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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투어] ⑦철의 도시·물의 도시 포항의 숨결을 따라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2.12.22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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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마다 걷기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요즘 걷기 여행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충 둘러보고 돌아서는 관광은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모든 감각을 통해 직접 수집된 오감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관광으로 여행자를 인도합니다. 길 위에서 게으르게 움직이며 풍경과 세상사를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재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는 중입니다. 천천히 구석구석 걷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코리아 둘레길의 동해안 구간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이라는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4월 ‘2021 걷기 여행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해파랑길이 지난해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국내 걷기 여행길 중 2위로 꼽혔다. 만족도 면에선 97.3%의 이용자가 여행에 만족했다고 응답했다. 방학, 휴가, 연휴 등을 맞아 해파랑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몰려들 정도로 그 인기는 엄청나다. 참고로 1위는 ‘제주올레’다.

해파랑길 포항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해파랑길 포항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 15코스 : 호미곶에 해는 뜬다 (호미곶 등대~흥환 보건소 12.9km)

“쓰읍.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호미곶에 도착하자마자 나지막이 뱉어보는 영화 신세계 강과장 역을 맡은 최민식 배우의 대사다. 호미곶 상생의 손을 배경으로 하는 일출을 찍기 위해 꼭두새벽 숙소부터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다행히 일출 전 도착했고, 걸작 사진을 남기겠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상생의 손으로 달려갔다. 아뿔싸. 서서히 하늘이 밝아오는데 하늘에 구름이 짙게 깔려있다. 날씨를 체크하지 않은 불찰이었다. 전망대로 가서 찍어보고,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찍어 봐도 둥근 해가 구름에 가려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대로 영상으로 호미곶 전경을 담고 이번 일정을 시작한다.

서서히 북진하니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타난다. ‘그래도 해는 뜬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먹구름이 수평선을 가득 메워 해 뜨는 것을 방해해도 그 뒤에 해는 떠 있다. 가는 한 해도 아쉽고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불경기 등으로 웃을 일이 많지 않은 한 해였지만, 언제나 해는 뜨고 우리는 그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힘찬 발걸음을 뻗는다.

구름에 가려 해가 보이지 않는다. [영상=김준철 기자]

부리를 벌린 독수리 머리를 닮은 독수리 바위를 시작으로 주상절리가 깔려있다. 독수리 바위 옆엔 1907년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로 삼기 위해 주변을 조사하던 일본 수산 실습선 쾌응환호가 거친 파도에 좌초하면서 교관과 학생이 조난사고를 기념하기 위해 일본인이 1926년에 세운 쾌응환호 조난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또 조금 더 올라가면 호미 둘레길 안내판이 세워진 도로 옆 공간에 월보 서상만의 ‘나 죽어서’란 시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평소 같으면 지나쳤을 테지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쐬며 천천히 읽어본다.

다시 속력을 높여 걷는 도중 오프로드가 나타난다. 멀리 내다보니 데크가 있다. 바다를 끼고 걸으며 리프레시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데크 초입으로 가보니 진입로가 막혀있다. 지난 여름 포항을 강타한 태풍 힌남노 때문에 보수가 필요해 데크를 막아 놓은 것이었다. 사실 매스컴을 통해서만 힌남노 위력과 피해를 접했는데, 실제로 보니 상상 이상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빠른 복구를 기원하며 국도를 통해 올라간다.

좁은 도로를 타고 올라가니 다시 해안이 나온다. 깊숙이 들어 온 해안선은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로 아름답다. 해변의 코너를 돌아서니 대동배1리 어촌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길가에 소나무 숲길로 진입하라는 이정표가 있다. 숲길을 걷다 보면 구룡소가 나온다는 안내다. 포항엔 용과 관련한 전설과 장소가 유난히 많다. 전문가들은 거친 바다에 기대 살아가는 뱃사람들이 용을 신성시했고, 자연이 빚어낸 동해안의 기암괴석들이 상상력을 자극했다고 한다.

동해의 아침 [사진=김준철 기자]
동해의 아침 [사진=김준철 기자]

