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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기 반년마다 인상...인플레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 기업 가격조정행태

  • Editor. 최민기 기자
  • 입력 2024.03.1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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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40년 만에 맞은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과속긴축기에 들어섰던 2022년 ‘마크업(markup) 인플레이션’이 주목받았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시기를 틈타 기업이 비용 상승분보다 제품 정가를 더 높여 얻는 이윤이 물가 상승을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미국 내에선 ‘그리드(탐욕) 인플레이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면서 시장지배력을 앞세운 대기업들의 과도한 가격 인상으로 ‘이윤 주도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는데, 주로 미국과 유럽에 국한됐다.

한국에서는 이같은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업에 대한 인상 자제 권유가 '간섭' 논란을 부르기도 했지만 물가정책 당국의 선제적인 ‘관리’도 있었고, 기업들로서도 소비자들의 강한 반발과 불매심리를 의식해 과도한 가격인상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 기업들이 반년에 한번꼴로 생필품 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비용압력에 대응해온 것으로 분석됐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 기업들이 반년에 한번꼴로 생필품 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비용압력에 대응해온 것으로 분석됐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의 가격조정 빈도는 팬데믹 이후 확실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조정 폭에서는 팬데믹 이전과 크게 변화가 없었지만, 기업들이 가격인상 횟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비용압력에 대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인플레이션 시기에 이전보다 더 자주 가격을 올리면서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11일 발표한 '팬데믹 이후 국내기업 가격조정행태 변화 특징과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의 생필품 가격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내기업의 가격조정(인상·인하 빈도, 할인 등 일시조정 제외) 빈도를 조사한 결과, 국내 기업들이 고인플레이션 비용 압력에 평균 6.4개월마다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조정 빈도는 이번 물가 상승기 전후로 변동이 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평균 1.2%를 기록했던 2018∼2021년에 월평균 11.0%를 보였는데, 물가 상승률이 연평균 4.4%로 치솟았던 고인플레이션 기간인 2022∼2023년엔 15.6%로 상승했다. 이 빈도를 기간으로 환산하면, 평균 상품가격 유지 기간이 같은 기간 평균 9.1개월에서 6.4개월로 단축됐다. 가격을 올린 횟수가 코로나19 이전에 연 1.3회였다면, 팬데믹 이후에는 연간 두 번 올린 셈이다.

다만 조정 폭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한번 올릴 때 인상률은 평균 20∼25%, 인하율은 15∼20%로 팬데믹 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코로나19 전후 인상 빈도의 증가율이 높은 생필품은 조미료·식용유지, 축산·수산물 가공품 등 수입 원재료의 비중이 커 비용 압력이 크게 작용하는 품목들이었다. 조정폭과 조정빈도로 나눠 생필품가격 상승률을  견줘보면 가격 변동의 대부분이 조정빈도의 변동으로 설명된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이동재 과장과 임서하 조사역은 “고물가 시기에 기업들이 가격변화에 따른 소비자의 저항 및 민감도, 경쟁품으로의 대체효과 등을 고려해 가격인상시 ‘폭’보다는 ‘빈도’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역대급 고금리를 불러온 고물가 상황에서 기업들이 섣불리 가격조정 폭을 높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것으로 풀이된다.

팬데믹 이후 생필품가격 변동의 대부분이 조정빈도의 변동으로 설명된다. [자료=한국은행 제공]
팬데믹 이후 생필품가격 변동의 대부분이 조정빈도의 변동으로 설명된다. [자료=한국은행 제공]

한은의 앞선 실증연구에서도 인플레이션 수준에 따른 기업의 가격조정 행태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은이 2020년 5월 발표한 ‘저인플레이션 하에서 기업의 가격조정행태 분석’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수준이 낮을수록 기업들은 가격조정 빈도를 낮추는 반면 가격조정 폭은 높이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평균 1.1%로 유지됐던 2014~2019년 생필품 가격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저인플레이션 상황일수록 기업이 비용상승 등 가격인상 요인을 가격에 곧바로 반영하지 않고 미루다가 가격조정 시에는 큰 폭으로 조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됐다.

이번 팬데믹 전후 분석에서는 물가상승률과 가격 인상빈도 간 상관성이 높게 나타났다. 물가 상승률이 1%포인트(p) 상승할 경우 개별품목의 가격인상 빈도 역시 약 1%p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생필품가격 조정빈도가 소비자물가와 상관성이 높게 나온 점에 비춰어 볼 때 이번 분석의 대상인 생필품 이외의 품목들에서도 팬데믹 기간 중 유사한 가격조정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물가 상승률이 4∼5%대로 높은 시기에는 같은 비용 충격(국제 유가·곡물가 상승 등)에도 인상 빈도가 늘어나면서 충격이 물가로 빠르게 전이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유가 상승 등 충격의 크기가 크거나, 서로 다른 충격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인플레이션과 함께 가격인상 빈도가 확대되면서 물가상승률이 더 큰 폭(비선형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관측됐다.

연구진은 “최근과 같이 물가가 여전히 목표 수준(상승률 2%)을 상당폭 상회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충격이 발생할 경우 인플레이션 변동 폭이 물가 안정기에 비해 더욱 커질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향후 물가상황 판단시 기업의 가격조정행태가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 세계적으로 올해 들어 울퉁불퉁하게나마 인플레이션 둔화 조짐이 나타나는 가운데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팬데믹 충격에 대응한 기업의 가격조정 변화가 예년 수준으로 정상화될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향후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 둔화) 경로에서 핵심적인 불확실성 요인의 하나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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