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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 과속이 불러온 SVB 붕괴...연준 '금융안정'에 눈 돌릴까

  • Editor. 최민기 기자
  • 입력 2023.03.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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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연준은 금리를 올린 속도가 자신들이 돈을 찍어낸 속도만큼이나 무모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갑작스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폐쇄 사태와 관련해 한 시장 참여자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지난 1년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4.75%포인트(상단)나 끌어올린 긴축 과속의 후폭풍을 이같이 지적했다.

유명 투자운용사 헤이먼 캐피털 매니지먼트 설립자인 카일 배스 최고투자책임자(CIO)도 "인플레이션을 크게 일으킨 뒤 이렇게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면 무언가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지난해 3월부터 제로금리 시대를 접고 40년 만에 밀어닥친 고물가 억제를 위해 고강도 통화긴축을 초고속으로 밑어붙인 연준을 겨냥한 이같은 비판은 금융 안정 측면에서 긴축 신중론을 불러온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탄탄한 고용지표만 믿고 고물가 대응에만 직진해온 연준이 한동안 속도조절을 하다가 최근 다시 긴축 재가속 움직임을 보이는 시점에 역대급 은행 파산이라는 대형 악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2008년 리멈 브라더스 사태가 불러온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로 맞은 미국 은행 파산 충격은 급격한 금리 인상의 후유증이 현실화한 것이라는 시각이 확산하면서 연준이 그간 소홀히 했던 장기적 금리 안정에 비중을 두고 긴축 속도를 재조정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와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SVB 폐쇄 결정 이틀 만인 이날 SVB 예금 전액 보호와 함께 유동성 부족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 대출 등의 긴급 대책을 공동 성명에 담아 발표했다. 다른 은행들의 뱅크런(대량인출 사태)을 예방해 예금자들의 패닉을 불러온 SVB 붕괴가 금융 시스템 위기로 번지는 것을 신속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유동성 부족과 지급 불능 등을 이유로 미국 16위 은행인 SVB를 전격 폐쇄하고 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문닫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인데, 유동성 위기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SVB는 코로나19 때 대규모로 풀린 유동성을 미 ICT산업 본산의 스타트업 예치금으로 끌어모아 자산규모(2090억달러)를 3배 이상 불렸다. 이를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미국 장기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했지만 유동성 압박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워낙 빠르고 높아지면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빠르게 예치금을 인출하는 바람에 고금리로 손실을 본 보유 국채를 팔아서라도 자금을 마련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뱅크런과 주가 폭락 속에 유상증자 시도마저 좌절되면서 문을 닫아야 했다.

대출로 안전판을 삼는 다른 은행과 수익구조는 달랐지만 ‘실리콘밸리의 자금젖줄’은 고금리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된 셈이다. 위험자산도 아니고 가장 안전하다는 미 국채 투자 비중(60%)이 SVB처럼 높은 은행도 미국 내에서는 없고, 지난 9일 하루에만 420억달러나 인출하는 대규모 뱅크런을 버텨낼 은행도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리먼 브라더스 몰락이 무분별하게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내준 금융권의 부실 문제로 발생했다면, SYB 사태는 미 국채라는 초우량 안전자산에 투자하고도 금리인상의 누적된 충격을 견디지 못한 붕괴다.

전임 연준 의장이었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SVB 충격 최소화를 위한 대응책 발표에 앞서 이날 미 CBS 인터뷰에서 "미국 은행 시스템은 정말로 안전하다"며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금융 위기설을 일축했지만, 금융리스크 추가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그래서 ‘특정 은행의 파산이 광범위한 금융권 리스크를 초래할 경우' 보험 한도를 초과한 예금도 보호할 수 있다는 연방예금보험법 조항을 활용, SVB 외에도 이날 또 다른 파산의 길에 접어든 뉴욕 시그니처은행까지 망라해 예금주 보호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옐런 장관은 2021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오판은 물론 각종 정책 철학에서 그간 후임자인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코드’가 맞다는 평가를 받아온 터라 연준과의 정책조합이 주목된다.

SVB 붕괴 원인이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국채 손실에서 비롯된 만큼 다른 은행들의 리스크 해소를 위해 고강도 긴축기조로 회귀하려던 연준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연준은 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기금 BTFP를 조성,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담보로 내놓는 금융기관에 1년간 자금을 대출하기로 했다.

SVB 붕괴와 리먼 브라더스 사태 비교 [그래픽=연합뉴스]
SVB 붕괴와 리먼 브라더스 사태 비교 [그래픽=연합뉴스]

시장에서는 오는 21∼22일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통상적인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급격히 높아졌다. 파월 의장이 지난 7일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예상보다 강한 경제지표를 근거로 3월 빅스텝(0.5%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을 때와 정반대로 국면이 바뀌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의 차기 정책금리 인상률 예상에서 이날 빅스텝은 2.6%로 급락했고, 베이비스텝은 97.45%까지 치솟았다. 파월 의장의 상원 발언 때 7대3으로 빅스텝 전망이 높았던 것과 견주면 사실상 긴축 재가속은 물건너갈 공산이 크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SVB 붕괴는 전환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경제분석 애널리스트는 “SVB 파산의 영향은 좀 더 조사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파산 원인이 공격적 금리인상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금융안정 변수에 대한 고려가 있을 경우 0.5%포인트 인상으로의 회귀는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SVB 사태가 2008년 (금융)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은 낮지만, 다른 점은 분명히 있다. SVB처럼 예금의 대부분을 미 국채와 모기지채권 등 편중해 투자하는 은행은 거의 없다”며 “적어도 SVB 사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연준의 긴축 제한이다. 이 사태는 금리가 본질이므로 추가 피해를 가늠해야 하는 시기에 연준은 긴축 태도를 강화하기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하는 SVB 붕괴가 연준의 긴축 재강화를 없던 일로 되돌린다면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통화정책방향을 정해야 하는 한국은행으로서는 한미간 금리 격차(현재 1.25%포인트)가 역대 최대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연준의 ‘듀얼 맨데이트(이중책무)’는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며, 장기금리 안정이 하위 목표로 규정돼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준은 고용안정에 비중을 둔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완전고용에 가까운 취업시장 활황에 기대어 지구촌 다른 나라의 긴축 후유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광폭 금리인상을 선도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유다. 최우선 목표로 물가 안정에 금융 안정도 도모해야 하는 한은 등 다른 중앙은행들이 끝 모르는 미국발 긴축에 동조화하느라 허걱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실리콘밸리은행 폐쇄를 계기로 금리수단을 통한 ‘금융 안정’에도 시선을 두는 연준의 태도 변화가 3월 금리 조정을 통해 확인된다면 한은으로서도 그만큼 경기 부진 극복을 위해 거시경제 당국과 탄력적인 정책조합 실행에 한층 숨통을 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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