구룡소는 높이 40~50m, 둘레 100m 정도의 움푹 파인, 자연만이 조각할 수 있는 기암절벽이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할 때 뚫어진 9개 굴이 있고, 그 중엔 5리가량의 깊은 굴도 있어 유명한 도승들이 그곳에서 수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용이 살았다는 소(沼)는 맑은 바닷물이 드나들고, 바닥이 평평한 곳에 깔린 여러 형상의 바위엔 맑은 물이 출렁이고 있어 신기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주민들은 지금도 구룡소를 아주 신성한 곳으로 믿고 있다는데, 구룡소 전망대에서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발산1리에 이어 2리에도 마을 어항이 별도로 있다. 산길을 내려온 뒤 주야장천 해변만 걷다 보니 마을 어항과 어촌들이 고만고만한 규모로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잔잔한 파도가 바위와 방파제를 때리는 소리, 정비된 길에 이어 나타나는 자갈길을 밟으며 나는 소리를 느껴본다. 해안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모감주 병아리 꽃나무 군락지가 있다고 지도가 안내한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휑한 언덕만 있을 뿐 그 실체를 찾기 힘들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을이 나타난다. 남구 동해면에 있는 흥환리로 식당이 1~2개 있으며, 보건소도 있는 정겨운 어촌이다. 이번 코스는 거리도 짧고 난도도 평이해 조금 더 걸어볼까 생각했지만 다음 코스가 19km인데다, 교통편 역시 좋지 않아 조그마한 흥환마트 앞에서 음료를 한 잔 하며 이번 코스를 마무리한다.

구룡소 [사진=김준철 기자]
구룡소 [사진=김준철 기자]

■ 16코스 : 세계적인 철강 기업의 위엄 (흥환 보건소~송도 해변 19.2km)

흥환 보건소에서 하천을 따라 바다로 나간다. 해안 도로와 바로 접해 있어 드라이브로도 넓은 모래밭을 감상할 수 있는 흥환 간이 해수욕장은 비교적 조용하고 아늑한 편이다. 해수욕장 모래밭을 걷고 나면 해변 데크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바람이 강하게 부는 탓인지 파도가 심하게 친다. 심지어 파도가 데크 위까지 넘어와 걷다 멈췄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멀리 보이는 포스코 포항 제철소 뒤편이 송도 해변으로 종착지를 바라보면서 해안선을 따라간다.

마산리로 들어서자 신기한 바위들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서 있는 바위라는 뜻인 ‘선바우’, 소원을 빌고 바위에 난 구멍 속에 자갈을 넣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소원 바위’를 비롯해 각종 물체 이름을 딴 ‘폭포 바위’, ‘아기 발 바위’, ‘킹콩 바위’, ‘남근 바위’ 등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펼쳐져 있다. 바다가 깎아낸 바위나 산에 기괴하게 자란 나무나 풀들이 특이한 형상이나 무늬를 띠고 있으면 이름을 잘도 붙인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비슷한 만국 공통 사항인 듯 생각하며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본다.

데크 끄트머리에 있는 선바우부터는 평택 임씨가 마을에 들어와 개척했다고 해 지명도 마산리에서 입암리로 바뀐다. 작은 규모의 어항이지만 주변에선 미역과 멸치 등 이름 모를 해산물을 깔아놓고 말리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한가로운 해안 산책로 옆 수심이 낮은 해안에서 주민들이 열심히 채취한 것으로 보인다. 해안에서 나와 차도를 잠시 걷다가 연오랑세오녀 테마 공원 언덕으로 진입한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아기 발 바위 [사진=김준철 기자]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아기 발 바위 [사진=김준철 기자]

연오랑세오녀는 신라 시대 설화로 현재 전해지는 버전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것이다. 학창 시절 접한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자 일월이 빛을 잃었는데, 세오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다시 빛을 회복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삼국유사 설화를 바탕으로 조성한 테마 공원이 바로 연오랑세오녀 테마 공원이다. 억새인지 갈대인지 모를 숲속을 헤치고 공원에 진입하자 높은 봉우리에 정자가 있다. 해안 절벽 위 세워진 쉼터로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는 풍경이 절묘하다. 테마 공원은 포항 12경으로 문화 시설인 귀비고 전시관 한국 뜰과 방지 연못, 거북 바위, 초가집으로 조성된 신라 마을 등 다양한 공원 시설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갈 길이 멀어 모든 곳을 구경하진 못하고 발을 뗀다.

공원을 빠져나오면 약전리 읍내가 나오고, 위쪽으론 도구 해수욕장이 이어진다. 도구 해수욕장으로 나가 바닷바람을 마셔본다. 고개를 살짝만 왼쪽으로 돌리니 제철소가 보인다. 흥환에서 봤을 땐 작은 점으로 보였으나, 서서히 형체가 보이기 시작하고 긴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도 보인다. 도구 해수욕장의 마지막 부분은 해병대 상륙 훈련장이다. 훈련 중인지 해병들이 군장을 하고 일정 구간을 반복해서 달린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된 훈련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본다.

