜찮다고 이야기 해주는 주변인이 있었다면, 무책임한 기업에게 강력한 철퇴 한방을 날려 준 판사 한 명이 있었다면, 직장에 사표를 던지더라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는 제도가 있었다면, 그랬으면 어땠을까?

[이미지 = 연합뉴스]
[이미지 = 연합뉴스]

◇ 약자에게 더 가혹한 사회

‘왕따’부터 시작해 과도한 업무지시, 폭언 및 폭설까지, 직장인들이 사내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그리고 이 같은 괴롭힘을 막기 위해 2019년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갑질금지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나 비교적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는 법 시행의 효과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28.5%가 폭행·폭언과 모욕·명예훼손, 따돌림·차별, 업무 외 강요, 부당지시 등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했다.

체감 정도는 노동 환경 격차에 따라 달랐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이들 중 수준이 ‘심각하다’고 한 응답은 33.0%였는데, 월급 150만원 미만(48.3%)이나 비정규직(36.8%)이 월급 500만원 이상(31.3%)이나 정규직(30.7%)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법 시행 후 괴롭힘이 ‘줄어들었다’는 응답은 월급 150만원 미만(46.0%), 여성(50.1%), 5인 미만(51.6%)은 절반 수준에 그쳐 500만원 이상(71.4%), 남성(63.2%), 공공기관(68.7%) 등과 큰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네이버와 현대차, KT, 신협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에서도 구조적 타살을 당한 직장인들이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하다. 진정으로 책임을 인정하기보다는 회피하는데 급급해한다. 대다수 기업의 경우 처음에는 ‘개인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반응을 보이다가, 조사가 시작되고 원인이 조직에 있었음이 밝혀지고 나서야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한다.

산업재해 신청 건수를 보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이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집계되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 2010~2017년 기간에 통계청이 집계한 취업자 자살자 수는 3만6676명이지만 산업재해 신청 건은 0.01% 밖에 되지 않는 353건에 그쳤다.

설령 개인의 문제가 있었을지라도 그 문제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생각해본다면, 그가 깨어있는 대부분 시간을 보내며 물리적·정신적 환경,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등 일터를 빼놓고 그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하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미지 = 연합뉴스]
[이미지 = 연합뉴스]

◇ 직장 내 괴롭힘의 천태만상, 어떻게 해결할까?

직장 내 괴롭힘은 흔히 갑을관계에서 비롯되며, 다양한 방법으로 일어난다. 가장 흔한 유형은 폭언 및 폭설이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인격 모독성 발언 등 언어폭력은 빼놓지 않고 나온다. 언어폭력은 육체적 폭력보다 비교적 가볍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언어폭력은 직접적인 신체폭력보다 더 심각한 폭력이다.

언어폭력을 당하면 오랜 기간 기억 속에 남아 마음에 손상을 초래한다. 또한 우울증과 불안, 공포증 등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스트레스 호로몬인 코르티솔이 과다하게 분비돼 뇌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부위인 해마가 쪼그라들기도 한다. 뇌에서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부위와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부위가 같다.

인사 조치를 통해 괴롭히는 방법도 있다. 인사평가를 나쁘게 준다거나, 연고가 없는 타지로 전근을 보낸다거나, 심지어는 직급도 강등한다.

과도한 업무지시도 단골로 등장하는 괴롭힘 방법이다. 이외에도 업무상 관계가 없는 일을 지시하거나, 사적인 일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왕따를 만들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자가 직접 증명해야 하고, 처벌 기준도 애매모호하다. 신고를 통해 신상이 알려지고, 판결에 오랜 기간이 소요되고, 2차 가해에 대한 우려도 있는 만큼 피해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근로기준법은 2019년 7월 16일 시행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까지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제기된 것은 사내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다.

스웨덴계 노르웨이 심리학자인 단 올베우스가 개발한 ‘올베우스 괴롭힘 방지 프로그램’은 가장 널리 시험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개별적인 괴롭힘 사례는 종종 이를 용인하고 묵인하는 광범위한 문화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괴롭힘이 만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생태계 전체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올베우스 프로그램은 용인되는 행동 및 규칙 위반 시 따르는 결과에 대해 매우 정확하게 밝히도록 조언한다. 올베우스 교수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림버 교수는 “규칙 위반 시 따르는 (제재) 조치가 예상 밖의 일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구성원이 괴롭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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