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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에 기름 붓는 러시아 경유·휘발유 수출금지령, 그 세 갈래 속내

  • Editor. 강성도 기자
  • 입력 2023.09.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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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향해 고공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우려가 악재로 등장했다. 글로벌 2위 석유수출국 러시아가 경유와 휘발유의 수출을 무기한 금지하고 나서면서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이후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을 잠그며 세계 에너지 위기를 촉발해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 기름을 붓고 지구촌 산업을 위축시켰던 러시아가 금수 조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달 들어 석유패권국 사우디아라비아와 공조해 연말까지 하루 30만배럴을 감산키로 하면서 공급 부족 우려를 키우더니 이번엔 수출 금지령으로 석유 공급을 무기화하려는 의도까지 드러내자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안이 되살아나는 양상이다.

러시아 유전 지대에 있는 원유 시설 [사진=연합뉴스]
러시아 유전 지대에 있는 원유 시설 [사진=연합뉴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20일(현지시간) 자국 시장 안정을 위해 옛소련 4개 국가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 대한 경유·휘발유 수출을 일시적으로 금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금수 조치는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구성된 러시아 주도 유라시아경제연합(EEU) 회원국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기한은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해 경유(디젤) 3500만톤, 휘발유 482만톤을 수출했던 러시아는 최근 악화한 자국 연료시장 안정화 차원의 조치라고 주장했다. 정유소의 유지보수, 철도 병목 현상, 연료 수출을 장려하는 루블화 약세 등의 요인으로 인해 러시아 내수 시장이 타격을 입었고, 연료가격 급등세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수를 통해 가격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성명을 통해 “일시적인 제한 조치는 연료 시장에 공급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소비자 가격을 낮추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이터는 이미 이달 들어 20일 동안 해상디젤·경유 수출량을 전월 동기 대비 30% 줄어든 187만톤으로 축소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국제유가 급등기를 틈타 전격적으로 수출 금지령을 내린 속내는 대내외적 시각에서 세 갈래로 풀어볼 수 있다.

러시아 남부 곡창지대 일부 지역에서 연료 부족으로 농기계를 돌릴 수 없어 수확 차질이 빚어진 상황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크렘린궁으로서는 악재가 될 수밖에 없어 민심 안정을 위해 수출길을 막게 된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금수 카드에 대서방 보복과 고유가 유지의 노림수가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정제유 수입을 대부분 금지한 서방세계의 결속을 흔들려는 의도가 읽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RBC캐피탈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상품전략책임자는 “수출을 줄이는 것은 석유 공급을 무기화하려는 크렘린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욕구”라며 “러시아는 여전히 혼란을 일으키고 싶어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는 서방의 결의를 깨뜨리기를 원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목표는 내년까지 이어져 미국 대선에 미치는 임팩트를 지켜보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도 곁들였다. 

기름값이 표심과 직결되는 미국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 공화당 후보들이 유가 상승을 이유로 바이든 행정부를 공격하고 있는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타격을 미칠 수 있는 유가와 인플레이션 불안 상황이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미국 주도 아래 결집된 대러시아 제재의 틀을 흔들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관측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주유소 주유 현장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의 주유소 주유 현장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유 수출국이기도 한 러시아는 화물과 해운·항공 분야의 주력 연료로 쓰이는 경유가 글로벌 산업의 핵심 동력으로 평가되는 만큼 에너지 무기화를 통해 서구에 대한 보복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 말고도 유가의 하향 안정화를 통한 경제 회복이 시급한 유럽 등 서방국가에 대한 강한 압박인 셈이다.

무엇보다 늘어나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유가 수준이 높게 유지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감산에 금수까지 더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감산 규모를 국제적으로 정확히 공표하지 않을 만큼 비서방 세계에 대한 수출을 암암리에 늘려 왔는데, 원유가격이 높을수록 장기화하는 전쟁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의 금수 조치 발표 이후 유럽의 디젤 가격은 톤당 1010달러를 넘어 5%가량 급등했고, 원유 가격도 국제 벤치마크인 브렌트유가 1% 오른 배럴당 94달러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4일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디젤유 가격이 지난 5월 이후 40% 이상 상승했다면서 이달 초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동반 감산 발표가 국제 에너지 시장에 가장 큰 타격을 준 부문은 디젤유라고 분석했는데, 설상가상 러시아 금수 악재가 유가 상방 압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유라시아그룹의 헤닝 글로이스타인 이사는 FT에 “러시아는 유럽과 미국에 고통을 가하고 싶어하며, 이제 겨울을 앞두고 석유 시장에서 (지난해 유럽에 공급을 중단한) 가스에 대한 플레이북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러시아는 에너지 시장에 대한 권력 사용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디젤을 겨냥하면 유가가 (13개월 만에)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쉽게 되돌아갈 수 있으며, 이는 세계 경제에 모든 불편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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