이번 코스 후기를 보면 포스코 옆 차도가 길어 체력 소모가 많고 지겹다는 평이 많다. 하지만 처음 제철소를 봐서 그런지 신기하기만 하다. 좁은 도로 주변은 작은 중소기업 공장들이 여러 곳 있는 공단처럼 보이고, 큰 차도부터는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나타난다. 포스코는 세계적인 철강 전문 분석 기관 월드 스틸 다이나믹스(WSD)가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순위에서 13년 연속 1위에 선정됐다. 그만큼 철강 제품의 고급화와 고효율 생산 체계의 구축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포스코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은 여러 기사를 통해 접했다. 웅장한 제철소를 구경하면서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연오랑세오녀 테마 공원 [사진=김준철 기자]
연오랑세오녀 테마 공원 [사진=김준철 기자]

포스코 포항제철소 정문 옆엔 Park1538 포스코 역사 박물관이 있다. 포스코의 30년 역사와 정신, 기업 문화, 비전을 담은 기록관이라고 하는데 오후 6시 폐관이라 다 둘러보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오히려 기자 눈길을 끈 건 안쪽에 있는 포항스틸야드다. K리그1(프로축구 1부) 팀 포항스틸러스의 홈 경기장으로 1990년 준공된 대한민국 최초의 축구 전용 구장이다. 경기장 외부를 한 바퀴 돌며 빨리 리그 개막이 다가왔으면 좋겠다고 비는 동시에 언젠가는 포항 축구를 보러오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퇴근 시간과 맞물렸는지 포항제철소와 현대제철 포항공장에서 근무자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다. 어쩌다 보니 그들 무리에 섞여 형산교를 지나게 됐다. 일과에 고생한 듯 표정은 일그러져 있지만 발걸음은 사뿐거리는 걸 보니 여느 직장인들과 다를 것 없는 퇴근길 풍경이다. 친구, 동료들과 전화하며 술자리를 잡는 사람들도 있고, 가족들과 통화를 하며 퇴근을 알리는 가장의 모습도 몇몇 보인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김준철 기자]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김준철 기자]

형산교를 돌면 강변체육공원이 쭉 펼쳐져 있다. 이제 직선거리로 3km 정도만 걸으면 목적지다. 오른쪽 공원과 형산강 건너편에 있는 포항 철강 산업 단지를 보며 걷는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높은 탑이 보인다. 환경 감시 타워라고 하는데, 겉으로 보기엔 전망대로 쓰는 단순 관광용 타워 같지만 첨단 환경 장비의 결집체로 포항 제철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공원 중간엔 핑크뮬리가 잔뜩 피어있다. 차가운 이미지의 제철소와 화사한 이미지의 핑크뮬리가 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게 오묘하다. 포항스러운, 포항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분위기다.

산책로를 따라서 길을 걷다 보면 포항 운하관이라는 시설을 만나게 된다. 이곳부터 최근 포항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포항 운하 여행이 시작된다. 운하관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부두를 통해 크루즈도 탈 수 있다고 하는데, 크루즈를 타고 즐기는 제철소 풍경과 동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긴 거리를 쉬엄쉬엄 걸어오다 보니 벌써 어둑해진다. 그러자 목적지인 송도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백사장 유실로 해수욕장 기능을 잃어 2007년 폐장했지만, 포항시는 해수욕장을 복원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고 내년 재개장을 바라보고 있다. 많은 해수욕객이 이곳을 찾는 상상을 하며 코스를 마친다.

포항함 체험관 [사진=김준철 기자]
포항함 체험관 [사진=김준철 기자]

■ 17코스 : 탁 트인 포항 바다, 영일만 친구가 반기다 (송도 해변~칠포 해변 17.9km)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오타루 운하. 선박의 통행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물길을 뜻하는 운하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경인 아라뱃길로 유명한 경인 운하 정도만 알려졌을 뿐인데, 포항에도 운하가 있는 걸 알면 깜짝 놀랄만하다. 포항 운하는 실제 일제강점기 당시 내왕하는 선박이 많아 번성했던 곳이다. 지금은 운하 주변 유원지가 조성되고 홍보관이 송도동 강변에 설치돼 크루즈를 타고 구경 가능하다. 건너편엔 초계함 포항함(PCC-756) 체험관이 운하 위에 떠있다. 2009년 퇴역한 함인데 취역 기간 포항시와 많은 교류 관계를 맺어온 특별한 인연으로 퇴역 후 포항 시민에게 개방됐다.

운하를 옆에 끼고 걷다 보면 울릉도로 향하는 배가 있는 포항 여객선 터미널이 나오고 조금만 더 가면 영일대 해변이 펼쳐진다. 바닷바람이 쌀쌀한 날씨였으나 많은 관광객이 중무장하고 바닷가에 삼삼오오 몰려있다. 뒤로 고개를 돌리면 앞 코스에서 지나온 제철소들이 보이고, 정면을 보면 탁 트인 바다를 감상하기 좋다. 또 바다 위에 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 누각 영일대도 볼 수 있다. 영일대 해변의 해파랑길 코스는 차도 옆 인도로 가는데, 백사장으로 들어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주변 풍경을 눈에 담는다.

