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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배는 빠를 뱅크런' 대비하는 한국은행 최대한의 카드

  • Editor. 최민기 기자
  • 입력 2023.07.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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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디지털뱅킹이 훨씬 더 발달한 한국의 예금 인출 속도가 100배는 빠를 것이다.”

지난 3월 미국 지역은행 실리콘밸리은행(SVB)이 36시간 만에 초고속 파산한 배경으로 '디지털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이 꼽힌 것과 관련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 달 뒤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강세를 준 가정법 레토릭이다. 한은의 책무 중 하나인 금융 안정 차원에서 그만큼 디지털 시대의 대비가 시급하다는 견해였다.

한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저축은행 뱅크런 사태가 발생했던 2011년 한 해에 걸쳐 예금이 18% 감소했던 데 비해 지난 3월 글로벌 은행권 위기를 불러온 미국 지역은행 뱅크런 속도는 ‘광속급’이었다. SVB에선 하루 동안 예금의 24%가 빠져나갔고, 퍼스트리퍼블릭뱅크의 경우 한 달 동안 예금 41%가 감소하며 도산했다. 밤샘 대기로 은행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던 예전의 오픈런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달 초  서울 시내 한 새마을금고 지점에 예금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달 초  서울 시내 한 새마을금고 지점에 예금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기관 부실 가능성 소문만으로도 모바일·인터넷뱅킹 등으로 순식간에 예금을 빼내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새 행태로 나타난 ‘디지털금융의 역설’이 금융 위기의 불씨를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점증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비대면 금융이 확대되면서 ICT(정보통신기술) 강국 위상에 걸맞게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디지털 전환(DT)’을 가속화한 국내에서 디지털 뱅크런이 현실화할 경우 그 충격과 파장은 실로 클 것으로 예상돼 오던 이유다.

미국·유럽의 뱅크런 사태에 이어 최근 불거진 새마을금고 뱅크런 위기는 당국의 대응 속도전을 재촉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은행이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등이 발생할 때 중앙은행을 통해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는 대상을 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까지 확대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뱅크런 가능성에 대비해 예금취급기관의 유동성 안전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출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한은이 조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은행은 90조원 규모의 추가 유동성 조달이 상시적으로 가능해지고, 비은행권은 필요시 100조원 규모의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은행은 2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은행 대출제도 개편 방향'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한은은 "최근 SVB 사태 등을 계기로 디지털뱅킹 환경 하에서 대규모 예금인출 확산 가능성에 대비한 중앙은행 차원의 금융안정 목적 정책수단 정비·확충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며 "현행 한은 대출제도는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시 유동성 확보에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예금취급기관에 대한 자금지원에 한계가 있는데, 이를 개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권의 ‘유동성 백스탑(안전판)’ 역할을 강화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오는 31일부터 적용되는 이번 개편을 통해 중앙은행의 대출제도를 사실상 이용하기 어려웠던 비은행 예금취급기관, 즉 상호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농협, 신협, 수협, 산림조합의 자금 조달 문턱이 낮아진다. 한은은 중대한 어려움이 생기거나 그럴 가능성이 클 경우 이들 기관의 중앙회에 대해 유동성 지원 여부를 최대한 신속하게 결정하기로 했다.

그간 한은법상 금융기관의 범위가 은행으로 한정돼 이들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에는 긴급 자금 지원을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한은이 자금을 공급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기관이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며 신규 대출을 억제하고 있는 심각한 통화신용 수축기에 있어 금통위원 4명 이상의 찬성으로 금융기관이 아닌 영리기업에 대하여 여신할 수 있다"고 규정한 한은법 80조에 따른 유동성 공급 확대책이다. 한은은 유동성 지원을 신속히 결정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등 감독 당국과 수시 정보 공유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한은은 기존 상시 대출제도인 자금조정대출의 적용금리, 최대만기, 적격담보범위 등을 조정, 한은 대출제도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 기존의 '기준금리+1%포인트'인 대출금리는 '기준금리+0.5%포인트'로 낮추고, 대출만기도 최대 1개월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었던 데서 앞으로는 최장 3개월 범위 내 연장할 수 있도록 바꿨다.

중앙은행이 대출할 때 인정하는 ‘적격담보’ 범위에 지난해 11월부터 단기금융시장 안정화 조치의 일환으로 한시 확대한 9개 공공기관 발행채, 은행채에 더해 지방채와 기타 공공기관 발행채, 우량 회사채를 포함하기로 했다. 한은이 비은행권 중앙회에 대출할 때도 동일한 적격담보 범위를 적용한다.

한국은행 대출관련 제도개선 주요 내용 [그래픽=연합뉴스]
한국은행 대출관련 제도개선 주요 내용 [그래픽=연합뉴스]

한은은 “은행에 대해서는 상시 유동성 지원 역할이 강화되고, 금통위 의결 시 비은행예금취급기관에 대해서도 유동성 지원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은행의 경우 유사시 자금조정대출을 통해 90조원 규모의 추가 유동성을 조달할 수 있으며, 비은행권의 경우 은행에 준하는 적격담보 인정에 따라 금통위 의결을 거쳐 필요시 100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조달할 수 있을 전망이다. 비은행권의 경우 지난달 말 6개 중앙회 보유잔액 기준으로 기존 상시 적격담보증권 63조원에 9개 공공기관 발행채 15조원, 은행채 6조원, 지방채 1조원, 기타 공공기관 발행채 6조원, 우량 회사채 9조원이 더해지는 것이다.

아울러 한은은 대출 적격담보에 예금취급기관의 대출채권을 추가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미국 연준, 유럽중앙은행, 영란은행, 일본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도 대기성 여신제도 운영시 시장성 증권만 아니라 대출채권까지 적격담보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은의 평가로는 은행과 비은행예금취급기관 중앙회의 경우 상당한 규모의 시장성 증권을 보유하고 있기에 뱅크런에 대응한 자금조달 여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지만, 금융의 디지털화 심화로 예금인출 사태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은은 "예금취급기관이 뱅크런에 대응하고자 보유증권을 시장에 투매(fire-sale)할 경우 금융시장 불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때 예금취급기관은 자산의 70~80%를 차지하는 대출채권을 활용하면 중앙은행으로부터 충분한 유동성을 적기에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출채권 담보확대의 장점을 강조했다.

한은은 대출채권의 경우 유관 기관과 1년 안팎의 검토를 거쳐 금통위 의결 후 시행할 방침이다. 비은행권에 대해서는 향후 한은이 충분히 관련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공동검사·자료제출요구에 대해 제도적 여건이 마련된 이후 대출채권 포함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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