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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주식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고? (上)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6.17 16: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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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시력, 청력, 근력, 정신력…. 사람이 지닌 힘의 종류는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럼 여러분의 '이야기력'은 어떤가요? 이야기력은 '내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뜻합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쌓아왔고, 어떤 이야기를 꿈꾸며,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여지훈의 이야기力]은 “좋은 이야기가 좋은 세계를 만든다”는 믿음 아래, 차근하고도 꾸준히 좋은 이야기를 쌓고 나누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편집자 주>

“바보야, 주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야.”

간혹 주식 관련 기사에 이러한 내용의 댓글이 달리곤 하는데, 특히 주식 투자에서 누군가 이익을 보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라도 하면, 그런 글쓴이의 무지몽매함을 일깨워 주기라도 하는 양 그 밑으로 재차 달리는 글이기도 하다.

물론 주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만 그러하며,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주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만 그러하며,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사진=여지훈 기자]
주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만 그러하며,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사진=여지훈 기자]

먼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A기업의 주식이 총 100주 발행돼 유통되고 있고, 1주당 가격이 현재 1000원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갑자기 B라는 사람이 A기업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해 지금 가격보다 좀 더 높은 1100원에 A기업 주식 1주를 샀다. 이 경우 A기업 주식을 1000원 미만에서 매수했던 기존 주주들은 적어도 10%가 넘는 수익률을 거저 얻게 된다. 그렇다고 B가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B는 1100원에 주식을 샀고 현재 주가도 1100원이기 때문이다.

이제 C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C 역시 A기업의 가치가 향후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해 1200원에 A기업 주식 3주를 샀다. 이제 기존 주주들은 물론, B도 9.1%의 수익률에 도달했다. 물론 C가 손해를 보지도 않았다.

이처럼 주가는 계속 오르지만,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 모두가 윈-윈 한 셈이다. 더구나 A기업의 주식이 계속 올라 2000원이 됐을 때, 일찍이 1100원에 A기업 1주를 샀던 B가 2100원에 1주를 더 샀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B의 평균매입단가는 1600원이 되고, 모든 주주가 플러스 수익률을 누리는 행복한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엥? 내가 아는 주식시장과는 전혀 다른데?”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당연하다. 앞의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시나리오일 뿐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다. 이런 시나리오대로만 진행된다면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인식이 결코 지금만큼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우선 행복 시나리오를 방해하는 한 가지 요소는 A기업에 대한 가치평가가 투자자마다 전부 다르다는 데 있다. 가령 A기업의 가치가 2000원으로 평가받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 D란 투자자가 1900원에 주식을 매도했다고 가정해보자. D는 A기업의 주식을 1000원 미만에서 매입한 대주주다. 그러나 A기업의 둔화하는 성장률과 악화되는 경쟁환경 등을 고려하자니 2000원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그래서 1900원에 보유하고 있던 주식 5주를 모두 매도했다.

이럴 수가! 마냥 오를 줄만 알았던 A기업의 전체 유통 주식 중 무려 5%에 해당하는 대주주 물량이 나왔다. 갑자기 A기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불과 한 주 전만 해도 핑크빛 전망을 그리던 증권사들도 대량 매도 신호가 나왔다며 부정적 전망 일색의 리포트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남은 주주들의 마음에 서서히 먹구름이 낀다. 혹여 또 다른 매도세가 나올까 싶어 다들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그런데 A기업의 주식을 1주 보유하고 있던 E가 갑자기 자녀 학자금으로 급전이 필요해 주식을 처분할 필요가 생겼다. E는 1300원에 A기업 주식을 샀기 때문에 1800원에 팔아도 38.5%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1800원에 보유하고 있던 주식 1주를 팔았다. 이처럼 해당 기업의 가치나 전망과는 무관하게 투자자마다 각기 다른 시점에 주식을 매도할 필요가 생기는 것도 행복 시나리오를 막는 요소 중 하나다.

둑에 뚫린 조그만 구멍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A기업 주주들은 더는 눈치를 보지 않고 보유한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주가는 금세 1700원, 1600원, 1500원으로 떨어졌다. 불과 몇 주 전 1900원이었던 주가가 어느새 1400원에까지 도달했다. 무려 26.3%의 대폭락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으로 끝일까?

아니다. 주가 하락을 이끈 중요한 요소 하나가 남았다. 바로 공매도다. 사실 주가가 1700원으로 떨어졌을 즈음 하락 신호를 포착한 공매도 세력이 난입했던 것이다.

‘없는 것을 빌려서 판다’는 의미의 공(空)매도는, 특정 기업의 주가가 상승보다는 하락할 것으로 전망해 현재 자신이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증권사 등 주식 보유자로부터 빌려와 현재 가격 수준에서 매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주가가 예상대로 떨어지면 해당 주식을 낮아진 가격에 사들여 차익을 실현한 뒤 주식을 대여해 준 이에게 약속한 기일 내로 되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다만 이때 주식 차입자는 빌리고자 하는 주식 가치 이상의 담보를 대여자에게 제공해야 하고, 차입한 주식을 매도할 때는 반드시 직전 체결가격보다 높은 호가로 매도주문을 내야 한다. 직전 체결가격보다 낮은 호가로 매도주문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이러한 제도를 ‘업틱룰’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매도 세력이 계속 낮은 가격으로 악의적인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고의적인 주가 하락을 조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다만 일부 예외가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주식을 차입해 매도한 이는 주가 하락으로부터 시세차익을 얻으며, 주식을 대여해 준 이는 주식을 빌려준 대가로 소정의 수수료를 받는다. 또 차입자가 맡긴 담보물로부터 일정 부분 추가 수익도 챙길 수 있으므로 향후 낮아진 가격의 주식을 돌려받더라도 그 하락분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고통받는 건 다른 주주들이다. 공매도 세력이 많은 이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망쳤을 뿐 아니라 홀로 이익까지 챙겼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말이 부정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주가가 하락해야만 이익을 보는 공매도 세력이 끼어든 이상 주식시장은 제로섬 게임이 되고 만다. 한편에는 주가가 계속 높아지길 원하는 주주들이 있으며, 반대편에는 주가가 현재 수준보다 낮아져야만 이익을 보는 공매도 세력이 있다. 어느 한쪽이 반드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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