영일대 전망대 [사진=김준철 기자]
영일대 전망대 [사진=김준철 기자]

이번 코스는 영일대 해변을 빠져나와 계속해서 해변길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영일대 바로 위 환호 공원이 있어 잠시 일탈을 한다. 1996년 개발을 시작해 2001년 완공한 공원으로, 포항 시민의 보건과 휴양 및 정서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조성됐다고 전해진다. 첨단 과학과 해양 문화, 체육 등 공원을 여러 테마로 나눠 꾸민 것이 특징이다.

환호 공원이 이처럼 유명해진 까닭은 바로 스페이스 워크 때문이다. 공원 내 위치한 스페이스 워크는 트랙 길이 333m, 계단 717개 규모로 만들어졌다. 철로 그려진 우아한 곡선과 밤하늘을 수놓는 조명은 철과 빛의 도시 포항을 상징하며, 360도로 펼쳐져 있는 전경을 내려다보면 포항의 아름다운 풍경과 제철소의 찬란한 야경 그리고 영일만의 일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스페이스 워크 위에서 찍는 사진, 배경으로 두고 찍는 사진이 모두 아름다워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자주 올라오는 곳이기도 하다. 멋모르고 올라간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위에서 장난치는 커플들의 웃음소리도 귀에 박힌다.

환호 공원을 돌아 나오면 다시 해안길이 이어진다. 영일만 바로 밑에 있는 죽천 방파제는 포항 북부 지역의 작은 어촌 마을인 죽천리의 항구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작은 방파제다. 그 규모가 앙증맞지만 낚시꾼들의 낚싯대에서 연달아 물고기가 딸려 오는 게 방파제의 크기를 무색하게 만든다. 낚시꾼들은 고기를 낚은 것이 뿌듯한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구경하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기자도 한 아저씨에게 잡혀 한참 동안 낚시 설명을 듣고 나서야 제대로 방파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환호 공원 스페이스 워크 [사진=김준철 기자]
환호 공원 스페이스 워크 [사진=김준철 기자]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 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가수 최백호 씨가 1979년 발표한 가요 ‘영일만 친구’의 일부다. 포항 제철소가 막 지어지고, 외지인과 현지인들이 포항시에 모여 터전을 잡던 시절에 발표된 곡이라 여러모로 포항 시민들과 인연이 깊은 노래다. 가사도 상당히 직관적이고 기운찬 내용이라 영일만을 보면서 이 노래를 듣는다면 감동이 배가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포항시 북구 홍해읍 달만곶과 남구 호미곶면 호미곶 사이에 있는 만을 전체적으로 영일만이라 불러 계속해서 영일만을 따라온 셈이지만, 영일만항도 구경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영일만항을 구경하긴 어려워 보인다. 오른편엔 영일만항역이 있고, 그 옆엔 신항이 있어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아쉬운 대로 영일만 친구를 배경 음악으로 깔고 긴 대로를 지나간다.

영일만항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용한리 해수욕장이 채워준다. 초입부터 서핑 보드 안내판이 길을 인도하고 있다. 설마 초겨울, 이 추운 날씨에 서핑을 즐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백사장으로 나가니 검은 서핑복을 입은 수십명의 서퍼들이 물살을 가르고 있다. 바다색이 아름답고 물이 얕아 최근 서핑의 성지가 되면서 계절을 가리지 않고 서퍼들이 찾는다는 후문이다. 도로 위로 다시 올라가 해변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서퍼들을 한 눈에 조망한다.

이번 코스의 마지막 콘셉트는 익스트림 스포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착지인 칠포 해수욕장 뒤에 있는 곤륜산에서 적당한 시간 차를 두고 반복적으로 무언가 떨어진다. 용한리 해수욕장에서 봤을 땐 새 무리라고 보였는데, 점점 가까이 갈수록 사람 형체가 보인다. 바로 패러글라이딩이다. 2019년 패러글라이딩 월드컵 대회를 치를 정도로 주목받았지만, 2020년 포항시의회 행정사무 감사에서 국공유지에 승낙 없이 공사를 했고, 대회 보조금을 부정하게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사실상 패러글라이딩이 중단됐다. 하지만 최근 동호인들이 다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며 곤륜산과 칠포 해수욕장은 활공장과 관광지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중이다. 곤륜산과 낙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배경으로 살랑살랑 낙하하는 패러글라이더를 보며 코스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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